brunch

그 와중에 주말

섬망은 계속된다

by 구름


3월 23일 금요일


이 날짜와 요일을 내가 유난히 정확히 인지하게 된 이유는, 이 날 면회를 온 남편이 병원 규칙상 주말 동안 중환자실 면회가 되지 않아 2일 동안 못 보는 것이 걱정되었는지, 여러 번 나에게 이틀 뒤 월요일에 다시 면회올 거니까 조금만 더 참으라고 말해주었기 때문이다. 중환자실에서 거의 남편 얼굴의 등장을 기다리는 하루가 계속되고 있었기 때문에, 주말에 남편을 보지 못한다는 사실이 정말 슬펐다. 하룻밤만으로도 버티기 힘든데, 주말 내내라니…


그러고 나서 남편은 옆에 서 있던 선임 간호사에게, 지금 내가 마비되어 있는 몸속에 온전히 의식이 있고 점점 좋아지고 있는 거라면 생지옥이 아니겠냐며 언제쯤 일반병실로 갈 수 있는 건지 물었다. 선임 간호사는 특유의 친절한 말투로 아직은 좀 이르다며, 응급 상황이 발생할 수 있고 섬망 증상도 아직 조금씩 있기 때문에 좀 더 중환자실에 있어야 한다고 대답했다.


그때 난 비로소 내가 꾼 꿈들, 그리고 그 꿈들이 현실과 뒤섞여서 이상하다고 느낀 것들이 섬망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남편은 ‘어제 같은’ 상황을 내가 다 알고 있는 거라면, 너무 괴로울 것 같아서 물었다고 다시 한번 덧붙였다. 나는 속으로 ‘어제 어떤 일이 있었지..’라고 생각했으나 묻진 못했다. 여전히 질문을 할 기력도 없고 입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던 탓도 있었지만, 그 ‘어제’라고 칭해진 그 시각, 내가 느낀 것들이 어쩌면 현실이 아니고 섬망이었을 것이라 생각하니 좀 무서워졌기 때문이었다.


'어제' 밤, 다른 날과 같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가만히 누워 귀로 소리를 듣는 것뿐이었다. 나는 2번 병실 밖의 상황에 엄청 귀를 기울이고 있었는데, 간호사들이 누군가를 보고 엄청 귀엽다며 칭찬을 했다. 그 대상은 아마도 옆 병실 누군가에게 면회를 온 어린이였던 것 같다. 그리고 선임 간호사가 나에게도 여러 번 말했던 ‘모성애’가 중요하다는 말을 하며, 병실 밖 사무 공간에 간호사들을 모아 그 어린이와 입원해 있는 어린이의 가족을 위해 작은 파티(?)를 하고 있었다. 풍선도 달고 귀여운 케이크도 준비했다.


순간 갑자기 나는 다리가 너무 무겁고 몸은 너무 뜨거워져 견딜 수 없어졌다. 이내 밖에 있는 간호사들에게 내 불편함을 호소하느라 마구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마 간호사들은 그 파티에 집중하느라 내 목소리를 듣지 못하고 내 몸부림도 보지 못하는 것 같았다. 한참을 나 혼자 땀 흘리며 몸부림친 뒤에야, 간호사들이 들어왔고 난 간신히 “너무 덥다”는 의사표현을 전달하여, 가슴과 배에 아이스팩을 올리고 나서 진정할 수 있었다. 간호사들은 내 옆에서 이런 말을 서로 나눴다.


“아이가 다 느꼈대? 알고 있대?”


그런데 이 말이 뭔가 아이가 부정적인 것을 눈치챈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고작 덥다고 난리 쳐서 그 아이의 파티를 망쳤나..’라는 생각을 하며 잠들었던 것이다.


섬망이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그 모든 것들은 그냥 내가 혼자 상상한 것이었구나 싶어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섬망 증상은 간헐적이긴 했지만 주말까지 이어졌다.


주말 내내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여서 시간을 보냈다. 내가 어느 순간 씻고 싶다는 욕구에 사로잡히면, 간호사들이 드라이 샴푸로 내 머리를 감겨줘야 하는데 그 순서가 돌아오지 않아 답답하고 화가 나기도 했다. 그러다 또 어느 순간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다는 욕구가 생기면, 간호사들이 환자들이 잠든 깊은 밤 중환자실 어디선가 야식을 시켜 먹고 냄새를 솔솔 풍겨 심술이 나기도 했다. 당시에는 섬망인지도 몰랐다. 의식을 되찾고 사지 마비가 서서히 돌아오는 시기였는데도, 머릿속에는 현실과 꿈이 뒤섞인 상태가 계속되었던 것 같다.


돌이켜보면, 섬망 증상은 보통 내가 무언가를 원하고, 그것이 잘 풀리지 않는 방식으로 나타났다. 우습게도 내가 원하는 것은 아주 사소한 것이었다. 그리고 아주 사소한 것이 해소되지 않는 불만이 너무나도 커다란 분노, 괴로움, 절망, 슬픔의 감정으로 이어졌다.




keyword
이전 14화그것이 알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