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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알고 싶다

나는 왜 아픈가? 왜 이곳에 있나?

by 구름


매일 또는 2일에 한 번 정도 있었던 주치의 회진은 아주 짧게 끝났다. 그도 그럴 것이 의료파업으로 인해 의사 수는 적었고 환자들은 몹시 많았고 시간은 한정되어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회진은 "눈 떠보세요." "다리나 팔을 들어보세요." 정도였다. 당연하게도 의사 표현이 어려운 나에게 직접 내 병에 대해 브리핑하는 시간은 없었다.


그러던 중, 거의 처음으로 주치의와 남편이 내 병에 대해 대화하는 것을 직접 들었던 날이 있었다. 그날은 이례적으로 남편의 면회시간에 주치의도 함께 내 옆에 서 있었다. 주치의는 나의 상태와 추정되는 원인에 대해 남편에게 최대한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눈을 감고 누워있던 나도 나름대로 열심히 귀를 기울였다. 물론 지금은 당시 주치의의 목소리만 기억날 뿐, 정확히 무슨 얘기를 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주치의가 말하고 있는 중간에 남편이, “정말 죄송하지만, 밖에서 같이 얘기를 들어도 될까요?” 하고 묻고는 함께 중환자실 밖으로 나간 기억은 있다.


'뭐야, 나도 알고 싶어. 나도 들려줘.'


알고 보니, 남편이 당시 면회시간에 나의 이종사촌동생을 불러 함께 주치의 설명을 듣자고 한 것이었다. 사촌동생은 재활의학과 전공의로, 국립재활의료원에서 일하고 있었다.(당시에는 의료파업으로 인해 사직서를 제출한 상태였다.) 처음 겪는 아내의 투병 상황과 알아듣기 어려운 의학적 설명을 같이 공유하기 위해 사촌동생에게 도움을 청한 것이었다.


돌이켜보니, 나는 이 날 이후에야 비로소 내 병의 원인 그리고 내 병명을 본격적으로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이유를 궁금해하면서 더욱 고통스러워졌다. 무언가를 묻고 명확한 답을 듣고 싶은 내 의식과는 달리, 내 몸은 거의 아무것도 표현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궁금해할수록 괴로움이 커졌고, 이어지는 밤들은 여전히 길고 밝았다.


그로부터 며칠이 더 지난 후, 내가 면회시간에 남편에게 거의 처음 단어다운 단어를 말한 것이 “이유”였다고 한다. 그만큼 나에게는 내가 이 상태가 된 이유가 중요했고 그것을 알고 싶었던 것이다.


이로부터도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내 병명을 알게 되었다. "자가면역뇌염" 또는 "길랑바레증후군"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두 가지 모두 가능성이 있다는 말을 듣고도 또 1주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나서, 이번에는 "자가면역뇌염"으로 "추정"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쉽게 말하자면, "자가면역뇌염"은 내 몸의 면역체계가 고장나서 뇌 신경체계를 공격해서 발생하는 뇌 신경계 질환이다. 서울대학교 모 교수에 따르면, 1/3은 회복할 수 없는 중증장애를 갖고 살게 되고 1/3은 일상생활은 가능하나 후유증으로 장애를 갖게 되며 1/3은 아프기 전과 같이 돌아온다고 했다.


천만다행으로 나는 가장 마지막의 1/3에 해당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왜 나에게 이 병이 찾아온 건지 이유는 알 수 없었고, 지금까지도 모르기 때문에 가끔은 아주 약간의 불안함과 걱정이 물을 끼얹듯이 찾아오기도 한다.


어쩌면 그 불안함과 걱정은 남은 나의 여생을 쭉 함께 하게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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