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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디울 Feb 08. 2018

시간을 달리고 싶다는 아이들과, 멈추고 싶다는 어른들.




초등학교 4학년, 그러니까 11살 나이까지 한 번도 혼자서 동네를 벗어나 멀리 나가 본 적이 없었다.

가을 햇살 반짝이던 날, 그런 나에게  같은 반 친구가 둘이 서울을 가보자는 제안을 해왔다.

서울 근교의 동네에서 처음으로 보호자 없이 같은 또래 친구와 버스를 타고 떠나는 길.

다소 머뭇거리는 나를 보고 친구는 피식 웃으며 별거 아니라는 듯, "괜찮아 잘 갔다 올 수 있

어"라고 가볍게 나를 안심시켰다.      

난생처음 그렇게 친구와 둘이 서울로 비밀 잠행을 다녀오게 된 것인데, 

갔다 오는 동안 무사히 돌아올 수 있을까 내심 걱정을 했지만 친구의 말처럼 해도 지기 전에 

안전히  돌아오게 되니 근사한 모험을 끝낸 기분이었다.     

어쩌면 별 탈 없이 돌아올 수 있어 포근한 기억으로 남을 수 있는 일 일지모를 이 짧은 추억을 더듬어보면

지금은 그 친구와 서울 어디를 갔다 왔는지, 그 친구의 이름조차 기억이 가물거리지만, 나와는 다른 의젓함이 있던 아이라는 기억이 첫 여행의 두근거림과 함께 어렴풋이 남아있다.    


   

나를 이끌고 리드했던 다른 또래의 친구들도 하나 둘 기억이 나는데, 어수룩했던 나와 달리 어쩐지  듬직했던 친구들의 기억이 새롭다.

내 작은 일탈을 도왔던 일이 어른스러운 것이라 말할 순 없겠지만, 유독 나이보다 빨리 성숙

해지는 사람이 분명 있는듯하다. 

그렇게 조숙했던 친구들은 지금 시간 앞에 의연하게 살고 있을까?      

       

  

시간을 달려서라도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던 나는 이제 서서히 나이 듦을 걱정하며 살고 있다.  이제야 미래의 내 모습으로 노인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반짝이는 것들에 관심이 가기보다 남편을 부축하며 병원에서 나와 운전을 하고 가는 할머니가 눈에 들어오고, 천천히 산보 나온 동네 어르신이 보이기 시작한다. 아마도 내가 나이 먹지 않고 살 수 있다면, 주변의 노인들이 지는 낙엽만큼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관심을 가지니 세월을 버텨낸 그 굳건한 생명의 힘에  경외심마저 느끼게 된다. 백세시대를 내다보는 세상이라지만 막상 노인이 되는 것도 대단히 어려운 일이구나 싶은 것이다.               


그때의 어린 나는 정작 어른이 되어서 어떻게 나이 듦에 순응하며 살아가야 할까 고민하는 때를 맞이하게 될 줄 상상하지 못했다.

이런 게 인생일까?




글·그림   반디울

                                                      https://www.instagram.com/bandi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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