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킬로미터 첫 출전
아들이 초등학생일 때 추억 쌓기 이벤트로 '국제평화 마라톤대회'에 참가한 적이 있다.
2012년이니 벌써 13년 전 일이다. 그땐 지금처럼 열심히 하지도 않았고, 아들의 보폭에 맞춰 함께 달려야 하니 진도가 빠르지도 않았다. 달리기가 아니라 아들과 수다 떨며 내내 걸었던 기억이 있다.
특이한 추억을 쌓은 1회성 행사로 막을 내렸었다. 그때의 경험이 있어서 인생최초는 아니지만 이번엔 진지하게 마라톤이라는 벽에 벽돌을 쌓는 심정으로 출전하고 싶다.
<2025. 2월 28일, 금요일> (74일 차)
- 운동시간 24:27
- 운동거리 3.54km
- 소모칼로리 209kcal
- 마라톤대회 D-1
5킬로여도 공식 마라톤대회라 살짝 긴장된다. 근데 긴장되는 것보다 없어지지 않는 은근한 두통이 신경 쓰인다. 보통 하루저녁 푹 자고 나면 없어지는데, 어제오늘 이틀째 계속되고 있다. 미친 듯이 아픈 것도 아니고 한쪽 뒤통수를 은근히 압박하는 불편함이다. 아픔과 불편함 그 사이 어디쯤.
달리고 나면 좀 나아질까 싶어서 스트레칭을 하고 달려봤다. 평소 속도로 달리는데 심박이 최고로 올라간다며 워치가 계속 경고알람을 준다. 빨리 뛰지도 않는데 왜 이리 호들갑인가 싶은데 확실히 몸이 무겁고 다리가 천근만근이다. 호흡도 쉽게 지치고 산소가 딸린다. 아직 4킬로도 못 달렸는데... 오늘은 여기서 러닝 stop.
아무래도 안 되겠다. 몸살감기가 온 거 같다. 큰일이다. 내일이 마라톤대회인데. 감기약 먹고 마라톤대회 나가도 되는지 검색해 본다. 누군가의 질문에 다양한 답이 달렸다. 쉬라는 사람, 약 먹고 달렸다는 사람, 평소 속도보다는 느리지만 천천히 달려서 완주했다는 사람. 대충 분위기가 불법은 아닌가 보다. 프로의 세계에서만 해당되는 얘기인가 보다. 약물 복용 후 시합에 출전해서 우승이 취소되고 어쩌고... 신문기사에서 본 거 같은데, 올림픽대회 출전한 선수들 얘기인가 보다. 병원 가서 약 처방받고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겠다.
불편한 증상: 은근한 두통, 몸살기운 약간, 가끔씩 마른기침
<2025. 3월 1일, 토요일> (75일 차)
- 운동시간 32:13
- 운동거리 5km
- 소모칼로리 235kcal
아침 9시에 대회가 시작이고, 1시간 전에는 도착하라고 한다. 집에서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되는 거리라 역산을 하니 아침 6시 30분에는 집을 나서야 한다. 휴일인데 6시에 일어나야 한다니. 억울하지만 이날은 눈이 스스로 떠졌다. 밤에 약 먹고 잤더니 아침에는 좀 나은 거 같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아침약도 챙겨 먹고 나선다. 이어폰은 일부러 놔두고 배번호가 부착된 상의와 레깅스와 면바지 중간쯤 되는 팬츠를 입고 그 위에 한 겹 씩 더 껴입는다. 아침이라 춥다. 7호선 자양역에 내리니 오전 8시인데 사람이 많다. 다들 러닝 하러 온 사람들.
배번호가 그린색이 full이라 쓰여있다. 호오~ 멋지다. 엇. 저분은 배도 나왔고 과체중 이신데... 배번호가 그린색이네. 흠. 뭐 가능하니까 신청하셨겠지. 풀코스를 뛰는 고수의 러너들은 체형이 비슷비슷하다. 까무잡잡하고 대체적으로 슬림하지만 탄탄하고 지구력이 끝판왕일 거 같은 느낌적인 느낌. 뭐 확증편향일 수도 있겠다.
가수 홍진영 님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들린다. 대회 시작 전까지 가수 몇 명이 나온다고 했는데 벌써 시작되었나 보다. 황영조선수, 이봉주선수도 온다고 했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서 어디서 찾나. 어디에 계시려나. 사실 유명인 얼굴을 보는 것보다 5킬로미터를 어디서 뛰는지 시작점을 알아두면 더 좋을 거 같은데. 어디에 안내판 같은 게 있지 않을까 두리번거린다. 은근히 날은 춥고 사람은 많다.
그린색(full), 파란색(하프), 핑크색(10km), 주황색(5km) 배번호 색깔로 출전종목이 구별되었다. 주황색을 단 나는 햇병아리가 된 기분이라 조금 위축되었다. 신청을 두 달 전에 한 게 아니라면 10킬로를 신청했을 건데, 신청할 때만 해도 5킬로를 겨우 뛰는 상태였다. 그동안 많이 발전했다. 이 몸은 15킬로도 뛴 몸이라고!
애국가를 부르고 대회 측의 인사말, 내빈 소개 등등 대회식순이 시작된다.
9시 15분 전이 되니 몸을 푸는 시간이다. 마이크 잡은 사람의 구령에 맞춰 하나둘하나둘 몸을 움직인다. 이때부터 잠바를 벗고 러닝 할 얇은 복장으로 30분 가까이를 떨었던 거 같다. 잘 챙겼다고 생각했는데 장갑을 빼먹었다. 어찌나 손이 시리던지. 시간이 딱 두 시간 전으로 돌아가면 얼마나 좋을까.
하프/풀 코스 고수님들이 먼저 출발하고 그다음이 5킬로 주자 출발이다. 출발 대기선에서 기다리는데 발을 동동 구르며 스트레칭을 해도 추위가 가시지 않았다. 내 바로 앞에 있던 청소년은 입이 덜덜 떨리면서 온몸에 닭살이 돋더라. 그 옆에 있던 아버지가 연신 쓰다듬어주지만 역부족처럼 보였다. 빨리 출발시켜 주는 게 답인데, 주최 측은 안전을 고려해서 출발 사인을 아직 주지 않고 있었다. 앞 쪽에 상황은 잘 모르지만 이유가 있겠지. 어쩔 수 없이 기다려야 했다. 출발 대기 시간에 추위와의 싸움이 제일 힘들었던 거 같다. 작년보다 날이 더 따뜻하다는데 나는 추웠다. 내년엔 뛸 때 덥더라도 더 껴입는 선택을 해야겠다. 장갑은 꼭꼭 챙길 테다.
8분 지각한 9시 18분에 5킬로미터 출발. 걱정했던 컨디션은 약기운 때문인지 멀쩡했다. 두통도 없었고 몸살기운도 느끼지 못했다. 대회가 곧 시작이라 긴장돼서 그랬을까. 아무튼 정상이었다.
달리기도 좋았다. 비슷한 실력의 러너끼리 함께 달리니까 뛰는 맛이 났다. 오히려 내가 추월하는 쪽이었다. 다양한 사람들 틈을 이리저리, 지그재그로 추월하는 기분이 꽤 좋았다. 혼자라 더 편했던 거 같다. 다른 사람은 같이 뛰는 일행을 챙기느라 지체되고 자기 페이스에 집중하지 못한 반면 나는 내 몸만 챙기면 되니 거리낌 없이 앞으로 쭉쭉 나갈 수 있었다. 러너스 하이는 당연히 아니지만 달리기가 행복하다고 느꼈다. 황영조 선수와 이봉주 선수도 5킬로에서 같이 뛴다고 했는데, 반환점을 돌아오는 선두그룹부터 계속 찾아보는데 안 보인다.
뛰긴 했을 건데 바람처럼 휙~ 뛰셨으려나. 대체로 내가 추월하며 반환점을 돌았는데, 내 앞을 추월하는 9살~10살가량의 남자아이를 봤다. 빠르네. 사람들이 연신 칭찬을 해댄다. 다시 추월을 해보려고 노력했지만 어우 안 되겠다. "무서운 10대" 속으로 되뇌면서 '여우와 신포도' 이야기를 떠올린다.
컨디션을 강제로 정상으로 맞추었지만 부상 없이, 큰 문제없이 완주하는데 성공! 30분 이내로 들어왔으면 했는데, 그 목표는 이루지 못했다. 그냥 평소 속도대로 나왔다. 첫 대회 미션 클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