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아름답게 어긋나지』를 읽고
To. 번역을 사랑하는 A
단어 하나하나 제대로 옮겨 담으려고 공부하고 고뇌하는 네 모습을 보면서 자기 일을 정말로 사랑하는구나 느꼈어. 솔직히 말해서 일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면 질투가 나. 일을 좋아한다는 건 어떤 느낌이니? 김연아처럼 미끄러운 빙판 위를 자유롭게 누비며 머리까지 상쾌해지는 기분일까? 재즈같이 불협화음으로 들리던 음표들이 어느새 하나로 보이고 가슴을 울리는 걸까? 남녀 간의 사랑은 우리가 원하고 바라기에 노래나 영화, 드라마로 흔히 접하고, 직접 경험하면서 사랑한다는 말을 자연스레 듣잖아.
근데 심지어 무려! 일을 사랑하다니! 적어도 내 주위엔 그렇게 당당히 대놓고 이야기한 사람은 본 적이 없단다. 편의점에서 멸종된 포켓몬빵 같다고. 다른 사람에게 일을 사랑하냐고 물어보면 오히려 일에서 왜 그런 걸 찾냐고 정신승리 아니냐고 비아냥거리는 소리나 들었지. 지금 하는 일을 좋아하지 않냐고? 물론 내가 있을 자리가 있다는 건 감사할 '일'이지. 그치만 지난 7년을 돌이켜 봤을 때 계속해서 뚝딱거리는 내 모습을 보면서 썩 마음에 들지가 않네.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는 느낌이야.
냉철한 조직에서 ‘나도 1인분은 한다’를 증명하려고 어떻게든 하루를 막아내고 집으로 돌아오면 완전히 방전되어 있지. 네가 말한 MBTI E형의 반대인 I형은 원래 이런 건가? 바닥에 누워 천장을 보고 있다가 갑자기 정신 차려야지 박차고 일어나 노트를 집어. 하루를 이렇게 공허하게 보낼 수 없다며 머리에 떠올린 잡생각들을 종이에 난도질하듯 휘갈겨가면서 나에게 해명 아닌 해명을 하지. 공상을 불태우면 짜릿하다? 무슨 말이냐면 수백 명의 청중 앞에서 오케스트라를 완벽하게 지휘하고 난 뒤 피날레를 떠올려봐. 공연장에 몇 초간 정적이 흐르고 열기에 땀이 나고 나 혼자 숨을 거칠게 내쉬지. 눈 딱 감고 뒤를 돌아보면 박수 소리가 들려 짝짝짝짝. 브라보! 앙코르으~는 덤이고. 메타버스 관중에게 신사답게 인사하고 무대를 내려오면서 흡족한 미소를 곁들여 내 어깨를 셀프로 두드리지. 잘했어. 굳굳
빈 종이를 보면 채워야 할 거 같아. 정신과 의사가 날 빈 줄 강박증과 ‘B’DHD라고 진단할까? 따뜻한 번역가인 너라면 ‘나를 채운다.’라는 담백한 표현으로 뉘앙스를 바꿔 해석할까? 엄마가 그러더라. 나는 내 돌잔치에서 연필을 잡았다고. 말보다 글로 마음을 표현하길 좋아하는 집순이 여인과 다르게 난 커가면서 배춧잎을 뭉치 다발로 잡고 싶거든? 강남 클럽에서 Flex란 걸 해보고 싶기도 하고. 이리저리 기웃거리고 살짝 맛보기도 했지만 이내 제대로 얻어터지고 나서야 이 분야에서 머리가 핑핑 잘 돌질 않는 걸 깨달았어. 얼마 전에 주식을 게임처럼 여기고 재밌게 한다는 분을 봤거든. 저렇게 즐기는 사람을 어떻게 따라잡아야 하는지 밑그림조차 안 그려지더라고. 자기 일을 신나게 떠드는 그 사람을 보면서 같은 숫자를 바라보며 멍 때리고 일하는 나와는 결이 다르더라고. 쳇.. 저런 게 재능이 아니냐고 궁시렁거리면서 속으로 요즘 핫한 장기하 노래를 엄청 불러댔지. 그래 맞아 너~무 부럽더라. 빨리빨리 결과를 내니깐 말이야. 같은 공간에 있어도 서로의 시간은 다르게 흘러간다는 걸 깨달았지.
글이나 업무를 보여주기 전까지 몇 번이고 쓰고 지워. 넌 일할 때 방망이 깎아낸다고 했지? 난 그 옛날 스페인 건축가 가우디로 빙의한단다. 후원자가 돈 먹는 하마라 욕하더라도 한번 꽂히면 맘에 들 때까지 부수고 세우길 반복하는 그 장인 정신이 나도 모르게 튀어나와. 역사에 길이 남을 파밀리아 성당을 수백 년을 거쳐 짓는 것도 아니면서(지금도 짓고 있더라) 영감이 없다고 허송세월을 보내다가 마감기한이 턱 끝에 차서야 겨우 해내면 퀄리티를 아쉬워하며 후회를 반복하지. 한 곳만 쳐다보다가 정작 소중한 것들을 놓치니깐 말이야. 많고 많은 직업 중에서 작가의 수명이 꼴찌권을 다투는 건 하루하루 피 말리는 와중에 혈압 올리게 하는 고집, 다르게 표현하면 애정 때문이 아닐까 싶어. 가우디가 오늘날 태어났으면 어땠을까? 투자자에게 예술은 집에서 너 혼자 하라며 구둣발 앞꿈치로 정강이 조인트 까이지나 않을까 상상해 본다. 불쌍한 가우디, 형이랑 소주 한잔하자. 크으.. 여긴 낭만 있던 바르셀로나가 아냐~~ Do you know 흥민쏜? 꼰대질 아니 선배로서 계산 시대의 흐름을 등진 예술가의 소신에 공감하고 토닥이고 싶다.
간만에 술을 마시니 떠나보낸 한 사람이 떠오르네. “오빠는 혼탁해서 황토색이야. 뭐가 그리 복잡해. 맘 편하게 생각해도 되잖아?” 아직도 현실과 이상이라는 평행선 사이에서 정하지 못해 해롱거리며 떠다니는 날 보니 바로 그녀가 이 시대에 살아있는 현자가 아닐까 싶어. (아 참! 놀랍게도 수명이 가장 긴 직업 1위는 종교인이래. 그녀를 추앙할 걸 그랬나?) 네가 지은 책 제목처럼 우린 아름답고도 심플하게 어긋났지만.. 지난 과거를 되새김질하며 더 나은 모습이 뭘까 삐걱삐걱 거리는 나와 다르게 그녀는 요즘 트렌드에 발맞춰 현명하고도 세련되게 잘 지내겠지. 신이 있다고 믿진 않지만 피할 수 없는 우연이 존재한다는 걸 알았지. 그 직감을 벗어나면서 목을 탑탑하게 한 잿빛 같은 마음을 비워내려고 노력해. 술도 줄이고 운동도 적당히 안 하면서 어린아이 마냥 눈을 더 똥그랗게 뜨고 있어. 내가 몰랐던 영롱한 세상을 더 잘 음미해서 담아두고 싶거든. 하나를 보면 감히 열을 안다고 재단했던 시간에서 조금은 성숙해진 모습을 보니 필연은 새로 태어나라는 계시고, 껍데기 포장을 벗기는 고통은 내가 짊어져야 할 십자가일까?
여하튼 쳇바퀴를 돌고 돌아 다시 손에 펜을 쥐고 글을 쓰는 걸 보면 이게 내 숙명인가 봐. 철학자 니체가 외쳤고 최근에 김연자 선생님이 노래 불렀지. Amor Fati (아모르 파티,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라!). 저울에 올려진 1인분 접시를 내려놓고 난 이제 낯선 문을 열려고 해. 글쓰기에 진심인 브런치에 파티원으로 들어가려고. 내가 쓴 글을 스크린 너머 모르는 사람에게 보여줘야 하는 점과 나의 일상을 에세이로 드러내 노출해야 한다는 강제성은 민낯을 들키는 것 같아 여름 내내 스스로를 향한 무자비한 감정 소진을 예상해본다. 내가 택한 길 위에서 다른 사람의 글 속에 있는 마음을 읽어보고 내 에세이에 관한 건설적인 비판도 담담히 받아들이면서 잠든 애정이를 깨워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 갈 거야. 덜컥 작가 등록하고 보니 막상 기대가 커서 또 나만 진심이려나 살짝 걱정이 들지만! 혹시나 알아? 어쩌면 씀을 위한 만남에서 사회적 가성비가 안 나와 애써 외면해온 씁쓸한 숙명을 다정하게 끌어안을지도!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지만 브런치북을 낸 모습과 앞으로 흔들릴 선택들을 사랑해버려 지금과는 시선이 달라진 그땐 자랑거리를 꾹꾹 눌러 담은 편지를 보낼게. 딱 기다리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