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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제빵과정을 마치고, 빵향기에 중독되어 그만...

빵을 배우는 사람들은 참 따뜻해!

발효기에서 막 나온, 마치 애기 볼살같이 부드럽고 보슬보슬한 반죽덩어리 만질 때 기분 좋은 느낌, 오븐 문을 열 때 따뜻한 열기와 함께 퍼지던 향기로운 빵 냄새.

어떤 화와 노라도 누그러뜨릴 수 있는, 그 따뜻함과 부드러움.


20일짜리 제빵기능사 실기수업도 마지막. 일주일에 두 번 오전 9시부터 오후 1시까지. 두 달 넘는 긴 과정이라 생각했는데, 시간 훌쩍 지나 어느덧 마지막 시간이다. 손재주 없어서 수업 제대로 따라갈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무사히 잘 끝났다.


제빵 수업에서는, 3-4명이 한 팀으로 반죽을 만들고 빵을 나눠 만든다. 다행히 첫날 같은 조로 배정된 멤버들부터, 다른 팀원까지 모두 다 갓 나온 빵처럼 따뜻한 분들이었다.

반죽기 사용법부터, 둥글리기, 빵 성형 하는 것까지, 영 익숙지 않아 보이니 더 연습해 보라며 나에게 기회도 더 주기도 하고. 시험 때는 쇼트닝 쓰지만 그래도 우리 먹을 건데 건강엔 버터가 더 낫지 않겠어요라며, 솔선수범 매번 버터 챙겨 오기도 하고, 장갑 낀 김에 다른 팀 빵도 꺼내줄게요 먼저 선뜻 도움을 주시기도 하고.

각자 자신이 만드는 빵에 대해 진심으로 열심이면서도, 따뜻하게 남을 배려하시는 분들이었다.

징글징글한 반죽온도 27도 맞추기. 백퍼센트 반죽하기!

대학원 졸업하고 바로 취업하고, 일하면서 학위도 따고. 그렇게 거의 18-19년 시간이 지났다. 각 부처 공무원, 국회, 정당, 공기업, 사기업, 시민단체, 종교, 언론, 경찰, 군인 등등. 일하고 공부하면서 정말 다양한 인간유형을 만났다고 생각했다. 내 나이 또래 여성들에 비해, 세상경험도 많고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도 넓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평일 오전시간, 제빵을 배우는 분들을 보면서, 아, 내가 본 세상은 좁디 좁았구나 싶다. 세상 많이 안다고 생각한 건 나의 오만.

괸련 고등학교 입시준비로 수업듣는 중학생, 갓 출산하고 아이에게 먹일 건강한 빵을 만들고 싶다며 배우는 애기 엄마, 나이 지긋하신 가정주부...

평일 오전 이런 수업을 들을 수 있는 분들.

일할 필요 없이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서, 혹은 앞으로 취업을 위해 절박하게, 혹은 100세 시대 맞아 혹시나 나중에 필요할지 모르니 우선 느긋할 때 배워보자 그런 마음까지.

각자의 이유도 제각각.


우리는 각자 자신의 삶을 치열하게 산다. 의미를 부여하고, 무엇인가 목표를 찾으려 하며.

그래도 생각대로 풀리지 않기도 하고, 예기치 못한 위기나 변화의 순간을 맞기도 하고. 하지만 그 덕에 평소 생각지 못한 새로운 일들 해볼 기회도 생기고.


그 무슨 이유 든 간에, 반죽을 만들고 빵을 굽는 동안에는 우리 모두 다 같은 초심자. 서로 배려하고 도와주는 좋은 팀원일 뿐.

제발 빵도넛이랑 베이글은 시험문제로 나오질 않길 기도!

하나의 반죽이 식빵도 되고, 덩어리빵도 되고, 단과자도 되고, 그런 것처럼.

그리고 처음 반죽이 좀 맘에 안 들게 되었다고 해도, 다음 발효도 있고, 빵 성형을 어떻게 하느냐, 굽기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수정의 기회가 있는 것처럼.

그렇게 우리 삶도 유연하다. 한 번 반죽온도 못 맞췄다고 해서 완전히 망치는 것도 아니고. 한 번 모양 잘 못 만들었다고 해서 빵이 완전히 다 망가지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좀 모양 이상하면 어때, 잘못되면 어때, 그러면서 또 새로운 종류의 빵도 만들어지고, 창의적인 작품도 나오는 거겠지.

단빹빵, 소보루까지는 어떻게 만들어볼 수 있지 않을까.

마지막 수업, 소시지빵을 다 만들고 봉지에 담는 순간, 왠지 너무 아쉬워 바로 제과과정을 신청하고 말았다. 버터설탕 범벅 빵 향기에 중독된 것이 확실하다.


다음엔, 케이크와 쿠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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