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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빵기능사 시험 도전! (밤식빵은 어려웠어...)

필기 통과 이후, 2년의 시간이 있으니 난 꼭 다시 도전한다!

하얀 위생모에, 위색복과 앞치마, 마스크를 쓴 거은 속 내 모습이 낯설다. 제빵 시험 시작은 오후 12시 반. 대기실에는 나보다 한참 어린 젊은 친구들이 대부분. 중년으로 보이는 분들은 나 빼고 두세 명 될까.  

화장실에서 마주친 어린 친구는 머리카락 보일까 봐, 한 올 한 올 위생모 안으로 집어넣는다. 그 모습이 꽤 기특하다. 대기실에는 정적만이 가득하고, 수험생들은 프린트해 온 종이를 비장하게 보고 있다.


시험 안내해 주시는 분이 간단히 시험에 대해 안내해 주시고, 신분증 확인한 후 핸드폰을 꺼서 맡기라고 한다. 아, 나도 종이에 프린트해 올걸. 핸드폰에만 레시피 메모해 두었는데. 핸드폰 전원 꺼서 맡기고, 번호표를 뽑는다. 번호표는 방해되지 않게 위생복 뒷 목덜미에 부착. 아, 가슴 쪽에 부착하지 않는 번호표는 처음이다.


"감독관님들은 여러분들을 일부러 떨어뜨리려고 하는 분들이 아니에요. 감독관님들이 와서 작업과정 확인하고 질문도 하실 텐데, 일부러 자신에게만 그런다, 의도적으로 자신을 떨어뜨리려 한다 그렇게 주장하시는 분들도 있더라고요. 감독관님 채점기준은 아주 구체적으로 정해져 있고 그에 따라 채점하시는 겁니다."


아무래도 객관식 시험이 아니고, 주관적인 평가이다 보니 별의별 컴플레인이 많았나 보다. 안내해 주시는 분께서는 친절하게도 이 시험은 여러 번 보면 결국 통과할 수 있는 시험이니, 너무 긴장하거나 스트레스받지 말고 시험보라 얘기해 주셨다. 시험 전 스트레칭하라는 조언도 잊지 않으신다.

그래, 어차피 한 번에 시험통과는 무리인 듯하고 나도 언젠가는 통과하겠지, 오늘은 경험이라 생각하자. 하지만 최선을 다하고 포기하지 말자. 한결 마음이 가볍다.



제빵 실기시험에는, 20개 품목 중 하나가 랜덤으로 나온다. 한 회차(2주) 동안 이미 한 번 나온 품목은 다시 나오지 않기 때문에, 후기들을 체크하고 예상문제를 이미 생각해두고 있었다. 아무래도 최근 소보루, 단과자빵, 단 밭빵 같은 작은 빵들이 연달아 나왔으니 이번엔 식빵이나 덩어리빵 중 하나겠지.

아니, 그런데 아뿔싸 그중에 제일 할 일 많은 밤식빵이 출제돼다니! 그냥 식빵이면 반죽 잘 성형해서 넣기만 하면 되는데, 밤식빵은 추가로 해야 할 일들이 많다. 밤다이스도 각각 무게 재서 넣고, 버터, 계란, 설탕, 밀가루 잘 섞어 거품 내 토핑 만들어 짜는 주머니에 넣어 짜고, 마지막 아몬드 슬라이스까지 장식.


침착하게 계량 시간 내에 모든 재료 정확하게 무게재고, 반죽 상태도, 최종 반죽온도도 잘 맞추고, 순조롭다 생각했는데.

아뿔싸 1차 발효 마치고 다섯 덩어리로 분할하는 데 한 녀석 무게가 정량 450그램보다 10그램 정도 모자라다. 앗, 아까 반죽기, 훅에 묻어있던 반죽 남은 거 빡빡 긁어 쓸걸. 학원에서 배울 때 한 번도 반죽이 모자란 적이었는데, 이상하다. 이때부터 당황했다. 게량이 잘못된 걸까, 반죽이 잘못됐나, 발효를 잘못했나.


그래도, 둥글리기 마치고 중간발효 마치고 나오니 반죽들 크기도 비슷비슷해졌다. 아까 실수한 것 잘 넘어갈 수 있겠군. 하지만 1차 발효 마치고 둥글게 타원형으로 밀어 펴려고 하는데 잘 밀리지가 않는다. 겨우 30센티에 맞추고 밤다이스를 골고루 넣긴 했는데. 그 순간에도 발효를 더 했어야 했나 온갖 생각이 다 든다.

다섯 덩어리 팬닝판에 넣는데, 벌써 모양새가 맘에 안 든다. 불길하다.


자신감이 떨어지니, 2차 발효는 너무 길게 해 버렸다. 과발효되어 버렸다.

밤다이스 모양이 반죽 위로 울룩불룩 다 보인다. 토핑 잘 짜서 숨겨보자 했는데, 토핑 짜는 것도 망쳤다. 토핑 짜는 데 모양이 이상하게 나오길래 한 번 걷어냈다 다시 짰더니 더 이상해져 버렸다.


결국 굽고 나서 꺼내니, 5개 중 네 개는 밤이 터져나왔다. 토핑 올린 게 불룩 팬닝판 바깥으로 넘치고. 제대로 된 건 하나 뿐. 다음 주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이건 확실히, 불합격이다.




사실 1차 발효 시간 동안 토핑 만들고 시간도 남고 해서, 시험시간 3시간 반을 역순으로 계산해서 나만의 시간표를 만들어두었다. 시험 마치는 시간은 4시 40분. 최종 굽는데 30-35분 걸리니까, 넉넉하게 네 시까지 모든 과정 끝내면 된다. 시간은 충분하다, 1차발효부터, 토핑 올리는 시간까지 분단위로 계산해 적어두었다.

그런데, 세부적으로 나만의 계획을 다 세워뒀음에도 불구하고 주변에서 자신의 반죽을 가져가가나, 둥글리기나 성형을 먼저 시작하면 괜히 마음이 초조해진다. 괜히 따라가서 내 반죽상태 어떤가 한 번 더 보다가 덩달아 꺼내오게 되고.

1차 발효 잘못된 걸까 생각하다 보니, 2차 발효는 과하게 해 버리고. 결국 자신감이 떨어지니, 한 번 한 실수가 다음 단계에서 다시 실수로 이어지게 된다.  


그러니, 핵심은 이것이다.

1. 나만의 계획, 시간표를 정했다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하는지에 대해서는 절대 신경 쓰지 말 것.

2. 그러기 위해서는 100% 자신감 가질 수 있도록 철저히 준비할 것.

3. 한 번 실수했다고, 다음에 과하게 그 실수를 덮으려 애쓰지 말 것. 수정보완하되, 침착하게 필요한 것만을 할 것.

4. 시작했으니, 꼭 시험을 보고 평가받아볼 것. 험을 본다면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전과정 다 마칠 것.

시험결과와 상관없이, 최선을 다해보고 할 수 있는 만큼 다 해보고 끝낼 것.


학원에서는 비슷비슷한 수준의 학생들과 하하 호호 웃으며 여유 있게 만들어보고, 서로 협동해서 만들다 보니 생각치 못했다.

시험은 엄중하고 프로페셔널하며, 시험에 응하는 사람들은 꽤 수준 높고, 진지하고, 절박하다는 것을.


1월 초만해도 내가 이 시험을 보게 될줄 상상도 못했다. 조금은 충동적으로, 취미로 시작했지만, 기왕 시작했으니 시험을 봐야겠다. 그리고 시험을 보기로 했으니 꼭 통과해야겠다.

생각지 못한 분야 시험을 치르며, 그래도 그 단기간동안 꽤 많은 것을 배웠다. 앞으로 2년의 시간이 있으니, 다시 재도전이다! (제발, 3번 내에 통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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