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비장애인입니다.
휠체어 회사에서 일한 지도 벌써 6년이 되었다. 비장애인으로 장애인 가족이나 친구가 한 명도 없던 내가 6년째 매일 출근을 하면 휠체어를 탄 사람들을 만난다. 나는 나와 상관없는 남에게 관심이 참 안 생기는 사람인데 어느새 상관이 생겨버렸다, 그것도 직업적으로. 일을 잘하는 회사의 ‘인재’가 되기 위해서는 노력해야 했고 그 노력에는 ‘휠체어 사용자 이해하기’도 빠질 수 없었다.
입사 초반 상사는 나에게 어떤 업계에 들어와 가장 빨리 적응하는 방법은 그들이 사용하는 ‘용어’를 알고 그들이 사용하는 ‘용어’가 내 입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도록 익숙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기 위해 휠체어 회사와 휠체어 공부는 물론, 장애와 인권과 관련된 책들을 읽고, 장애와 관련된 최근 기사를 찾아보고, 영향력 있는 스피커들을 팔로우하고, 다양성을 주제로 한 독서 클럽에 가입을 하고, 입에 도무지 붙지 않지만 이렇게 말하는 것이 옳은 비차별적인 단어들은 모니터 옆에 붙여가며 ‘업계 용어’들을 외우고 익숙해져 갔다.
연차가 지날수록 성실하게 모아 온 ‘용어’들은 일을 할 때 ‘장애’에 대한 자동완성 기능이나 맞춤법 검사기처럼 틀린 용어와 표현들을 기계적으로 빠르게 수정해 줬다. 그런데 딱 거기까지였다. 사무실 책상을 벗어나 휠체어 사용자들을 만날 때면 자신이 없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봐도 장애를 가지고 사는 것은 비장애인으로 사는 것보다 더 큰 대가가 따르는데, 그리고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그 대가가 훨씬 더 비싼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대가를 지불하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나는 아직도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가득 차 겁이 났다. 실수를 할까 봐 무서웠다.
나에게는 의식적으로 열심히 모아 온 ‘용어’들은 있었지만 ‘이야기’가 부족했다. 타인에 대한 이해와 공감은 그들을 바라보고, 그들에게서 듣고, 그들과 함께 느낀 감각 위에서 비로소 쌓일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꽤 오랫동안 알지 못했다. 여전히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싶은 때가 많지만, 어느 날 돌아보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나에게까지 도달한 이야기들은 아주 조금씩 그리고 미세하게 나를 균열시키고 확장시켰다.
그런데 그들의 존재가 이야기로 나에게 쌓일수록 고민하고 고려해야 할 것들이 많아졌다. 일이 수월해지기는커녕 더 어려워졌다. 나에게 더 많은 이야기가 쌓일수록 능숙해지는 게 아니라 서툴러졌다. 하나가 괜찮은 것 같으면 꼭 다른 하나가 마음에 걸렸다. 이해나 공감은커녕 일이나 잘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꽤 오랜 시간 나를 힘들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실하게 나에게 도달한 이야기들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입사 6주년이 된 어느 날 처음 들었다. 나는 운이 좋아 매일 아침 출근을 해서 일을 하고 돈을 벌며 보고 들었던 이 이야기들을. 그리고 이 이야기들을 보고 듣는 과정 속에서 내가 느낀 감정들을 한 번쯤은 기록하고 싶어졌다. 그리고 언젠가 이 성실하고 고유한 이야기들이 더 많은 세상을 균열시키고 확장시킬 수 있기를, 내 세상에 그랬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