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의 다양성을 기대하며
휠체어를 타는 사람이 드라마나 영화에 등장하면 이번에도 ‘역시나’ 그는 서사를 가진 주인공이다. 만약 주인공이 아니라면 최소 주인공의 가족이나 친구와 같은 주조연급의 역할을 한다. 물론 비장애인 주인공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휠체어를 타는 사람이 화면에 등장하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반갑다. 하지만 ‘휠체어를 탄 사람은 주인공이다.’ 역시 나만의 클리세가 되어버렸다. 좋지만 어딘가 아쉽다.
그런 나에게 영화나 드라마와 같은 매체에서 장애를 가진 인물이 가장 임팩트 있게 등장했던 순간은 아이러니하게도 주인공이 아니라 장애를 가진 인물이 행인 1 정도의 역할로 뒷배경에 자연스럽게 등장하고 자연스럽게 사라진 순간이었다.
오래전 외국 영상을 보다 마주한 짧은 장면이었는데 주인공 뒤로 배경처럼 지나가는 인물이 ‘의수’를 사용하고 있었다. 나는 의수를 사용하고 있던 행인이 사라지고 나서도 영상을 보내는 내내 ‘다시 등장하겠지.’’, 무슨 역할이려나.’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는 말 그대로 ‘지나가는 사람’으로 등장했는데 ‘마침 의수를 사용하고 있던 사람’이었다. 그는 본인의 역할을 다하고 화면에서 쿨하게 사라졌고, 쿨하지 못한 나만 오지 않을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분명 세상은 비장애인으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은데, 우리가 사는 세상은 마치 ‘비장애인’으로만 이루어지는 세상에 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도대체 장애를 가진 사람을 마주칠 일이 없으니까. 2022년 기준 대한민국의 장애 출현율은 5.2% 수준이다. 100명의 사람이 모여 있으면 그중 5명은 국가에 등록된 등록 장애인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그리고 현실뿐만 아니라 가상현실에서도 5%의 장애인이 등장하는 건 보기 드물다.
얼마 전 인스타그램에서 우연히 나이키 광고를 봤는데, 나에게 너무나 ‘낯익은 발’이 반가웠다. 바로 ‘발 보조기’를 한 아이의 발이 나이키 운동화를 신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나에게는 너무 낯익지만 아마 대다수는 모를 그 발이 너무 반가웠다.
발보조기는 뇌병변과 같은 증상으로 보행에 어려움이 있는 아이들의 발 변형을 예방하거나 변형된 발을 교정하기 위한 보조기기인데, 이 발보조기를 한 아이의 발이 나이키 운동화에 쏙- 들어가는 장면이었다. 발보조기도 발보조기였지만 더 인상 깊었던 건 발보조기를 한 아이의 발이 또 다른 3명의 발과 함께 보였다는 사실이었다. 아마도 이 사실은 발 보조기를 아는 사람만 알아차리지 않았을까?
나중에 찾아보니 이 광고는 나이키 이지온(EasyOn)이라는 모든 연령대와 체형의 사람들이 쉽고 빠르게 신고 벗을 수 있도록 디자인된 적응형(Adaptive) 신발 라인이었다. 이지온 라인 개발 과정에는 부모와 아이들 그리고 장애인 커뮤니티의 의견을 반영하여 제품이 개발되었다고 한다. 조금 더 호들갑을 떨어보자면, 2018년 기준 미국의 장애인 인구수는 전체 미국인의 약 26%를 차지한다고 한다. 4장의 사진 중 1장, 25% 만큼 노출시킨 것도 나이키의 고도의 전략이 담긴 깊은 뜻 아닐까!
그리고 게시글에서 ‘장애’가 언급하거나 ‘생색’을 했으면 이 정도로 내 마음에 들지는 않았을 텐데, 나이키는 ‘장애’를 언급하는 대신, 한 번이라도 아이었던 적이 있거나 한 번이라도 부모였던 사람이라면 쉽게 상상해 볼 수 있는 이런 ‘보편적인 문장’으로 이지온의 편리성을 강조한다.
부모의 하루는 항상 쉽지만은 않다.
정신없는 아침, 나이키 이지온 신발은 내 할 일을 하나 덜어준다.
A day in the life of a parent isn’t always easy.
On a chaotic morning, Nike Easy On shoes take another thing off my plate. -Katie, Mom
잘 만들어진 다양성 광고는 이런 것 아닐까. 너무 당연하고 자연스러워 생색조차 낼 필요가 없는 것, 알아 차린 사람은 그래서 더 감동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