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순간 불편하지만 매 순간 불행하지는 않은
장애 감수성을 고양시키기 위해 흔히 “당신도 언제든 장애인이 될 수 있어요. “, “우리 모두는 예비 장애인입니다. “라는 말들을 한다.
데이터를 살펴보면, 비장애인으로 태어났지만 사고나 질병으로 장애를 갖게 되는 중도 장애인의 비율은 전체 장애인의 약 90%를 차지한다. 위의 말들은 단순히 인식 개선을 위해 하는 좋은 말들이 아니라 ‘사실’이다. 그런데 과연 이 말을 듣고 비장애인들의 장애 감수성이 올라갈까.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첫째, 아무리 데이터가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대부분의 비장애인은 장애인이 되기 전까지는 그 사실을 외면하고 살기 때문이고,
둘째, 아무리 장애에 대한 개념이 발전해 왔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사람들은 장애를 ‘손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OECD국가 중 건강 염려증이 가장 심한 한국인들에게는 이런 문장들은 감수성이 아니라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생기지 않을까.
그러다가 <장애인과 함께 사는 법 (백정연, 유유출판사)>를 읽다가 발견한 문장이 바로 “모든 집마다 장애인이 있으면 좋겠어. “ 였다. 발달 장애인에게 쉬운 정보를 제공하는 회사를 운영하는 비장애인 아내가 척수 장애인 남편과 살면서 경험한 이야기들이 담긴 이 책에서 저자는 장애인을 ‘나와는 전혀 다른 존재‘로 인식하는 사람들을 만나거나 사회가 장애를 ‘개인의 책임’으로 간주하는 일을 겪었을 때 하는 말이라고 했다.
가족 중에 장애인이 있다면, 우리는 장애인을 ’ 나와 전혀 다른 존재‘로 인식하지도 않을 거고, 더 이상 장애가 ‘당사자’나 ‘가족’들만의 책임으로 생각하지 않지 않을까. 당연히 그 가족은 내가 누리고 경험하는 것들을 모두 마땅히 누릴 수 있고, 필요하다면 국가의 지원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언젠가 장애아이를 키우는 부모님이 “장애가 있다는 건 매 순간 ‘불편’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매 순간이 ‘불행’한 건 아니다.”는 말을 본 적이 있다.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인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비장애인으로만 이루어졌다고 착각하는 것만큼 불행한 사회가 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