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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비아 Oct 14. 2020

물 위의 집 #1

침이 더블침대 왼쪽에 도착했다. 부드러운 빛과 먼지 낀 유리. 창문은 필름특유의 지직 잡음을 내며, 바깥 풍경을 수백 개의 점으로 기록했다. 빛바랜 운하와 밧줄, 물에 잠긴 녹색 갈대, 버드나무. 시선을 어두운 침실안으로 이동했다.  방에는 가구가 없었다. 못에 걸린 캔버스천 가방과 플라스틱상자가 보였다. 오른쪽 구석의 천조각을 걷고, 가슴높이의 문을 열었다. 이웃집 배 앞머리가 보였다. 허벅지에 닿는 손잡이를 당겼더니, 엔진이 숨어 있었다. 나에게 고정된 아침은 없다. 여행자의 아침은 매번 새롭다. 지난 런던에서의 일주일은 호스텔 9인실 도미토리에서 지냈다. 세 개의 삼층침대와 틀에 맞춰 잠든 여행자의 모습이 하루의 첫 피사체였다. 꼭 테트리스 게임에  차곡 차곡 쌓인 도형같은 사람들이었다. 초록빛이 도드라진 아침은 예고편 같았다. 정해지지 않은 종류의 공간과 삶을 마주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갔다. 탁 트인 공간에 쏟아진 여름빛과 알록달록한 커튼 조각이 뭔지 모를 해방감을 주었다. 왼쪽 창가 구석은 부엌이었다. 원목으로 마감된 서랍과 찬장, 오븐.  양념, 인도산 홍차, 접시, 컵, 냄비, 빵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정리되지 않은 물건들은 걱정이 없어 보였다. 주인이 자주 요리를 하는 모양이었다. 뜻밖의 기대감이 생겼다. 디지털 피아노가 놓인 책상을 따라 모퉁이를 꺽으면 창문을 가린 블라인드, 그 위에 걸린 그림 한 점. 그리고, 아래는 세상에 배를 조종하는 키였다. 핸들 위 망원경과 두 개의 작은 계기판, 다리가 긴 동그란 의자가 전부였다.  배에 있을법한 복잡한 항법장치가 없었다.


의자에 항해 가이드처럼 놓여진 얇은 책.  FREEDO 여정이라고 적힌 표지를 펼쳤다. 자유로 가는 법 이라고 했다. 25개의 상징을 통해 꿈을 이르는 열쇠를 찾을 수 있다고 했다. ‘자유’는 당신이 살고 싶은 삶의 방식이라고 했다. 그래서, 아주 개인적이라고. 한 개인이 상징과 기호를 통해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해석하는 방식을 담은 인생매뉴얼이었다. 사물을 다르게 보고, 새로운 관점으로 반응하는 것. 연금술사가 될 수 있는 레시피를 발견했는데, 해독할 수 없는 상태에 나는 빠진 것 같았다. 평소에 보지도 않는 과학잡지에서 로켓발사원리를 읽는게 쉬울 것 같았다. 갑자기 나는 좌표를 알 수 없는 지구의 한 점에 떨어진 것 같았다. 인생항해 가이드라니. 어떤 종류의 사람이라면 인생은 마땅히 이러하다고 정의내릴 수 있는지 나는 도무지 알수 없었다. 산소가 필요했다. 다섯걸음. 배 갑판이었다. 두 개의 회색 캠핑의자, 갈색 파라솔,  난간에는 허브와 채소를 심은 화분들, 양초, 바닥을 덮은 매트. 나는 숨이 가빴다.

 


들숨과 날숨에 어제 기억이 실렸다.

우리는 영국의 어느 운하 위에 떠있었고, 한여름 바깥은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버스처럼 양쪽 벽으로 난 끝없는 창문말고는 거실은 특별히 배라는 느낌을 주지 않았다.  파리에서 지냈던 좁은 옛날 아파트에서 바로 공간이동을 했다면, 전혀 눈치재지 못했을 것이다. 밧줄로 단단히 묶인 배는 흔들림이 없었다. 그러나, 나는 공원입구에서 부터 그와 걸어서 운하에 도착했다. 물을 따라 늘어진 이웃 배를 보았다. 한눈에 봐도 그의 집은 무적함대를 연상시켰다. 폭이 좁은 다른 배들과 달리, 두 배는 넓은 네이비색 외관은 단단해 보였다. 영국인답게 많은 배의 지붕은 정원처럼 화분과 장식품, 반짝이는 전구를 달아 놓았다. 남자의 지붕에는 자전거, 플라스틱 고무보트말고는 어떤 장식도 물건도 없었다. 널빤지를 밟고 배 갑판을 따라 안으로 갔다. 신발을 벗고, 배낭은 구석에 놓았다.  거실은 작은 벽난로, 나무 바닥과 벽이 시골 별장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공원 안에 있는 운하는 오솔길과 나란히 붙어 있었다. 운하를 따라 산책하는 발자국 소리도 조용해졌다.


나는 양말냄새와 맨발이 신경쓰였지만, 잠자코 들었다. 그는 거실 침대에 앉은 나의 양말을  막 벗기고, 맛사지 하고 있었다. 갑작스럽게 벌어졌다. 우리가 처음 만난 지는, 그러니까 내가 런던에서 기차를 타고 남자의 배에 도착한지는 한 시간이 채 되지 않았다. 그에게 배는 엄밀히 따지면 물 위의 집이었다.


왼쪽 발에서, 오른 쪽, 어깨에서 허리. 남자의 손이  스친 살갗마다,  따뜻한 피가, 나중에는 미세하게 전기가 흘렀다. 계절이 지나서, 구석에 치워둔 크리스마스트리 꼬마 전구에 불이 들어 오는 기분이었다. 여행의 피로와 경계심이 느슨해졌다.

“ 있잖아요. 당신 손가락에… ” 이완된 목소리로 내가 말했을 때,  남자가 먼저 레이키에 대해 말했다. “ 한 사람의 에너지 파장을 다른 사람에게 보내는 거에요.” 그는  한참동안 그것의 원리에 대해 설명했다. 그리고, 그는 다시 생각났다는 듯이 맨 처음 대화를 이었다.

“ 상대에게 애인이 생겼다는 걸 숨기고 싶지 않아요. 열린 관계라고 하죠. 말하자면, 음식같은 거에요. 다양한 종류의 음식을 먹고 싶은 욕구가 있잖아요. 십 년 동안 똑같은 저녁을 먹는다고 상상해봐요. 아무리 맛있어도 언젠가는 질려 버리죠.”

새로운 사랑을 놓치고 싶지 않다는 뜻이죠

“모든 헌 것은 새로운 것이었어요. 인생엔 당연히 빈틈이 있게 마련이에요. 그걸 다 미친놈처럼 일일이 메울 순 없어요.” 내가 좋아하는 영화대사를 말해 버렸다.

“ 나는 가능성에 대해 말하는 거에요. 몸과 생각은 흘러야 해요. 탐색 할 수 있는 여지가 있어야 해요.

“그럼, 동시에 사랑을 해 본 적이 있어요?” 나는 물었다.

“두번 째 아내와 함께 있을 때요. 그녀는 타이완에서 왔어요.”

“ 질투, 소유욕 없는 두 개의 사랑이 정말로 가능해요?”

 “한 사람만 사랑한다고 해서, 복잡한 감정이 없는 건 아니에요. 산책하고 돌아온 기분이죠.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집에 있는 상대에게 더 잘하게 되요. ”

“ 당신이 상처 받은 적은 없었어요?”

“ 결국 그녀는 떠났어요. 아내와 사이가 멀어졌어요. 같이 보내는 시간이 적으니깐 대화거리가 줄어 들더라구요.  처음부터 열린 결혼을 싫어 했어요."


어제 오후에 도착해서 나눈 대화 조각을 되짚어 보고 있을 때, 존슨이 숲길에서 걸어 왔다.


다음 글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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