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노인에 대해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알거지였다. 이란에 도착해서 삼일 째 되는 날, 현금, 지갑, 카메라를 몽땅 도둑맞았다. 그 때, 호스텔 도미토리를 갖이 쓰던 네덜란드 남자가 어떤 이야기를 들려줬다. 어느 마을에서 노인에게 길을 물었더니, 본인이 아는 커플을 소개시켜 줬다. 하룻밤을 그 집에서 지냈는데, 괜찮은 사람들이었다고 했다. 단지 커플은 영어를 못 한다고 했다. 전화번호를 줄테니, 연락해 보라고 했다. 수첩에 번호를 적고, 나는 곧 잊었다. 나는 나쁜 기억도 잊고, 모험에 열중했다. 갑자기 문자가 뚝 떨어졌다.
"우리 집에 언제와요?"
모르는 전화번호였다. 잘못 보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일주일 후에 똑같은 메세지가 도착했다.
"우리 집에 언제와요?"
나는 성가셔서 아예 전화를 걸었다.
"누구세요?"
"루벤. 루벤."
세 번쯤 반복했을 때, 그게 네덜란드 친구 이름이라는 걸 기억해 냈다.
"아! 반가워요. 나중에 북쪽에 가면 들릴께요."
"오케이. 오케이."
전화를 끊고, 나는 또 잊었다. 한달 후에 이상한 메세지가 왔다.
"카산에 언제 와요?"
그 커플 번호도 아니었다. 모르는 메세지가 계속 왔다. 결국, 알아냈다. 커플이 영어 할줄 아는 친구에게 물어봐 달라고 부탁했단다.
몇 달의 줄다리기 끝에 그날이 왔다. 히치하이킹을 하고, 봉고차를 탔다. 단발 곱슬머리, 다리에 기부스를 하고 목발을 짚은 남자가 마중나왔다. 언덕에 자리잡은 옛날 목조 가옥에 도착했다. 주인 커플, 테헤란에서 온 커플, 단발머리 통역친구 커플. 모두 여섯명이었다. 여행을 하다가 만난 사이라고 했다.
카페트가 깔린 마루에 둥글게 앉았다. 밖은 사막 한여름이었다. 처음 만난 사람들과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고, 음식을 먹었다. 눈,코,입,귀를 통해 어딘가 숨어 있던 감정이 나타났다. 우리는 서로 궁금했고, 만나고 싶었고, 연결되고 싶었다. 나는 평소에 즐기지 않는 낮술을 마셨다. 어딘가에 존재하지만, 닿을 수 없는 신기루 같은 열기가 퍼졌다. 내가 까치집 머리로 나타나도, 기부스한 다리로 그가 춤을 춰도, 여자친구가 담배를 태워도 우리는 서로 신경쓰지 않았다. 대문 바깥은 달랐다.
밤에 여자들은 방에서, 남자들은 거실에서 잤다. 다음 날, 우리는 빵을 포장했다. 주인부부는 동네 방앗간에서 밀을 빻아서 직접 빵을 만들었다. 포장해서 테헤란까지 차로 배달한다고 했다..
"빵 만드는 건 어떻게 배웠어요?"
" 스승님께."
"자전거 여행은 어떻게 시작했어요? 여자가 타면 불법이라면서요."
"스승님께."
" 전통악기는 어디에서 배웠어요?"
"스승님께."
그 날, 부부의 말끝마다 나왔던 노인을 만나러 읍내에 갔다. 전통이란양식 집은 흛벽이 드러나 있었다. 툇마루에 흙묻은 낡은 셔츠를 입은 노인이 앉아 있었다. 인사를 했다. 초라한 겉모습에 실망했다. 그 때, 노인이 유창한 영어로 옛날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19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때문에 프랑스로 망명했다고 했다. 빵굽는 기술, 영어는 유럽에서 배웠다고 했다. 목수일도 했다고 했다. 지금은 오래된 전통가옥을 사서, 하나씩 직접 고치고 있다고 했다. 단숨에 노인은 나를 사로잡았다. 호스트부부의 삶이 테헤란에서 온 두 커플과 아주 달랐던 것은 이 노인때문이었다.
저녁은 닭고기케밥으로 정했다. 닭고기를 꼬챙이에 끼워, 양념을 바르고 숫불에 구웠다. 마을이 내려다 보이는 마당에 앉아 이야기를 시작했다. 단발머리가 스스럼없이 걱정을 털어 놓았다.
" 취직하고, 돈 벌고, 결혼하고 싶은데... 테헤란에서는 되는게 아무것도 없어요.
일자리는 없고, 월급에 비해 집값은 말도 안되고. "
엇비슷한 고민을 듣고 나니 테헤란과 제주는 사라지고, 모두가 지구에서 같은 시간대를 살고 있다는게 실감났다. 그 때서야, 우리의 존재는 개별적인 것이 아니라 관계를 맺고 있음을 느꼈다.
"솔직히 말하면, 모두 같은 고민을 하고 있어요. 거대한 구조속에 점같은 개인은 무기력해지죠.
당신들은 지금 잘 하고 있어요.
여행을 좋아하고, 같은 뜻을 가진 동지를 만나서, 커뮤니티를 만드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