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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비아 Nov 01. 2020

물위의 집 #2

우리는 인사를 나눴고,  그가 찻물을 올렸다. 파라솔 그늘에서  차를 마시는 동안, 존슨이 접시를 내왔다. 그는 점심 약속이 있는데, 내가 원한다면 같이 가도 된다고 했다.  자폐증에 걸린 걸린 19살 남자아이를 돌본다고 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외출해서 식사를 하고, 음악을 들으러 간다고 했다. 모든 비용은 부모가 낸다고 했다. 특별히 하는 일도 없고, 돈도 많이 벌어서 좋다고 했다. 나는 내키지 않았다. 한 번도 그런 종류의 사람과 어울려 본 적이 없었다. 거북했다.


 “ 선데이로스트 먹을 거에요. ” 라고 그가 덧붙였다. 나는 변덕스러운 아이처럼 가겠다고 대답했다. 일요일에 가족끼리 먹는  전통 고기요리라고 들어서, 전부터 무척 궁금했다. 프리도의 차를 타고, 레스토랑에 도착했다. 구석 맨 안쪽에 먼저 자리를 잡고, 기다렸다. 젊은 남자와 아버지로 보이는 사람이 테이블에 다가와서 인사를 했다. 아버지는 떠났고, 브래들리는 남았다. 주문한 로스트비프 두 접시, 야채만 수북히 쌓인 한 접시가 나왔다. 나는 그제서야 부엌에 냉장고가 없었다는 사실과 우리가 먹은 요리가 빵, 야채, 과일이었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자기세계에 빠져 눈을 마주치지 않는 브래들리, 고깃집에 와서 자신의 입맛대로 먹는 채식주의자 존슨, 여행 중독자 우리 셋은 이 전통적인 레스토랑과는 썩 어울리지 않았다.


나는 브래들리가 먹는 모습을 몇 번 훔쳤다. 요크셔푸딩을 그레이비 소스에 찍어 입에 넣었다. 짭쪼롬한 빵과 진한 고기국물이 괜찮았다. 소고기는 통째로 오븐에서 오래 구운 후에 얇게 썰어서 나왔다. 촉촉한 소고기는 혀에서  녹았다. 곁들어진 완두콩, 당근, 구운 감자도 먹었다. 나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계속 먹었다. 접시 바닥까지 깨끗하게 청소했다. 보통 이럴 때는 음식이 너무 맛있거나 분위기가 어색할 때인데, 두 가지 다였다. 존슨은 가끔 브래들리에게 말을 걸거나 냅킨을 챙겼주었다. 식사가 끝나고, 남자들은 화장실에 갔다. 나는 건물 입구에서 기다렸다. 그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나도 모르게 싱긋 웃었다. 아, 이제 펍에 가서 라이브 음악을 들을 시간이었다.


 갑자기 브래들리가 그를 막 스쳐간 여자에게 달려 들었다. 그녀는 쓰러졌고, 브래들리도 몸의 중심을 잃었다. 일행과 존슨이 브래들리를 떼어냈다. 그는 발버둥쳤다. 슈퍼맨처럼 힘이 세졌다. 존슨은 자신보다 몸집이 두배인 브래들리의 팔을 뒤로 제껴서 가까스로 제압했다. 청년의 입에서 하얀 거품이 나왔다. 여자는  다친 것 같지는 않았다. 삼십 분 후에  우리는 차에 탔다. 존슨은 브래들리를 집에 데려다 줘야하고, 아까 그 여자에게도 전화를 하려면 시간이 꽤 걸릴 테니, 나보고 먼저  가라고 했다.  혼자 주소도 없는  배에 돌아가라니. 나는 휴대폰도 없었다. 유럽에서 고장나는 바람에, 쭉 없는 채로 살았다.  조수석 앞 박스를 열어 잡동사니를 손으로 쳤다. 펜을 찾았다. 손바닥에 공원이름을 적었다. 거기까지 갈 수 있다면, 안에서 운하를 찾는 건 어렵지 않을 테니깐. 그는 버스정류장에 내려줬다. 일요일이라 버스도 드물었다. 더듬더듬 배에 도착했다.  


밤이 되도 그는 오지 않았다. 나는 연락할 방법도 없었다. 속이 탔다. 밤12시에 프리도가 왔다. 신발을 벗지도 않고, 바로  캠핑의자에 앉았다. 내가 괜찮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했다. 작은 통을 열어, 네모난 종이를 꺼내고 담배잎을 넣어 말았다. 한 개피를 입에 물고, 라이터를 켰다. 나는 자리를 피했다.  천천히 카모마일 차 두잔을 끓여서, 그에게 갔다. 한 두 모금 마시더니, 프리도는 그제서야 생각났다는 듯이 찬장쪽으로 갔다. 접시를 들고 왔다. 아몬드, 오렌지, 꿀, 초콜렛, 작은 녹색 잎.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재료들의 맛이 독특하고 달았다.

나는 늦었다고 그에게 말했다.

“ 집 근처에 도착했는데, 마침 딸이 전화했어요. 시내 음악축제에 갔는데, 돌아오는 교통편이 끊겼다는 거에요. 런던에 가서 딸 태우고, 집에 데려다 주고 오는 길이에요. 이혼한 아내랑 같이 살아요. 아들도 있구요”

“ 대단한 아빠네요.”

“그런 건 아니지만, 딸과 아들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요.”


남자는 옛날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그녀와 사귀었다고 했다. 존슨은 대학에 가지 않고, 미용사가 되었다. 여자친구와 열 아홉살에 결혼했다. 나중에는 제법 큰 미용실을 직접 차려서, 직원도 많이 거느렸다. 아이들이 생겼고, 정원이 있는 주택을 구입했다.결혼 생활을 유지하는데, 비용이 많이 들었다. 잔디밭, 넓은 거실, 좋은 전망을 위해서 그는 쉬지 않고 일했다. 사장이 되고 나서, 금전적으로는 여유가 생겼지만, 시간은 거의 사라졌다. 그만두거나 갑자기 아파서 출근 못하겠다는 직원들 관리, 건물유지비, 손님관리, 일정한 서비스 제공등 그는 이제 집에 가서도 일 생각을 해야했다. 그렇게 결혼 생활 십오년차 였을때, 아내가 바람을 피웠다고 했다. 그는 충격을 받았고, 이혼했다. 그리고 나서 자신은 많이 바뀌었다고 했다. 배로 이사를 왔다. 그는 진작에 이런 삶을 살걸 후회했다고 했다. 배에서 5년째 지내고 있는데, 엄청난 돈을 아낄 수 있다고 했다. 유지비가 적게 드니 과거처럼 일만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자유시간이 많아서, 그는 꿈들을 펼치며 살수 있다고 했다.

존슨은 무엇이든 대단한 일도 드라마틱하게 별거 아닌 것 처럼 말하는 사람이다. 십년 만의 폭염, 물가에서 지내는 겨울의 추위, 장애인을 돌보는 일, 화장실 오물을 이틀에 한번씩 공원 쓰레기통에 버리는 일, 자주 이사가야 하는 집. 자신이 원하는 꿈을 이룰 수 있다면, 어떤 어려움도 그는 거뜬히 해내겠다는 무의식이 운하 밑 진흙에 깔려 있었다. 계속 자유롭게 사랑할 수 있다면 말이다.

오늘은 이사하는 날이다. 운하에 있는 배들은 규칙을 따라야 한다. 15일마다 이동하지 않으면 벌금을 물어야 한다. 같은 장소에 정박하려면 연회비를 내야 하는데, 보통사람들에게는 아주 비쌌다. 이동은 말로는 간단하게 들린다. 영국의 운하는 특이하다. 수면의 높낮이가 일정하지 않아서 배가 이동할 수 없는 문제점을 고치기 위해, 댐처럼 수문을 만들었다. 물을 가두는 셈인데, 이사할 때 수문 서너개를 열고 닫고 지나가야 한다. 무슨말이냐 하면 혼자서는 거의 불가능하다. 적어도 두명은 필요하다.


아침에 존슨의 친구, 단발머리 남자가 왔다. 일단, 파라솔, 의자를 접었다. 배의 지붕을 간단하게 정리하고, 땅에 박은 못을 빼고 밧줄을 뺐다. 거실로 들어간 존슨은 그림을 빼고, 블라인드를 열었다. 유리에는 배의 고유번호가 있었다. 398612거실은 사라지고, 조타실로 완벽하게 변신했다. 그는 키를 양손으로 잡고 천천히 돌렸다. 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곧 친구에게 키를 넘겨주었다. 그는 몇 번 항해를 해본 솜씨였다. 첫번째 수문이 나타났다. 친구는 정확하게 문앞에 배를 멈추고는 땅으로 올라가서 존슨과 함께 문을 열었다.  양쪽에서 둘은 톱니바퀴에 공구를 끼우고 여섯 번 원을 그렸다. 꼭 평균대처럼 생긴 긴 막대가 천천이 벌어지면서 물이 쏟아졌다.


나는 배 현관에 혼자 서 있었다. 배가 4미터 깊이의  수영장에 갇힌 느낌이었다. 정면은 물 빠진 높은 벽뿐이었다. 댐이 물을 방류하는 것처럼, 문이 열리자 거대한 물줄기가 쏟아졌다. 순간적으로 배가 갸우뚱했다. 나도 한쪽으로 기울었다. 다행히 균형을 잃지는 않았다. 오초 쯤 지나고 나니 물기둥은 안정적으로 일정했다. 배는  내 키만큼 높이 자랐다. 금새 배는 땅과 수평하게 떠올랐다. 그리고, 친구는 조타실로 돌아와서 키를 잡고 수문을 통과했다. 존슨도 평균대를 잠그고 배에 합류했다. 우리는 이동했다. 속도는 느리게 가는 자전거랑 비슷했다. 다리 밑을 한 번 지나고, 수문을 두 개 더 통과했다. 강폭이 좁아지거나 다른 배를 마주칠 때는 꽤 운전기술이 필요해 보였다. 새자리를 찾았다. 둑에 못을 박고, 밧줄을 묶고 고정시켰다. 바닥이 거의 콘크리트라서 못을 박기가 어려웠다. 이사를 마치고, 셋은 갑판에 모였다. 의자에 앉았다. 존슨의 얼굴에는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상자를 열고, 얇은 종이에 담배가루를 넣고 말아서 피웠다. 한 대 태우고 나서, 그는 부엌에 가더니 뚝딱 세 그릇을 들고 왔다. 밥에 야채, 허브, 오일을 얹었는데, 맛있었다. 친구도 점심이 괜찮다며 칭찬했다.


콘크리트 바닥에 두꺼운 못을 박고, 밧줄을 묶었다. 조타실은 블라인드를 내리고, 그림을 제자리에 걸었다. 거실로 변신했다. 갑판에 캠핑의자를 꺼내고, 파라솔을 펴서 정원도 완성했다. 오늘은 옥상이 생겼다. 숲속의 나무가지가 배지붕으로 늘어져서 커텐이 되었다. 물과 육지를 나누는 경계, 익명성을 보호받는 막이었다.


저녁메뉴를 생각했다. 지난번 내가 사온 버섯과 토마토가 생각났다. 뭔가 근사한 날이니 만큼 특별한 저녁이었으면 했다. 마지막 밤이기도 했다. 나는 내일 떠난다.

 "야채 바베큐 할 까요? 숲에 나뭇가지도 많이 보이던데요. 불은 내가 피울께요. "

그는 피아노 책상 옆에서 바베큐통을 찾아 냈다. 신발상자 만큼작았다. 나는 배 지붕으로 올라가서 바베큐 뚜겅을 열었다. 숲에서 주운 나뭇가지와 미니 장작을 넣었다. 가스총으로 불을 지폈다. 순식간에 나무에 불이 옮겨 붙었다. 십분 후에 불이 사그라 들고,  숯이 보였다. 그릴을 얹고, 위에 채소를 놓았다. 바닥에 얇은 담요와 요가매트를 깔고 반쯤 누웠다. 맞은편은 잔디밭 멀리 저택이 보였다. 모든 것이 마음에 들었다.  오킬로미터 쯤 옮겼는데, 이웃, 풍경, 주차장, 슈퍼마켓. 주위 환경이 싹 바뀌었다. 존슨이 치즈와 나무 그릇을 들고 올라왔다. 꼭 두부처럼 생겼는데, 원래 구워서 먹는 할루미치즈라고 했다. 그릇에는 밥과 베이비 시금치, 소스가 함께 섞여 있었다.

그도 한쪽 어깨를 바닥에 비스듬하게 누웠다.존슨이 말했다.

 “당신은 꿈을 이루고 있죠?

 꿈을 꾸는 건 중요하죠.

 나한테 가장 의미있는 일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거에요. 만지고 사랑하는 거요.”

그랬다. 나는 몇 년째 평생 꿈꾸던 여행을 하고 있다. 모두 나처럼 살고 싶다며 부러워 했다. 나도 정말 기뻤다. 일정한 기간동안은. 지금 나는 어지럽다. 두 발이 공중에 붕 떠있기 때문이다. 나는 일상이 필요하다. 지루하고 쓸모없이 느껴졌던 그 시간이 비타민처럼 느껴진다. 헌데, 아무도 내 말을 듣고 싶어하거나 믿고 싶어하지 않는다. 자신들의 꿈 이면에 그런 티끌이 있다는 것을 상상할 수도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기 때문이다. 꿈이 나를 때려 눕히고 있었다. 나는 몹시 지쳤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이 듣고 싶어하는 꿈의 모조품을 말했다.

남자의 시선은 나의 기분을 탐색 했다. 우리는 침실로 갔다. 나는 침대에 누워 옷을 벗었다. 존슨의 알몸이 내 위로 포개졌다. 그는 얼굴, 가슴, 다리에  키스를 퍼부었다. 나를 꽉 끌어안고 온 몸에 힘을 주었다.

영화에서 봄직한 테크닉을 썼다. 나의 몸은 기대했다. 어느 시점에서, 째각째각 움직이던 초침이 멈췄다. 나는 아까부터 달아오르고 싶었는데, 존슨의 몸은 맥빠지게 했다. 순간 전구의 필라멘트가 툭 끊기듯이, 욕망과 인내심이 동시에 잘려 나갔다.

“존슨.”

“음…”

“안되겠어요.” 그제서야 내 몸에 파묻은 얼굴을 들고, 존슨은 나와 눈을 마주쳤다. 남자는 이해했다는 듯이, 왼쪽 자신의 침대공간으로 미끄러졌다.


다음 날 아침, 지독한 햇살이 배 안으로 쏟아졌다. 우리는 아침을 먹고 있었다. 나는 입맛이 없었다. 빛은 연극 무대의 조명처럼 존슨의 얼굴을 낱낱이 비췄다. 언제부터 흰 머리가 저렇게 많았지? 어머나, 머리카락 밑 이마부분에 깨알같은 여드름이 잔뜩 숨어 있었다. 턱 밑에 제멋대로 자란 수염. 가만 생각해 보니 그가 세수하거나 샤워한 모습을 본적도 없다. 설마. 존슨은 하룻밤 사이에 십년은 늙었다. 차를 마시면서, 그는 계속 뭐라고 말을 했다. “ 내일 스위스에 가요.  요가랑 여러가지 워크샵이 있는데, 사실은 내가 호스트인데, 준비를 별로 못했어요. 거기 누가 오는 줄 알아요? 옛날 애인인데, 그녀의 현재 애인도 같이 와요. 그런거 상관없이, 인사할 때 우리는 껴안고 키스할거에요.” 내 귀에는 남자의 오디오가 들리지 않았다. 눈도 감고 싶었다. 우리의 마지막 장면이다.


나는 런던으로 돌아갔다. 한 번 운하를 인식하고 나니, 물은 늘 가까이 있었다. 런던, 맨체스터, 바스. 배에서 일어나 말끔한 양복을 입고 출근하는 런던의 젊은 남자, 은퇴하고 아내,개와 함께 물위에 떠다니는 중년남자, 그림을 그리며 영국애인과 휴가를 보내는 일본여자. 나는 새로운 시선으로 도시를 바라보게 되었다. 역사적으로  죽은 공간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매력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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