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모네이수 Feb 25. 2024

뉴 암스테르담에서 온 커피.

Lot 61 Coffee Roasters Amsterdam

최근 한국축구의 클린스만 감독의 리더십 문제로 인해 2002년 히딩크 감독의 리더십에 관한 많은 영상을 접하게 되었다. 벌써 20년도 지난 2002년 월드컵 시절 영상을 보니 히딩크감독의 더치식 영어가 반갑게 들렸다. 어릴 때는 잘 몰랐는데 히딩크 감독은 그 당시 잘 알지 못했던 한국에 어떻게 오게 된 걸까 궁금하다.

인연이 이어지는 방식은 알 수 없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우리가 데려 온 이 더치감독은 기존 방식과 전혀 다른 리더십으로 한국 축구계에 변화를 일으켰고, 한국 축구의 역사는 히딩크 축구 전과 후로 나뉘게 된다.


히딩크감독이 한국축구에 적응해 가며 비효율적인 의사소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적한 것은 선수들 간의 서열문화였다.


나는 개인적으로 우리나라의 서열문화 자체가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이에 따라 아랫사람을 무시하거나 괴롭히는 게 문제가 되는 것이지 우리나라는 전혀 모르는 사이라도 나이에 따라서 형, 언니 오빠 등등 이런 호칭으로 부르면서 친해지는 정서가 있기 때문에 장점도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는 어디를 가든 나이를 물어보는 게 일반적이고 처음 만나면 서로 자연스레 상하관계를 정리하지만 더치들은 그렇지 않다. 히딩크감독이 이러한 두 문화의 차이점을 인지하고 한국선수들을 주의 깊게 관찰했기 때문에 정확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었던 거 같다.


KLM 네덜란드 항공에서 크루들 사이에 나이나 경력에 따른 서열문화는 거의 없다. 나는 중동항공사 출신이라 이러한 근무환경은 익숙하다 생각했었다.


그런데 나는 오히려
이러한 시니어리티가 없는 근무환경이
너무나 낯설었다!

더치 문화에서는 나이를 크게 따지지 않기 때문에 나이가 많은 할머니 크루들이든 젊은 크루들이든 똑같은 근무강도로 일한다. 중동에 있을 땐 비교적 젊은 크루들과 함께 일했고 나이차도 크게 나지 않았다.


그런데 KLM에 일하면서 나보다 나이차가 한참인 20년 이상 경력의 크루들과 직접 손발을 맞춰 일해보니 그들과 동등하게 일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특히 노안이라든가 무릎이 아프다 말할 땐 진짜 곤란해요.)

머리로는 이해하는데 마음이 따라주지 않는다고 해야 할까.


이 낯선 근무환경에서 어떻게 적응해야 할지 고민하며 내가 내린 결론은 한국식으로 예의를 갖춰 대하자였다. 어쨌든 시대가 바뀌었어도 '동방예의지국'의 나라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인데 나이 지긋한 선배들을 친구처럼 대하며 일하긴 힘들다.


그래서 그들에 대한 존경심을 가지고 그들에 대한 존중의 마음을 담아 선배 크루들에게는 깍듯이 대하는 것이 나의 정체성과 어울리는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내가 이 회사에 고용된 이유 중 하나는 더치크루들이 한국승객들을 대할 때 어려움이 없도록 도와주는 역할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도 한국인으로서 더치문화를 배우고 이해하며 존중하는 노력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시 생각해 보면 외국인 감독으로서 한국문화의 존중과 이해를 통해 한국축구의 강점을 살리고 단점을 개선한 히딩크 감독은 참 대단한 사람이다. 다음에 한국에 오실 때 제발 KLM을 이용하셔서 기내에서 뵐 수 있는 행운이 있었으면 좋겠다.






Lot 61 Coffee Roasters Amsterdam


Born in Sydney.

Raised in Brooklyn.

Roasting in Amsterdam.


처음에 원두 패키지에 쓰인 이 문구를 발견했을 때 오!라고 외치며 그냥 단순한 마케팅인지 진짜 스토리텔링인지 궁금했다.


암스테르담은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인 VOC(Vereenigde Oost-Indische Compagnie) 본사가 있었던 곳으로 세계최고 무역항구 도시였다. VOC직원들은 전 세계를 다니며 무역을 통해 조국 네덜란드에 커다란 부를 가져다주었으며 네덜란드 정부를 대신하여 효율적으로 식민지를 관리했다. 우리나라에 왔던 하멜도 이 회사의 직원이었다. 암스테르담 센트럴역 바로 앞 운하를 따라 줄 지어 서있는 건물들은 옛날 VOC회사를 구성하는 가문들이 소유한 집이라고 한다.





오스트레일리아가 영국의 식민지가 되기 전에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을 발견한 사람들은 네덜란드인들이었다. 참고로 뉴질랜드의 'Zealand'는 네덜란드의 서쪽에 위치한 해안마을의 이름을 따서 만들었다. 미국에서 인디언들과 가죽교육을 한 것도 네덜란드인들인데 이들은 지금의 뉴욕(New York)에 정착하여 원주민들의 습격을 대비하여 벽을 쌓았는데 그게 바로 지금의 월스트리트이다. 그리고 영국과의 전쟁에서 지면서 정착지를 뺏기게 되는데 뉴욕의 원래 이름은 뉴 암스테르담(New Amsterdam)이다.



그러니까 호주에서 태어나 뉴욕 브루클린에서 자랐고 암스테르담에서 로스팅한다는 말인데 역사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 이곳 암스테르담으로 다시 돌아왔다는 말인 거 같다. 마치 연어가 강물을 거슬러 올라오듯이 비로소 바로 시작점이었던 이곳 암스테르담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은 모양이다.





에스프레소와 라테를 시켰다. 에스프레소의 바디가 좋았는데 마시고 난 후 마시고 난 후 머릿속에 카카오가 떠올랐다. 진한 다크 초콜릿이 연상되는 맛인데 산미는 처음에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 산미가 조금 올라왔는데 오렌지주스 정도의 달콤한 산미가 느껴졌다.




라테는 우유의 고소한 맛은 없었고 건강한 카카오 우유 같았다. 초콜릿우유인데 단맛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맛이었는데 라테폼이 금방 사라져서 아쉬웠다.


갑자기 영화 '윌리웡카'가 생각이 나면서 개봉하면 보러 가야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카페 지하에 도로방향으로 난 창을 향해 앉아 오른쪽을 보니 미니쉘처럼 보이는 패키지들이 잔뜩 있었다.


딸기맛 미니쉘을 집어서 보니 상큼한 베리가 연상되는 커피라고 한다. 그리고 다른 패키지를 보는데 각 패키지마다 넘버링이 되어 있었다.




이 원두들이 꽤나 잘 나가는지 바리스타들이 수시로 원두를 채우러 왔다 갔다 했다.


마침 딸기맛 미니쉘을 잔뜩 집어가는 바리스타를 붙잡고 이 숫자들이 뭐냐고 물어보니 각 원두마다 이름이 다 있긴 한데 효율적으로 관리하려고 넘버링을 한 거라고 한다. 0에서 5까지의 숫자들이 있는 거 보니 총 6가지의 원두들인데 확실히 이름으로 부르면 번거로우니 번호로 부르는 게 더 편리할 거 같다.



딸기맛 미니쉘








2002년 월드컵을 후 베트남 축구 영웅이 된 박항서 감독님은 인터뷰에서 그 나라의 문화, 관습은 존중해야 한다는 걸 많이 느꼈다고 한다. 2002년 월드컵을 통해 히딩크감독과 인연을 맺어 동등한 파트너로서 존중하고 함께했었던 경험이 베트남 축구팀의 감독으로서 큰 도움이 되었던 거 같다.


히딩크감독은 더치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진지한 마음으로 한국 선수들을 이끌었고 한국선수들은 히딩크감독의 피드백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노력하였기에 월드컵 4강의 기적이 이루어졌다.


클린스만 감독은 한국문화와 한국축구에 대해 존중하는 마음이 털끝만큼이라도 있었는지 의문이다. 다른 문화를 존중하는 마음은 그 사람들을 대할 때 진지한 태도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내 기억엔 실망스러운 결과로 분통을 터트린 한국인의 마음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생글생글 웃던 그의 얼굴에서 존중의 자세는 볼 수 없었던거 같다.



작가의 이전글 암스테르담의 숨은 안식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