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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일간 Sep 03. 2024

꿈을 키우는 데 알맞은 온도는 없다.

내가 앉았었던 공간

부엌에 서 창문을 바라보았다. 복도식이지만 먼지가 가득 끼어 지나가는 사람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았다. 그 먼지들은 습기도 열기도 걸러주지 못했다. 들어오기 전 보였던 새파란 하늘과 구름은 사라져 보였다. 눅진한 공기가 계속 들어왔다. 문득 이 창문이 낯익었다.


여기 이 좁은 곳에 방이 있었다.

이제는 싱크대와 세탁기, 냉장고의 절반정도로 바뀐 공간. 십오 년 전 벽을 허물고 부엌으로 합쳐진 작은방. 너무 작아 제 몸을 다 주었으나 잊힌 작은방. 한동안 이곳에 방이 있었다는 기억도 못하고 있었다. 창문만이 그 작은방의 유일한 흔적이었다.  




그 방의 문은 한 번도 제대로 쓰인 적이 없다. 열려면 책장에 걸려 끝까지 열리지 않았다. 닫으면 안 그래도 좁은 집을 더 좁게 만들기에 닫은 적이 없다. 그 작은 방에 누워보려 했지만 머리가 문지방에 놓였다. 두 책장 중 하나는 나보다도 먼저 부모님을 알았다. 단 두 개도 양쪽 벽을 감추긴 충분했다.


만지기 싫은 책들이 가득했다. 책들이 만들어낸 울퉁불퉁 요철들 사이사이 먼지가 가득했다. 책은 대부분 누랬고, 그 색이 표지까지 물들인 것 같았다. 어렸던 나는 책을 한 권 보면 그 좁은 집의 장애물들을 지나 손을 씻으러 갔다.


일리아드 오디세이는 몇 번이고 펼쳐보았지만, 손만 더 깨끗해졌다. 세로로 쓰여있었고, 중간중간 한자까지 끼어있었다. 한자사전까지 가져와 도전해 봤지만 몇 장 넘기지 못했다. 아버지는 언제 이 책을 샀을까. 나 닮았으신 아버지니 분명 다 읽겠다고 사서 다 못 읽었을 것이다. 물어보진 않았다.


책장 대부분은 어려운 전공 서적들이었다. 1984, 동물농장, 멋진 신세계, 자본론, 이성과 혁명. 지금도 떠오르는 몇 권의 비전공 책들은 아버지의 20대를 알려주었다. 운이 좋아 아버지가 살아남았고 나도 있는거라 하신 아버지 대학 친구분 말씀이 떠오른다.  


창문은 커튼이 필요 없었다. 컴퓨터가 대신했다. 작은 화면을 보이기 위해 뒤에 엄청남을 숨기고 있는 모니터는 그 큰 본체와 비율이 알맞았다. 본체는 항상 반쯤 태어나다 말았다. 기계과 전공의 아버지는 컴퓨터도 독학으로 배우셨는데, 소프트웨어 세상뿐 아니라 기계안 부품 들에도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반쯤 태어나다 만 본체와 반에 반도 못 태어난 본체가 기억난다. 그리고 부품들이 책 사이사이 꼽혀있었다. 파란색 빨간색 전선들, 부품들, 누런 책들. SF보단 호러에 가까웠다. 컴퓨터나 부품들 모두 먼지가 자욱했는데, 그냥 그 방 전체가 먼지가 가득했다 싶다. 이른 아침에는 그 방에 잘 안 가려 했는데, 아침 햇살이 떠다니는 먼지를 더 선명하게 했기 때문이다.


책상은 꽤 커서 여러 괴물들이 살기 충분했다. 책상은 앞면에 자개장식이 달린 나무 가구였다. 안 어울리게 고급진 느낌이었고, 분명 잘살던 친척집에서 가져왔을 것이다. 위로만 열 수 있었는데, 놓인 물건들때문에 열어본 적도 없다. 쌀을 담는 뒤주가 아니었나 싶은데, 맨처음 어떻게 그 공간에 들어갔을지도 궁금하다. 남은 공간은 딱딱하고 불편한 하얀색 반원 모양 플라스틱 의자가 가득 채웠다. 거의 물건을 안사시는 부모님을 만난 이유로 몇 번의 이사도 거쳐 여기까지 왔다. 얇은 이불을 올려두고 앉았는데, 방석도 아니기에 계속 밀려났다.


그곳에 반바지와 하얀색 러닝셔츠 차림, 머리카락이 새카만 아버지가 앉아있었다. 회로를 연구하다 갑자기 마케팅과 전략 일을 하시던 아버지는 컴퓨터를 혼자 공부하고 계셨다. 그리고 그 덕에 게임도 많이 하셨다. 지금 내 나이에 게임을 하는 건 익숙하지만 그 당시 어른이 게임하는 집은 드물었다. 얼마 전까지 시냇가에서 송사리들이나 잡고 강아지와 뛰어놀던 나에게 모니터 속 게임은 새로운 차원이었다. 중저음의 드르륵 시동 걸리는 소리, 이어지는 삑 신호소리, 검은색 화면 속 깜빡이는 하얀 작은 막대기, 보기 싫지만 자주 보인 파란색 정지화면들.


아버지가 몇 번의 암호를 입력하면 단순한 색 너머 바다와 도시가 그리고 우주가 나타났다.  




오늘처럼 더운 여름이었다. 아버지를 집에서 볼 수 있었으니 당연히 일요일이었다. 게임하는 것을 지켜보았고 행복했다. 좁은 방 그 불편한 의자 말고는 앉을 곳이 없었으므로, 나는 아버지와 함께 붙어 앉았다. 아버지의 까슬까슬한 다리털이 느껴졌다. 반대편은 맨살에 플라스틱이 놀이터 미끄럼틀처럼 달라붙었다. 헐렁한 티는 살이 의자에 닿는 면적을 줄여줘서 좋았다. 닿는 살갗마다 무르는 느낌이었다. 조금 앉아있으면 이마와 등에 땀방울이 맺혔다. 어머니는 ‘그렇게 붙어 앉아있으면 안 더워?’라고 물었다. 아버지와 난 괜찮다고 소리쳤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버지도 엄청 더웠을 거고 좁아서 답답했을 것이다. 게임하는 것이 좋았을까? 아니면 아들과 붙어있는 것이 좋았을까? 나를 목마 태운 사진이 그렇게도 많은 걸 보면, 게임만은 아니었겠지.


무덥고 지저분한 좁은 곳에서 두 남자는 꿈을 키웠다.


세계지도를 펴놓고 중세시대로 돌아가 전 세계를 항해했다. 작은 방을 채운 8비트의 삑삑거리는 사운드 게임 음악은 나중에 첫 배낭여행에서 지중해를 보았을 때에도, 신혼여행으로 찾은 인도양 해변에서도 들려왔다. 영어 사전을 들고 두꺼운 매뉴얼을 추리하며 수십만 명이 사는 도시를 만들었다. 시민들이 모두 똑똑해지고 행복한 도시를 만들어보려 고민했지만, 모두가 같은 환경에서 살 수 없음을 깨달았고 나는 밤마다 하던 기도문을 수정했다. 인류의 문명을 키워보다, 문화와 지식만 쫓아서는 자칫 무력에 무기력해질 수 있음을 알았다. 지금과 달리 수없이 많은 로딩 시간들은 그다음 세상을 기대하게도, 아버지에게 뭐든 물어보게도 하였다.


그렇게 아들은 아버지 옆에 붙어 미래에 하고 싶은 것들을 챙겨두었다.




딸아이와 친가를 왔다.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말 좀 걸어주고 애교도 좀 부리면 좋겠건만. 아이는 자기 머릿속에 있는 세상에서 나오질 않는다. 무슨 무슨 요리를 해보고 싶다고 한다. 그러다 어떤 만화 같은 그림을 그리고 싶다 한다. 어디서 보았냐고 물어보니 SNS와 유튜브라 한다.


정답이란 건 없겠지. 화면은 커졌고 색은 더 진짜 같아졌다. 음악은 화려하고 고급져졌다. 하지만 그 속의 세상은, 그 너머로 꿈꿀 수 있는 세상은 그만큼 커지지 않았다. 데리고 같이 게임하고 싶지만, 나와 달리 눈이 안 좋은 딸아이라 애 엄마에게 들을 잔소리가 먼저 걱정이다. 반대가 되니 따질게 참 많다. 내가 마음껏 꿈꾸게 놓아두고 본인도 실컷 꿈꾸시는, 내가 수험생일 때도 게임을 즐기시던 아버지가 부럽고도 대단하다.


깨진 유리 조각을 붙인 듯한 가죽 소파 위에는 얇은 이불이 올라가 있다. 아이가 뛰어 앉자 이불이 밀려 내려간다. 옆에 앉았다. 아이가 내 팔을 감싸듯 딱 달라붙어 앉아 재잘재잘 이야기하며 물어본다. 살갗도 가죽도 닿아 덥긴 하지만 기분이 나쁘지 않다. 할머니가 ‘그렇게 붙어있으면 안 더워?’라고 묻는다. 딸아이와 동시에 ‘괜찮아요!’라고 소리친다. 그리고 핸드폰으로 바둑을 두시는 할아버지를 물끄러미 보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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