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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일간 Aug 20. 2024

성장을 지켜보는 즐거움. 응원과 부러움. (1)

내가 앉았던 공간

당신은 어떤 사람에게서 물건을 사고 싶나요?

당신은 어떤 사람과 일하고 싶나요?




처음 이 카페를 만난 곳은 동네에서 좀 먼 재개발 구역 끄트머리였다. 주변에 맛있는 커피집이 없나 인터넷으로 검색하던 중 심플한 디자인과 이름이 눈에 띄었다.


원두서점


카페 이름이 왜 서점일까? 원두 이름들은 데미안, 어린 왕자, 노인과 바다였다. 데미안. 10대의 나를 함께한 그 이름의 커피다. 쓰고 어둡고 위로가 필요한 그때의 맛일까? 궁금했다. 걸어서는 20분 정도 걸리는데, 집에서 책에만 빠져있는 아이와 수다 떨며 산책을 다녀오기는 딱 적당했다. 시큼함이 달큼함을 살짝 넘어서는 맛을 좋아하는 아이는 자몽에이드에 넘어갔다.


아파트 단지 두 개, 작은 공원 두 개와 산책로 입구, 대학교 후문의 정취와 초등학교 앞 작은 길, 자그마한 언덕들을 넘어가는 길이 생생하다. 신나게 수다 떨던 아이가 언제 도착하냐고 질문을 반복할 때쯤 땀에 흠뻑 젖어 도착했다. 재개발을 기다리는 가게들 사이 하얀색 카페는 멀리서도 눈에 띄었다. 한적한 길가만큼 사람은 없었다. 그 당시에는 아침 7시부터 5시까지 했다. 7시에 열기 위해 10시에 잠들어 5시에 출근한다고 했다.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청년 사장님은 머리가 장발이었다. 딸아이는 여자로 착각했다. 조그마한 가게에 기분 좋은 커피 향이 가득했다. 몇 개 되지 않은 소박한 메뉴판의 숫자들도 함께 소박했다. 정성과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소박하지 않았다. 취향을 물어보고 메뉴 하나하나 자세히 설명을 해주었다. 알아들으려 노력했다. 낯을 지금도 많이도 가리는 당시 딸아이는 7살이었는데, 그 작은 아이에게도 조심스레 어른 손님처럼 설명을 해주는 것을 한참 보았다. 아이의 눈이 초롱초롱 빛났다. 음료를 만드는 모습은 간단한 동작에도 정성이 드러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사람이 적어서 친절한 것은 아닐까? 이렇게 계속 장사를 할 수 있을까?


당연히 좋아서 들었던 생각이다. 좋았던 만큼 이 모습으로 계속 남았으면 하는 그런 느낌이었다. 우리 모두 세상에서 많이 보지 않았나. 나 조차도 그랬다. 처음 그 작았을 때, 앞으로 성장할 부분이 더 많이 보일 때, 그 열정과 순수한 마음이 커져나가면서 그 큰 공간을 채우기 위해 옅어지는 모습 말이다. 좋아하니깐 잘 되었으면 하지만 또 갑자기 너무 잘되어 이 모습을 못 볼까 걱정이 들었다.   




“3분 정도 기다려주세요.”

“앞에 주문들이 있어 5분은 기다려야 하는데 괜찮으시겠어요?”


조금씩 손님이 늘어가자 사장님은 뒤에 온 손님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오래 기다려야 해서 발을 돌리는 손님들도 생겼다. 내 눈에는 매장 밖에 그 되돌아가는 수입들이 눈에 밟혔다. 하지만 젊은 사장님들은 오히려 눈앞의 손님만 보는 듯했다. 바쁜 와중에도 되돌아가는 손님에게 미안함과 친절함을 담아 인사는 잊지 않았다. 친구라는 두 명의 사장님은 커피에 대한 애정과 친절함도 넘쳤지만, 작은 공간에서 전달할 수 있는 손님은 정해져 있는 듯했다.


그분들도 나를 보며 그렇게 생각했겠지만, 자주 다니다 보니 비슷한 얼굴들이 많이 보였다. 매일 독서실을 가기 전에 들르는 중학생 손님, 이 집 커피가 맛있다며 매일 산책 후에 들르신다는 귀여운 노부부, 멀지 않은 곳에서 시험공부를 준비하며 매일 들른다는 학생들. 사장님들은 한번 온 손님은 기억하려 애쓰는 모습이 보였다. 한두 마디의 안부 인사는 반복되는 몇 번의 만남이 쌓여 주문과 결제를 사소하게 만들었다.  




휴직 중에 하루 일과는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놓고 이곳에 오는 게 일상이 되었다. 자리는 4자리도 채 안되었다. 커피를 사랑하는 사장님은 본인이 시음하는 커피를 몇 잔이고 전해주었다. 작은 잔들이었지만, 인심만큼 쌓여가는 잔들은 섭취한 카페인 양과 가게 운영을 걱정하게 만들었다. 하나뿐인 창가 자리를 좋아했는데, 반대편 오랜 아파트 벽을 바라보며 커피를 마시는 게 좋았다. 한적한 시간에는 사장님과 좋아하는 노래들을 서로 추천해 주었다. 비가 오는 날 여기서 듣기엔 난해한 내가 사랑하는 노래가 들렸고, 반대편 이끼와 얼룩이 군데군데 묻어있는 벽이 빗물에 조금씩 적셔지는 것을 한참 보았다.



복직 후에도 이곳의 커피로 업무를 시작했다. 재택을 할 때는 아침 산책으로, 출근길에는 테이크아웃으로. 마침 이곳 근처로 이사 오면서 더 편해졌다. 어렵던 커피는 그 마신 잔들만큼 조금씩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집에서도 그 기분을 느끼고자 드리퍼와 조그만 핸드 그라인더도 샀다.


딸아이와 와이프도 이곳을 좋아했는데, 딸아이가 특히 좋아했다. 여름에는 시원한 에이드를 겨울에는 핫초코를 이유로 먼저 산책을 가자고 했다. 어려서부터 환경 관련 교육을 많이 받아서인지, 환경 친화적인 물건들을 쓰는 것을 계속 봐와서 좋다고 했다. 그리고 언제 물어봤는지, 한 사장님이 머리를 기르는 것도 기부를 위한 거라고 나에게 귀띔했다.   




다 좋은 이곳은 한 가지 불안함이 있었는데, 언제 재개발을 할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재개발은 그렇게들 쉽게 되지 않는다고들 했다. 그런 걱정을 사장님을 통해 듣다가도 또 잊어버리고, 또 듣다가도 잊어버리던 어느 날 그날이 오고 말았다. 아쉽지만 마땅한 장소를 주변에 찾지 못해 장사를 한동안 못할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마지막 날, 일부러 사장님들과 인사라도 하고자 한적한 시간에 맞춰 갔으나 작은 가게는 문 앞까지 사람이 가득했다. 아쉬워하는 건 우리 가족만이 아니었다.


딸아이의 첫 커피를 만들어주고 싶다던 그 카페는, 수 백장의 사진만큼의 추억을 남긴 채 없어졌다. 



(2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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