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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일간 Oct 01. 2024

뜨거운 여름 파란 하늘이 그렇게 서늘하더라고요.

내가 앉았었던 공간

하늘이 파랗다. 서늘하다. 빛이 막힘 없이 내리쬐기에 저만큼 파랄 것인데, 창문 너머 이 방은 시원하다 못해 춥다. 자전거를 타고 오다 마주친 중국 할아버지들은 가린 곳보다 가리지 않은 곳이 더 많았다. 평지라 힘을 페달을 밟는데 약간의 힘만 필요했지만, 그 작은 힘을 쓰는데도 땀이 쏟아졌다. 그만큼 더웠던 것이 신기루처럼 느껴졌다.


창문 한편으로는 지하철역을 나와 내가 출근하는 길이 보인다. 매일 다니는 길이지만 풍경은 매일매일 신기했다. 분명 훔칠 것도 많지 않아 보이는 동네이나, 낮은 층들은 밖으로부터 나를 가둔 것인지 안으로부터 도둑을 막기 위함인지 모를 철창이 빼곡히 붙어있었다. 윗 층들은 창문마다 긴 쇠봉들이 튀어나와 있는데, 굳이 알고 싶지 않아도 그 집 옷장 속 컬렉션을 모두 알 수 있었다. 굳이 알고 싶지 않은 속옷까지도.


이곳은 그나마 양반이었다. 그 길은 눈치가 보여 차마 사진도 못 찍었다.


이런 주거단지 끝 횡단보도 건너에는 얼마 전 새로 지은 강변의 화려한 오피스 건물이 있었다. 횡단보도를 사이에 두고 공용화장실의 정의는 크게 바뀌었는데, 하나는 한 층의 회사원들이 공유하는 것이고 하나는 한 단지의 사람들이 공유하는 것이었다.


그 둘 사이를 매일 오가는
나는 어디에 가까웠을까.

창문의 다른 편으로는 상해를 가로지르는 황푸강이 보인다. 이쪽 회의실에 들어올 일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창 밖의 풍경이 더 낯설었다. 유명 고층 전망대의 전망 그것의 반의 반쯤 사선에서 재현해 둔 느낌이다. 입장료는 낼 필요 없는. 나 같은 사람은 입장료라는 게 필요하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물주이자 실질적인 사장 자리와 그의 전용 회의실만이 이쪽 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 면접 이후 몇 번 들어온 적도 없었고, 들어올 때마다 이렇게 창가를 여유롭게 볼 일도 없었다.


강 건너에는 150여 년 전 지어진 유럽식 건물들이 강을 끼고 이어져있다. 대부분 건물의 아래쪽은 오랜 유럽에서 보이는 비슷한 양식이다. 대신 그 꼭대기 만이라도 각자의 개성을 보여주고 싶어 했다. 파인애플모양, 뒤집힌 왕관모양, 생선 비닐이 쌓인 듯한 첨탑 모양, 전형적인 시계 모양 등, 강 건너에서도 이런 몇 건물들은 눈에 잘 띄었다. 체스판의 소중한 말들 같다. 왕과 여왕 그리고 그 좌우로 있는 말들 말이다. 나는 똑바로 못 나아가는 졸 같다. 저 멀리에서 한 세 칸은 먼저 앞으로 나온 느낌인데, 그 사이에 강이 놓여 돌아가지도 못할 것 같다.


사무실 바로 앞 강변에서 봤던 황푸강 뷰, 성공으로 이어질 듯한 자전거길과 산책길


임시로 참여한 프로젝트 기간이 끝나간다. 아직 이 프로젝트가 잘 될지 안 될지 모르겠다. 한 달 반 넘게 일한 시간 때문인지, 이 프로젝트와 사람들에게 정이 들어서인지, 아니면 정말 이 회사가 앞으로 성공할 가능성이 있어서인지, 나도 헷갈린다. 처음 그 물주가 말했던 것처럼 되기만 한다면 성공이 불가능은 아닐 것 같다. 그리고 저 사람들의 신분이 거짓이 아니라면, 유명 회사의 개발팀이 맞을 텐데 생각보다 진도는 늦었다. 한국 시장 진출을 돕는 역할이었지만, 와서 보니 어디 내놓기 부끄러운 점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작은 것도 아니고 큰 구멍들이 숭숭 뚫려있는 배로 황해바다를 건너자 한다. 그래서 내가 안 되는 중국어, 직원들이 알아듣는지 모를 영어, 손짓, 발짓 다해가며 이런저런 구멍들을 온몸으로 메꾸고 있었다.


그래도 살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내 구명정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해보고 싶었다. 이런 생각이 간절해진 것은 며칠 전 비슷한 회의실에서 있었던 일 때문이다.




그곳도 높은 고층이었다. 마찬가지로 새파란 하늘이 잘 보이는 곳이었다. 얼마 전 알게 된 이름 있는 회사의 헤드헌터가 한번 미팅을 하자고 하여 상하이 가장 중심가를 찾아왔다. 오래된 금색 치장이 화려한 절과 역사 깊은 낮은 벽돌 건물들 사이 유독 눈에 띄는 모던한 건물이 모여있다. 이 옆 건물은 유명 호텔인데, 아이와 그 정원의 분수를 맞으며 놀았던 적이 있다. 아이는 의도치 않게 분수 사이에 갇혀 흠뻑 젖었는데, 언젠가 분수를 혼내주겠다고 심심하면 말했다. 아빠가 돈 벌어 이 호텔에 묵으면서 그러자고 했었다.


분수에서 흠뻑 젖어버린 아이들, 같은 곳을 다시와 괘씸하다고 나오지도 않는 분수를 걷어차는 딸


밝은 갈색 빛의 컬헤어와 짙은 이목구비, 하늘색 정장을 입은 헤드헌터는 내가 더 중국사람에 가까워 보이게 하였다. 어색한 발음은 주변 중국 친구들과는 달리 해외파는 아니겠구나 싶었다. 이야기는 순조롭게 시작되었다. 몇 번이고 고쳤던 이력서는 눈을 감고도 글씨 하나하나와 폰트 크기나 종류도 다 그려졌다. 부족한 점들도 많지만, 스스로 모자람보다는 열심히 이뤄낸 것들이 많다고 생각했다. 사람들마다 보기 나름이겠지만. 고개를 끄덕여가며 중간중간 질문도 하며 잘 들어주던 헤드헌터는 갑자기 나에게 물었다.


“왜 외국인이 중국에서 일하려는 거죠?”

많이 들었던 질문이다. 한국보다 시장도 크고 더 다양한 사람과 서비스들이 많은 이곳에서 더 많은 것들을 경험하고 배워보고 싶다고. 나름 정석이라고 생각한 답을 건넸다. 하지만 그녀는 돌연 화를 내기 시작했다.


“왜 외국인들이 여기 와서 우리 일자리를 다 뺏으려는 거죠?”


“네?”


“왜 우리만으로도 충분한데 외국인들이 자꾸 들어오는 거냐고요? 우리에게서 많은 것을 빼앗았자나요. 근데 왜 우리나라에 직접 들어와서  우리 일자리까지 빼앗으려는 거냐고요.”


‘당신은 헤드헌터예요. 당신도 외국계 기업에서 일하고 있잖아요. 당신이 미팅하자고 불렀어요. 당신 제정신이에요?’라고 말했어야 했다.


큰 기대를 하고 온 자리도 아니었다. 내가 만나자고 한 것도 아니었고. 생각지도 못한 전개에 멍하니 한참을 듣기만 했다. 대체 이 사람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나는 그렇게 중국에 들어와 그들의 일자리를 빼앗은 유능한 모든 외국인을 대신하여 한참을 혼났다. 차라리 나도 그들 중 하나여서 대표자라면 억울하지라도 않았을 거다. 아직 뺏은 게 없어 마냥 억울했다.


선팅 된 창문 밖 깊은 바다 같은 하늘과 핏대 세워 얘기하던 벌건 얼굴이 그림처럼 기억에 남았다.




그래서 나는 지금 이 기회라도, 이 회사라도, 이 프로젝트라도 어떻게든 살려서 나를 물에 띄워 놓고 싶었다. 구명정이 아니더라도 물에 가라앉지는 않는 널빤지라도 되면 좋겠다 싶었다. 잠시 다음 널빤지를 찾을 때까지만이라도 버틸 그런. 이 프레젠테이션은 누구도 해달라고 하지 않았다. 내가 살리고 싶고 나도 살고 싶어 며칠 동안 고민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내용은 이러했다.


'아이디어는 분명 좋아. 그런데 지금은 아이디어와 달리 사람들을 사기 치는 것에 가까워지고 있어. 이대로면 돈은 돈대로 다 날리고 프로젝트 다 망할 거야. 그러니깐 제발 이렇게 좀 해야 한다고. (그리고 나도 좀 같이 살자고.)'


유명 기타리스트의 닉네임으로 불러달라는 사장이 들어왔다. 운동이 중요한 게 아닐 것 같은데, 아침부터 운동을 하고 왔다고 자랑했다. 이미 딱 달라붙는 옷이 대신 말하고 있었다. 나는 형식적인 발표는 잘 못한다. 그래서 단도직입적으로 정리된 내용을 말했다. 듣기에 불편할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안 하면 망할 거라고. 잃을 것도 없던 터라 내 생에 가장 속 시원한 프레젠테이션을 했던 것 같다. 내가 불편한 점을 더 들쑤실수록 내 앞의 사장은 그동안의 권위와는 달리 출근길 보였던 할아버지와 별 차이 없이 보였다. 내 발표는 다음과 같이 끝났다.


“여기에서 일해도 되고 안 해도 됩니다. 다만, 이렇게 안 고치면 이건 분명히 망합니다. 그러니 알아서 하세요.”


그리고 나는 내가 원하는 답과 원하지 않는 답을 동시에 들었다.


“지금은 어렵지만 언젠가는 꼭 고쳐볼게요. 더 높은 직책을 드릴 테니 계속 일해주면 안 될까요?”


나는 구멍을 더 이상 혼자 메울 수 없음을 느꼈다. 그 회사는 3달을 못 넘기고 없어졌다.




멀리인 듯 아닌 듯 돌아와 이전과 같은 회사에 이전과 같은 호칭으로 앉아있다. 바깥의 창밖을 보다 문득 그 시절이 떠올랐다. 그 서늘함이 시원함이 될 수도 있었을 것 같은 그 순간들. 하지만 결국 차갑고 시렸던 순간들이. 그리고 아직도 모르겠다. 나는 횡단보도의 어느 쪽에 더 가까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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