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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일간 Oct 09. 2024

빨리, 빨리, 빨리. 그게 더 오래 사는 방법일지도.

내가 앉아있던 공간

나는 뭐든 느린 편이다. 몸도 둔하고 정신도 둔한 편이다. 달리기는 첫 운동회 때 그다음 조의 1등인 줄 착각했었고, 무슨 이변이 있지 않는 한 맨 뒤였다. 정신을 조금만 놓으면 천천히 항상 동네 마실 나오듯 걸어버린다. 좋아하는 운동도 부족한 순발력을 연습과 체력, 집중력으로 버티는 듯하다. 누군가 나를 순발력으로 상대하겠다 하면 비켜주는 게 오히려 서로 안 다치는 방법이다.  


일이나 공부도 마찬가지다. 미리 뭘 마치는 게 쉽지 않다. 남들은 후딱 수렴에 들어가 먼저 집에 갈 때 그제야 발산을 멈춘달까. 그만큼 오래 생각을 한만큼 정리하려 해도 걸리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발표도. 적당한 답을 먼저 말하는 사람을 바라보며 혼자 더 나은 답을 생각하다 보면 기회는 없다. 누구도 내 완벽한 답은 못 듣는다. 여러모로 답답하다. 한때는 좋게 말해 생각이 깊다고 하고 싶었다. 하지만 1시간 전에도 애가 바로 옆에서 미끄러지는데 ‘어’하다가 못 잡아줬다. 정말 긴박한 순간이 왔을 때 내 순발력이 문제가 되지는 않기를 빌며 살고 있다.


그런 나마저도 뛸 수밖에 없게 만든 사람이 있었다.




그는 키가 매우 컸다. 바로 앞에 서면 눈을 마주치기 위해 앞 목의 근육이 당겨졌다. 적당히 마른 몸매에 이마는 살짝 벗겨져있었다. 매번 비슷한 정장을 고수했다. 하얀색 셔츠에 어두운 정장바지와 정장. 옷마저도 효율적이었다. 짙은 수염자국이 깔끔해 보였다. 목소리는 적당한 낮은 편이었지만 울림은 맑았다.


그의 첫 수업은 생산관리(Operation Management)였다. 번역이 마음에 안 드는데, 사실 운영관리가 더 맞을 것 같다. 어떻게 하면 최대한 빨리 많은 결과물을 효율적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지가 핵심인데, 신기한 것은 그의 수업의 모든 부분이 그 핵심과 일관되었다는 것이다.


일단, 말이 매우 빨랐다. 그리스인인 그는 영국식도 아닌 유럽의 억양을 썼는데, 억양만으로도 알아듣기 어려운데 말 자체가 기본 2배속이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문장 사이의 쉼도 호흡도 거의 안 들렸다. 처음 몇 시간 동안은 얼굴에 초점을 맞추느라 미간이 저절로 찌푸려졌다. 내 모든 신경을 그의 얼굴과 입 모양과 소리를 숨쉴틈 없이 쫓아갔다. 숨을 쉬는 시간은 내가 아닌 누군가가 그의 질문에 대답을 하는 시간이었다.


그는 질문을 던져놓고도 기다릴 줄을 몰랐다. 처음에는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대답하기를 기다렸다. 3초는 기다렸을까. 그 카운트다운 이내에 지원자가 없으면 바로 아무나 지목했다. 딴짓을 하든 뭘 먹고 있든 상관없었다. 지목한 학생이라고 시간이 주어진 것도 아니었다. 마치 이 자리의 모든 사람들의 시간을 네가 낭비하고 있다는 듯 카운트다운은 계속되었다. 3초 안에 답을 못한 경우 자비 없는 감점 체크였다. 체크를 하는 동시에 다른 이름이 불려졌다.


그를 대표하는 장면이 있다. 생각할 거리를 하나 던지고 나서 교실을 좌우로 한번 훑는다. 왼쪽 끝에서 오른쪽 끝까지 초침이 이동하고 나면 기다림은 끝이다. 마치 타이머 같았다. 그리곤 엄지와 중지를 끊임없이 튕겼다.



핑거스냅. 딱. 딱. 딱. 머리를 두드리는 듯한 청아한 소리가 빠른 박자로 교실을 때린다. 그 짧은 박자 사이로 Fast, fast, fast 목소리가 빈틈을 파고들었다.



그는 모두에게 집중을 원했다. 모두에게서 1분 아니 1초 단위로 집중을 하기 바랐다. 처음에는 모든 학생들의 혼이 나갔었다. 그러다가 다들 이게 맞나 싶어 하며 스트레스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러고 두세 번쯤 수업했을 때, 이 수업은 20대 후반, 수업은 안중에도 없던 대학원생들의 눈들을 가장 빛나게 하는 수업이 되었다. 그게 점수가 되었든 휘몰아치는 수업 방식이었든 상관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모든 것들은 집중을 유도하는 도구였다.


그리고 그는 날카로움 속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았고, 오답이나 틀린 답을 한다고 다그치지도 않았다. 그는 우리의 생각을 듣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1분 1초라도 허투루 생각하지 않고, 본인의 질문에 대한 우리의 깊이 있는 답을.


재미없는 얘기지만 수업의 핵심은 병목을 없애는 것이었다. 맞다. 그 교통체증에 나오는 그 병목. 한꺼번에 많은 흐름이 몰렸지만 출구는 작아서 흐름이 멈춰버리는 그 병목. 수업은 온갖 상황에서 논리적으로 병목을 찾는데 집중했다. 교수님은 공장에서, 식당에서, 도로에서 병목을 찾아 없애고 가장 빨리 많은 결과를 낼 수 있게 이끌어냈다.


우리는 막힌 배수관을 찾는 배관공이 된듯했다.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문답 속에 모두의 답변이 모여 하나하나 퍼즐을 풀어 그 병목을 뚫었을 때, 학생들은 소리만 안 질렀지 환호하는 표정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답만 찾은 게 아니라 우리 스스로의 시간도 매우 효율적으로 보냈다.


학생들은 의자에 불이라도 붙은 듯 엉덩이가 반쯤 떼어져 앞으로 기울어있었고, 무게중심은 강의실 앞쪽으로 쏠려있었다.

부채모양의 큰 강의실의 밀도가 교수님이라는 점으로 모였다. 그리고 수업만 끝나면 다들 앞으로 쏠려있던 몸이 의자에 뒤로 기대 지는 게 느껴졌다. 진이 다 빠진 느낌이었다. 그동안 참은 숨을 몰아 쉬는 듯한 친구들도 많았다. 그래도 다들 재밌어했고, 그 교수가 하는 다음 강의도 금세 마감이었다.


신기하게도 그 교수의 다음 강의는 신사업개발이었다. 병목을 없애고 운영을 잘하는 것과 신사업개발은 일단 한국에서 배운 바에 의하면 교수실이 2층 정도는 차이가 있을 것이었다. 분명 두 과목의 교수님들은 서로 말조차 섞을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번에는 무슨 강의를 할지 기대하며 참여한 수업은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수업의 목표는 딱 하나였다.


가장 큰 가치를 만들어 내는 사업을 기획할 것.

마지막 수업일까지 모든 조들은 하나의 사업을 발표하면 되었다. 어떠한 사업도 상관이 없었다. 단, 수업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이 투표를 통해 순위를 고르는 방식이었는데, 가장 큰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는 순서대로 투표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돈도 아니고 가치였다.


당장의 돈도 중요하지만 이 사업의 장기적인 가치. 즉, 세상에 얼마만큼의 가치를 네가 만들어낼 것인가.


그는 모든 조의 발표를 즐겁게 웃으며 들었고, 모든 학생들과 동일한 1표로 투표했다. 그리고 각 사업들에 대해서 본인의 전공처럼 어떻게 하면 더 효과적으로 많은 결과물을 뽑아낼 수 있을지 생산관리적인 조언도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가 다시 세상에 나가서도 제일 큰 가치를 최대한 빨리, 그래서 많이 만들길 바란다고 했다.


그렇게 그의 두 번의 수업은 끝났고, 1년 조금 지나 그는 죽었다.


오랜만에 뒤져서 찾은 도서관 사진들. 제일 좋아하던 창가자리와 그곳에서 보이던 노을.




병명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강의를 할 때도 그는 병마와 싸우고 있었다고 한다. 넘치는 에너지와 밝은 표정은 그런 상상을 할 틈을 전혀 주지 않았다. 그래서 부고를 들었을 때 한참을 멍하게 앉아있었다. 그리고 그가 무엇을 가르쳐주고 싶었고, 왜 수업 끝날 때마다 행복해 보였는지 알 수 있었다. 40대 중반, 커리어적으로 가장 빛날 순간에 인생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음을 알아챈 그였다. 그가 보기에 얼마나 우리들의 시간이 아까웠을지는 말할 필요도 없다. 그렇기에 50명의 시간을 3배쯤의 효율로 만들려 했고, 그는 성공했다. 3배속으로. 그것은 마치 그의 시간도, 인생도 3배는 더 길게 만든 것과 다름없었다. 


결과적으로 그는 자기 수명보다 더 오래 살은 것이다.




오랜만에 돌아온 회사는 더 좋은 사무의자로 바뀌어 있었다. 메쉬소재의 의자는 아무리 오래 앉아있어도 뜨거워지지 않을 것 같다. 목받침과 등받이는 내 몸의 무게중심을 엉덩이보다 더 뒤로 이끈다. 1년 반을 회사에서 떠나 있었지만, 신기하게도 모니터 안의 내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고인이 된 그리스 교수님이 생각났다.



내 시간을 더 효율적으로 쓸 수 있을 텐데,

더 큰 가치를 위해 시간을 쓸 수 있을 텐데,

3배속으로 인생을 살며 실제 수명을 더 늘릴 수도 있을 텐데.



느림보가 갑자기 빨라지진 않겠지만, 그래도 1.5배속 정도는 살아봐야겠다. 그리고 좀 더 큰 가치를 만들어내 볼 것이다. 핑거스냅의 울림과 목소리 그 경쾌한 박자를 조금이라도 쫓아서.   


R.I.P. Nik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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