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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일간 Oct 28. 2024

수업 중 계란을 까든 만두를 먹든 무슨 상관이 있나요.

내가 앉았던 공간

탁! 탁! 바스락. 바스락.

비닐봉지채 계란이 책상에 내려쳐진다. 간장색 물에 젖어있는 계란에 조각조각 금이 간다.  그 사이로 짙은 액체가 스며든다. 동그란 안경이 똑 부러짐을 강조하는 여학생이 축축한 비닐봉지에 손을 넣어 껍질을 깐다. 끈적할까 아닐까. 궁금했지만 그 계란을 사들고 수업에 들어올 자신이 없었다. 말라있는 삶은 계란도 까먹다가 그 손으로 필기를 하거나 타이핑을 하려면 찝찝한데. 제발 있어라 하는 물티슈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여기에는 이런 친구들이 한둘이 아니다. 60명 가득한 교실 곳곳에서 탁, 탁, 바스락, 바스락 소리가 들려온다. 딱히 조용하게 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억지로 감추려 하거나 조심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이상해 보이지 않는다. 계란은 까고 나면 소리라도 없지. 주먹만 한 만두를 먹는 친구들은 봉지를 잡고 한입 한입 먹을 때마다 바스락 소리가 이어진다. 이 만두는 우리나라와 달리 두꺼운 밀가루 반죽 안에 고기만 가득하다. 누린내 비슷한 진한 향도 소리에 맞춰 교실에 진하게 퍼진다.


다양성이 차고 넘치는데, 하나 더 남았다.


퍽, 퍽, 호로록, 호로록, 츄루룹, 츄루룹.

배달받은 음료의 비닐 포장 위로 빨대가 퍽 소리와 함께 짧아진다. 커피보다는 차가 더 많은데, 대부분의 차는 쩐주라는 타피오카 펄이나 과육이 많이도 들어있다. 마시기보다는 먹어야 하는 것들이다. 그래서 야무지게 먹으려면 결국 호로록 보다 훨씬 큰 츄루룹 같은 소리가 난다.


탁! 탁! 바스락. 바스락.

퍽! 퍽! 호로록. 호로록. 츄루룹. 츄루룹.


비트는 완성되었고, 교수님 목소리가 그 위에 얹힌다.


교수님은 용케도 뭘 먹고 있는 친구들을 피해 질문을 한다. 분명 물어보기 전에 입에 뭐가 들어있는지 한번 보고 물어보는 것일지도. 안 그래도 너무 어려운 수업은 나도 뭘 먹고 있을까 생각도 해봤는데, 대답을 피하는 것보다 수업시간에 먹고 있는 게 더 싫었다.


평균연령 20대 후반, 중국 엘리트 들과 일부 외국인이 섞인 대학원 강의실 모습이었다.


점심시간 후라 음식이 많이 보이지는 않는다. 오랜만에 보니 그리운 얼굴들.


아수라장처럼 들리는가? 그래서 싫었냐고?

처음에는 잠깐 싫었다. 그런데 조금 지나니 수업 듣느라, 내 할 일 하느라 거기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오히려 좋았고, 후련했다. 시원했다.




어머니는 다른 사람의 시선을 많이 신경 쓰셨다.


어머니는 동네에서 유명한 집안의 딸이었다. 외할머니댁은 동네에서 제일 큰 집이었다. 그래서인지 어머니는 남들의 시선을 많이도 의식했다. 항상 잘 보여야 한다는 생각은 아예 사람들을 만나거나 본인을 숨기게 하였다. 외할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고 집안은 기울었지만, 사람들의 시선을 달라지지 않았다. 게다가 아버지와 아무것도 없는 새로운 시작은 한참 동안 외부로의 문을 잠그게 하였다.


그렇다고 아예 사람들을 만나지 않을 수는 없었다. 경조사라도 가야 했으니. 그런 날이면 아직 남은 그 시절의 물건들과 어찌어찌 구한 것들로 완벽한 모습을 만들어 내었다.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지금을 가린 그 충분한 우아함으로. 그렇게 한 번의 쇼케이스를 마치면,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그 모습을 기억으로 답한 채 본인의 조용한 자리를 찾아가셨다.




아들인 나 또한 당연히 이 원칙이 적용되었다.


학원은 다니지도 않았고 친구도 적었다. 동네에서 날 아는 사람은 없었다. 7등과 8등, 친근한 그 숫자들은 나도 다른 사람도 모두 편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어머니에게는 달랐는데, 그것을 오래도 나는 알아채지 못했다. 주목을 받을 일이 없었기에 문제가 없었을 뿐, 어머니에게는 착하고 아버지를 닮아 똑똑해 결국은 1등을 할 아이였다. 만약 드러나는 일이 있다면 그렇게 보여야 했다. 훌륭한 아이로.


십 년을 그렇게 자란 나는 당연하게도 스스로를 훌륭한 아이로 생각했다. 물론 등수는 여전히 마음 편한 위치였고, 친구들은 대체 어디에서 오는 자신감인지 의아해했다. 지금 생각하면 세뇌에 가깝다. 나를 객관적으로 볼 필요도 없었고, 볼 수도 없었다. 그래야만 했다.


입시 직전 갑자기 오른 성적은 어머니를 기대하게 하였고, 그동안 잘 숨어있던 나를 드러나게 하였다. 조그맣고 고립된 동네에서 남들의 시선은 피할 수도 없었다. 말도 안 되는 자신감이 이유가 있었던 것처럼 포장되려 했다. 조심하던 어머니도 기대를, 희망을, 환상을 갖게 되었다. 드디어 그 훌륭한 아들을 쇼케이스할 그 완벽한 순간을. 나는 그것을 쉽게도 무너뜨렸다. 


지금 보면 당연한 결과다. 대책 없는 자신감은 분수를 모르는 상향지원으로 이어졌고, 공짜는 세상에 없어야 맞고 운에도 한계는 있어야 했다. 한번 더 입시를 준비해야 했고, 어머니는 졸업을 축하해주지 않으셨다. 그리고 이 기억은 평생 짠함이 가득한 우리 모자관계에 몇 안 되는 상처가 되었다. 물론 지금은 아무 일도 아니지만.



어머니는 아직도 자주 말씀하신다. 가만히 있어라. 눈에 띄어 좋을 것 없다. 튀는 거 아니다. 등등. 아직도 혼자 밖에서 식사를 하시느니 굶고 오실 거다. 분명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그래도 내가 남들의 시선을 왜 신경 쓰고 조심했는지 돌이켜보니, 어머니의 목소리가 먼저 들려왔다.





꼭 우리 집만의 이야기는 아닐 거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남을 많이도 신경 쓴다. 비교도 많이 하고, 남들 앞에서 무안받을까 봐 걱정한다. 그냥 남들인데 말이다. 누가 뭐라 하든 별 상관도 없는데, 인생의 소중한 시간들을 많이들 그냥 흘려보내는 것 같다. 


나도 그렇다. 남과 비교하거나 그런 성격은 아니지만, 나도 시선들에 신경이 쓰인다. 내가 잘못하면 어쩌지? 틀리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늘 앞선다. 심지어 답이 정해져 있지 않은 토론의 경우에도 말이다. 좀 말을 못 하면 어떠한가. 틀리면 어떠한가. 잘못하면 어떠한가. 미안하다고 하면 된다. 내 생각을, 하고 싶은 말을, 쓰고 싶은 글을 전하지 않으면 그것들은 아예 세상에 없을 수도 있다. 영원히.


조금 미안하거나 무안하거나 부끄러운 것보다 훨씬 나을 것이다.

존재하지 않는 것보다는 말이다.

중국 친구들이 그랬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체면을 따진다면 그들은 본인의 이득을 따졌다. 인생이 아까운 듯 빨리빨리. 원하는 게 있으면 주변에 물어보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물어볼 수 있는 거 아니겠는가. 당연히. 안된다고 하면 할 수 없는 것이고. 거절당했다고 오래 기억하거나 하지도 않았다. 나도 그럴 수 있으니 남도 그럴 수 있다 생각하는 것 같았다. 베풀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본인에게 손해가 없다거나 본인이 얻을 수 있을 것 같으면 도와주는데 거리낌이 없었다. 이미 받은 게 있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체면을 따지며 서로 원하는 것을 말로 하지도 않고, 상대방이 알아서 해주기를 바라다 작은 오해로 서로 속상해하는, 가끔 그리고 자주 우리가 보는 그런 경우는 별로 없었다.  


투명했고 이기적이었다. 이기적인 게 별거인가. 내가 원하는 대로 되었으면 바라는 게 이기적인 것 아닌가 싶기에. 우리 인간에게 너무나도 자연스럽지 않은가. 남에게 피해를 안주는 선이라면 말이다. 그 피해란 것도 우리가 서로를 너무 의식하여 아주 작은 피해도, 그냥 지나가도 될 피해도, 꼭 우리의 의식으로 열심히 주어 담는 게 아닌가도 싶고.


학교에서 좋아하던 풍경과 그 자리. 저 친구에게 자주 그 자리를 빼앗겼지만.


그 자리가 너무 시원했다. 상해의 무더위에 열심히 돌아가는 에어컨이 힘에 부치더라도 상쾌하고 시원했다. 뜻 그대로 통쾌했다. 그간 신경 썼던 시선들의 열기가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내가 있는 곳의 온도가 몇 도는 떨어진 느낌이었다.


잠깐의 경험이 사람을 완전히 바꾸지는 못할 것이다. 그래도 이전에 비해 실패를, 무안을, 완벽하지 않음을 덜 두려워하게 되었다. 그리고 내 시간을 조금 더 살 수 있게 되었다. 한국에 돌아온 지 5년이 되어가지만, 아직은 그 시원함을 조금은 간직하고 있다.


다른 분들도 조금이나마 시원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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