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걸어가던 길
머리와 마음이 따로 놀 때가 있다.
머리로는 하루하루 앞으로 걸어가면 된다는 것 알고 있다. 그 길은 어제와 오늘, 아마 내일도 딱히 다르지 않을 것이다. 동일한 아침 루틴, 오고 가는 같은 길, 만나고 얘기하는 같은 사람들, 비슷하게 굴러가는 일, 비슷한 행복, 똑같은 불평, 소중한 감사함들.
물론 똑같아서 소중한 것도 많다. 그냥 계속 같아 보인다는 거다. 끝이란 게 있긴 할 텐데, 그냥 이렇게 같아 보이는 길을 가다 어느 순간 마주할 것 같다.
‘이 길은 여기까지입니다.’
어딘가의 끝까지 가는 것을 좋아한다. 무엇을 타거나 운전하는 것 아닌 두 발로 직접. ‘어디를 갔다.’ 보다 '어디를 끝까지 갔다.’, 그것보다도 '어디를 끝까지 직접 갔다.’가 더 의미 부여하기 쉽다.
땅따먹기 게임. 돌을 쳐 멀리 갔다 돌아오면 그만큼 내 땅이 되는 땅따먹기. 어딘가 끝을 보고 싶음은 이곳에 내가 머물렀고, 이곳도 나의 영토였음을 남기기 위함은 아닐까. 나란 사람 발자국이 남은 그런 영토.
그런 마음으로 어떤 길을 걸었었다.
장기 미국 출장 중 한 토요일, 동료는 한국에 돌아가고 혼자 산호세에 남았다. 일주일 내내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일해 많이 지쳤다. 그렇다고 이 먼 곳에서 하루를 그냥 쉬고 싶진 않았다. 땅따먹기라면 지구 반바퀴를 보너스로 이동한 건데. 지도를 열었다. 왕복 세네 시간 정도로 갈만한 곳을 찾아보았다. 그리고 금문교 너머 서쪽 튀어나온 삼각형 갈퀴모양이 보였다.
포인트 레이에스 국립해변
국립이면 믿는다. 게다가 자연의 미국인데. 국립공원은 많아도 국립해변은 많지 않다고도 했다. 왕복 200마일. 미국 영화에는 대부분 끝이 안 보이고 뻥 뚫린 고속도로였다. 3시간이면 되겠지. 넓은 공원에서도 목적지는 정해야 했고 기왕이면 끝에 가고 싶었다. 서쪽 끝은 1시간 차로 더 가야 했다. 그래서 북쪽 끝 하이킹 코스 입구로 목적지를 정했다. 단, 하이킹 코스는 왕복 15마일이었다.
긍정은 자주 낙관이라는 부정을 가져온다. 그리고 다시 긍정으로 덮어 부정이 돌아올 틈도 남겨둔다. 야구 경기에서 100마일이 160km라고 했던 것을 생각할 법도 한데, 그런 이성은 호텔 방에 두었다. 조수석의 생수병 두 개는 충분히 든든해 보였다. 그리고 무모한 여정을 떠났다.
어쨌거나 출발했고, 목적지가 있으니 향해 갔다. 샌프란시스코 지역은 TV에서 보던 고속도로는 아니었다. 예상보다 훨씬 늦고 구글 지도보다 빨랐다. 아침 겸 점심을 먹고 급히 왔기에 도착지에 상점이라도 있었음 했다. 옆 면이 뻥 뚫린 목장과 사람이 살면 이상할 건물 몇 개만 보였다. 주차장도 그 길로 차로 더 갈 수 없어 주차장인 듯했다.
한 낮보다 해는 살짝 기울어졌다. 태평양에서 불어오는 강한 바람은 인적을 더 간절히 찾게 했다. 낙관은 언제나처럼 무리를 데리고 왔고, 이제 그냥 되돌아가는 선택 또한 무리였다. 최대한 빨리 걸어보려 했다. 이곳과는 어울리지 않는 바람막이 코트 단추를 여몄다.
길은 곧 언덕의 능선을 향했다. 강한 바람에 야생화들은 스프레이로 계속 뿌려졌다. 흔들리는 들판 너머 끝없는 바다가 보였다. 압도적인 풍경에 바쁜 발걸음은 자주 고민했다. 절반은 하늘. 나머지 반은 바다. 그 나머지는 꽃과 풀밭이었다. 길이 어디를 향하든 바람은 사정없이 온 얼굴을 때렸다. 평온하고 고요한 풍경은 바람소리와 어울리지 않았다. 저 멀리 성난 파도들이 끝도 없이 밀려오고 있었지만, 자세히 안 보면 아름다운 패턴으로 보였다. 찍어 놓은 사진은 아름다운 풍경일 뿐이다. 하지만 내가 맞이했던 현실은 태풍을 뚫고 나아가는 길이었다.
바다 옆으로 이어진 능선은 끝이 안보였다. 걷고 또 걸었다. 힘들어도 언제든 가다 보면 끝은 있었다. 지도에도 끝이 있다. 결국 닿을 것임을 머리는 알았고 마음은 의심했다. 땅은 변하지 않으니, 의심한 것은 나일지도. 길은 바다로 빠져들 것처럼 사라지다 다시 안쪽으로, 또다시 바다로 향했다가 능선 안쪽으로 그렇게 반복했다.
시간은 3시를 넘어가고, 아무리 열심히 걸어도 나와 같은 방향을 보는 뒷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돌아오는 얼굴 몇몇만 보였다. 사람이 다니기는 하는 길이라 안도감도 들었지만, 돌아갈 때에는 이 넓은 땅에 나 말고 누군가도 있을까 싶었다.
이런저런 생각은 여기까지와 이게 무슨 짓인가 하는 데까지 이어졌다. 하루하루 힘들게 일해놓고 주말에 쉬지도 않고 뭐 하는 건지. 군입대를 다시 하고 행군하고 있는 건지. 운동복이라도 가져왔으면 모르겠다. 출근할 때 입는 불편한 옷은 맞바람의 저항만 키웠다. 왜 이렇게 무리한 계획을 세우고 그마저도 끝까지 하려 하는 걸까. 대체 왜 이러는 걸까.
눈앞의 풍경보다 무모한 계획들과 운이 좋아 달성한 성취담들이 떠오른다. 가까이는 홋카이도 눈밭에서 지도만 보고 걷다 길을 못 찾아 조난당할뻔한 일에서부터 서울 반대편에서부터 집까지 걸어왔던 일, 평지용 자전거로 남산에 오른 일 등등. 무모해서 자랑이자 극적이고 멍청했으며 아직 멀쩡한 게 다행인 순간들.
뭘 그렇게 무리를 하고 뭘 그렇게 끝까지 하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뭘 얻겠다고. 딱히 크게 얻어지는 것도 없는데. 남산 갔다. 홋카이도 비에이 평원을 한 바퀴 돌았다. 그게 뭐라고. 준비도 대책도 없다. 부족한 준비와 대책 없음을 쓸데없는 오기와 체력으로 메꾸는 바보다. 그래서 좋아하는 풍경을 잘 즐기지도 못한다.
나와 반대로 가는 사람들만 보던 중 뜻 밖에 사람을 보았다. 야생화들 사이 조그맣게 파인 곳에 침낭에 들어가 오늘은 집에 안 갈 것 같은 사람이 있었다. 유일한 무모한 동지를 찾은 느낌이었다. 감사하게도 그분 옆에 마음의 짐을 두었다.
좀 늦으면 어떻고 어두워지면 어떤가. 핸드폰으로 비추고 가면 되겠지 하고 열어보니 배터리도 얼마 없었다. 다 내려놓자. 서쪽이니 노을은 길거고, 달빛이라도 있겠지. 여기까지 온 거 마음껏 구경하고 가자. 발걸음을 늦추자 주변이 보였다.
아득한 능선은 마음을 비우자 조금씩 그 끝이 보이는 것만 같았다. 그제야 숨겨진 해변으로 내려가는 비밀의 길들이 보였다. 지진으로 만들어진 지형인지, 땅이 끊긴 단층 같은 흔적도 보였다. 저 멀리에는 엘크라는 고라니 무리도 보였다. 길을 벗어나 절벽 쪽으로 걸으니, 낭떠러지 아래 절경도 보였다. 벼락을 수도 없이 맞은 나무는 거기 서있는 것만으로 항거하는 예술가가 되어 있었다.
그렇게 터벅터벅 걷기를 한 시간. 능선을 걸어가던 길은 갑자기 아래로 이어졌다.
그곳에는 어찌 보면 벅차고,
어찌 보면 황홀할 정도로 멋지고,
어찌 보면 아무것도 아닌 끝이 있었다.
(다음 편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