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암을 진단받았을 때
아이들이 너무 어려서 이해를 못 하지는 않을까, 아이가 너무 상처받지는 않을까, 아이가 한참 공부할 때라서 방해가 되지 않을까, 내가 암환자라는 사실이 아이들의 학교생활에 방해가 되지 않을까 많은 생각이 들 것입니다.
‘아이가 3년 우등을 받았는데 아이가 수능을 못 봐서 재수를 했어요. 내 영향이 있었다고 생각했어요.’
‘우리 아이는 우등생이에요. 학교에서 반장도 하고 활발한 아이예요. 그런데 엄마가 암이라는 게 알려지면 내 아이를 얕잡아볼게 아니에요.’
그러나 아이에게 숨기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말을 하지 않아도 아이는 집안 식구들의 변화를 느끼기 때문입니다. 엄마가 평소보다 기운이 없고, 자기와 잘 놀아주지 않고, 일상생활에 소극적이고, 불안해하고, 쉽게 화를 내고, 우울해 보입니다. 또 집안 분위기가 어둡고 식구들이 뭔가 안 좋은 듯 비밀 이야기를 합니다. 이러한 변화들은 아이들에게 집안에 심각한 일이 있다는 것을 직감하게 합니다.
‘아이가 유학을 가 있어서 얘기를 안 했어요. 방학이 되어서 집에 왔는데 내 모습-항암 치료로 수척하고 머리가 빠져있는-을 보더니 한동안 문에 서서 들어오지 못하는 거예요.’
그리고 진단 받은 사실을 숨기면 아이들이 엄마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후회하게 될 수 있습니다.
‘그때 고3이고 숨기려고 했던 것이 후회돼요. 하루라도 도와서 하게 할걸... 딸인데... 관심 없이 불규칙하게... 패스트푸드 먹고’
엄마가 암이라는 사실을 제삼자에게 들었을 때에는 아이들은 소외감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은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에 정확한 사실을 알리지 않았을 경우 사실보다 더 안 좋은 상상을 할 수도 있습니다.
아이들과 안정적으로 대화할 수 있을 때 얘기하는 것이 좋습니다. 왜냐하면 나의 불안이 아이들에게 그대로 전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말해주세요. “유방암은 치료될 가능성이 높고, 나는 나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엄마는... 치료를 받게 될 거야. 그동안 너희가 불편하지 않도록 (누구)가 도와주기로 했단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라. 모든 게 잘 될 거야.”하며 안심을 시켜 주십시오.
아이들은 아직 자신의 안전을 지킬 능력이 부족하므로 아이들이 학교생활을 지속하고 위협받지 않도록 도와줄 누군가를 필요로 합니다. 특히 수술과 항암, 방사선 치료를 받는 동안 아이들을 돌볼 여유가 부족하므로 주위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엄마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자신의 신변에 위협을 느낄 수 있습니다. 또는 새로 자신을 돌보아 주는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감정들을 아이들이 표현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부모들은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자주 물어보아야 합니다.
또한 아이들은 자신이 엄마를 아프게 만들었다고 죄책감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아이가 언젠가 ‘엄마가 없어지면 좋겠어. 엄마가 미워’라고 생각했던 것이 원인이 되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은 대체로 마음에 담아두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암은 누구 때문에 나타나는 병이 아님을 알려주어야 합니다.
내가 아픈 시기는 아이의 독립심을 키워 줄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실내화를 빠는 등의 작은 일은 하나씩 해보도록 할 수 있습니다. 또 학교에 가기 위해 아침에 늦게 일어나면 안 된다는 점을 알려주기 위해 아이 스스로 일어나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멀리서 바라만 봐주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이때 실수하더라도 좀 틀리더라도 믿어주고 지켜봐 줍니다. 아이가 안쓰러워 보이겠지만 아이들은 생각보다 어른스럽게 의연하게 그러한 일들을 해낼 것입니다.
‘제가 진단받았을 때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 이었어요. 제가 양쪽 유방암 수술을 받아서 팔을 쓸 수 없었어요. 그래서 아이에게 할 수 있는 일을 스스로 하도록 알려 주었어요. 실내화를 스스로 빨게 했어요. 그랬더니 아이가 독립심이 생기더라고요. 학교 갈 때 늦게 일어나도 깨워주지 않았어요. 차라리 선생님께 혼나더라도 직장에서 늦는 것보다 나으니까요. 엄마가 늘 네 옆에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해 주었어요. 그래서인지 아이가 고등학교를 미국에서 보냈는데 포기하지 않고 잘 이겨내서 미국 명문대학에 들어갔어요. 그리고 플롯을 가르쳤어요. 외동아들이기도 해서 외로울 때 친구가 필요할 것 같았어요. 지금도 플롯을 잘 불어요.‘
엄마가 유방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아이들에게 알리는 방법은 아이들의 연령에 따라 달라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경험의 정도와 사고방식에 따라 이해할 수 있는 단어와 표현방식을 선택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아직 아픈 엄마를 알아서 배려하기에는 너무 어릴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엄마가 환자라는 사실이 다른 아이들에게 알려지지 않기를 바라고, 자신에게 소홀해진 것을 탓할 수도 있습니다. 다음과 같은 하소연을 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엄마 아프다 그래도 이건 딴 나라 사람이고... 전혀 신경을 안 써요. 게임하는 거 자기가 친구들이랑 어울려 노는 거 좋아하지.... 친정에 제가 와 있어도 엄마 보고 싶다는 얘기 별로 안 해요. 그러니까 자기 아프고 아쉬울 때나 그렇지...’
‘대 놓고 엄마는 밖에 나가지 말라고 해요.’
그러나 이러한 아이들의 반응을 성인과 같은 기준으로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아이들은 아직 보호를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청소년기의 자녀를 둔 부모들은 누구나 그들의 자립의 욕구와 의존의 욕구에 균형 있게 반응하기가 무척이나 어렵다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이 시기의 자녀들은 상황을 대부분 이해하고 이에 따라 부모님을 도와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역시 아직 완벽하게 인격이 형성된 시기는 아니므로 그들이 어떤 부분에서 힘들어하는지 그리고 어떤 부분에서 상처받았는지 세심하게 살펴보고 대화를 해야 합니다.
유방암 진단을 받고 아이들에게 부족했던 아쉬움들이 떠오를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못 다 준 사랑을 주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좋은 말만 해도 시간이 부족하다는 생각에 화내던 일도 참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반대로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 싶은 마음에 더 혼을 내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중요한 사실은 어떤 방법으로 표현을 하던지 간에 반드시 환자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 아이의 성숙을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아무리 극한 상황일지라도 부모로서 아이를 보호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 아이들은 보호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자녀분들도 어떻게 부모님을 도와드려야 할지 난감해하며 고민을 하게 됩니다. 혹시 이러한 고민을 가진 자녀분이 계신다면 저는 주로 어머님의 이야기는 얘기를 잘 들어주면 좋겠습니다. 매우 어려운 일을 겪고 계신데 자녀를 생각해서 마음을 털어놓지 못하고 계실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다 간혹 힘든 마음이 드러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괜찮을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말하기 쉽습니다. 이는 오히려 벽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것은 공감해드리는 것입니다. 그 옆에서 충분히 있어주고 들어드리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위로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