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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라 Oct 11. 2023

'번아웃'이라는 우스운 말

퇴사일기#06

 이마에 퇴사라는 주홍 글씨가 새겨진 채로도 나는 매일 멀쩡하게 출퇴근을 하고 있다. 어째서인가. 정신이 아무리 피폐해져도 몸은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마치 기상 시간과 출근 시간이 입력된 기계처럼, 내 의지와 상관없이 직장인의 항상성이 일정하게 유지되고 있다. 몸은 언제나 이런 식으로 정신의 번아웃을 이겼다. 그러니까 피로, 스트레스, 위염, 두통, 숙취, 수면 부족 같은 신체 잔고장은 직장인의 기본 옵션 아니겠는가.


 [번-아웃(burn-out)] 지속적인 에너지 고갈로 인해 일에서 느끼는 열정과 성취감을 완전히 잃어버린 상태.


 나는 사실 번아웃이라는 개념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편이다. 근근이 벌어먹고사는 노동자라면 힘들고 지치는 건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어차피 다 거기서 거기 아닌가. 누구나 퇴근 후에 피곤한 얼굴로 "너도 번아웃이구나"하고 안부 인사를 주고받는 시대다. 이 도시에서 번아웃 아닌 직장인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현대 사회에서는 피로도 죄라서, 피로를 티 내는 건 (게으른 상사의 특권이 아니라면) 자기 관리의 실패나 자격 박탈의 대상으로 여겨지기 마련. 따라서 번아웃이라는 진단은 어떻게든 정신의 박약함과 미성숙함을 합리화하기 위해 만들어 낸 자기기만이자 자기 위안이라고 나는 생각해 왔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지킬 앤 하이드처럼, 2개의 자아, 필요하다면 3개나 4개의 자아를 가지고도 사는 게 우리네 평균 아니냐고.     


 돌아보면 내 직장 생활은 잠에 굶주린 세월이었다. 밤의 영토에서 쫓겨난 잠은 낮의 사각지대에 상륙을 시도했다. 출근길 버스 안, 지하철 안, 점심시간, 약속을 기다리는 틈틈의 시간…… 그러나 나는 언제나 깊이 잠들고 싶다는 바로 그 욕구 때문에 깊이 잠들지 못했다. 고개를 기이하게 꺾어가며 졸다가도 환승 정류장이 다가오면 모든 건 다 연기였다는 듯 멀쩡한 걸음걸이로 완벽하게 갈아탔다. 어쩌면 나는 그저 이 버스에서 저 버스로 환승하듯, 이 잠에서 저 잠으로 환승했던 건지도 모른다. 잠 701번에서 잠 260번으로, 잠 173번에서 잠 604번으로……. 반쯤 잠들어 있는 동안에도 나는 항상 어디론가 바삐 이동했다. 그럴 때면 무엇이 꿈이고 무엇이 현실인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그게 무엇이든 그저 회사 빌딩이 보인다 싶으면 최선을 다해 일하는 것만이 노동자에게 주어진 역할이었다.


 누구나 출근하면 피곤한 얼굴로 "너도 어젯밤에 잠 못 잤구나"하고 아침 인사를 주고받는 시대다. 이 도시에서 수면 부족 아닌 직장인이 어디 있겠는가. 나는 다만 조용히 노루잠, 토끼잠, 벼룩잠, 괭이잠 같은 단어를 좀도둑처럼 모았을 뿐이다. 왜 그랬는지는 알 수 없다. 스쳐 지나가는 현상을 받아 적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소이자 전부였다. 그러나 주말이면 오후까지도 혼곤하게 잠들어 자기 계발이나 취미생활에 쓰일 시간을 낭비할 수 있었으므로 나는 고작 나약한 수면 장애가 아니었다. 또한 툭 하면 왱 하고 자취방을 찢어발기는 오토바이 소리, 일상적인 비상사태를 알리는 볼썽사나운 사이렌 소리, 고장 난 자취방 에어컨과 곰팡이 악취 때문에라도, 볼품없이 사는 도시인이라면 깊이 잠들 수 없는 게 정상이었다. 그 여름, 나는 땀에 범벅된 채 한 시간에 한 번씩 깼었다. 그때마다 시계를 확인하고 아직은 더 잘 수 있다는 사실에 얼마나 안심했던지.


 불타는 열정으로 일한다는 건 입문자의 착각에 불과하다. 진정한 프로는 불타고 남은 재로도 노동한다. 그런 우리에게, 생각해 보라, 번아웃이라는 말이 얼마나 우스웠을지. 항간에서는 이러한 말과 태도가 번아웃의 전형적인 증상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그쪽의 주장은 기껏 해봐야 퇴사나 휴직을 권장할 뿐 노동과 생존에 있어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는다. 누구나 퇴근길마다 자기 삶을 뻥 차버리고 싶겠지만 결국 뛰어가서 다시 주워와야 하는 건 자기 자신이라는 것, 알지 않는가?


 "집에 다녀오겠습니다." 이보다 더 적절한 퇴근 인사는 없었다. 화장실도 못 가고 생방송을 하거나 철야 편집이 이어지는 날에는 눈두덩이가 퀭해지고 귀에서 진물이 났다. 우리는 카메라와 모니터와 헤드폰의 충직한 노예이자 프로페셔널이었고, 단 1프레임의 실수도 허용하지 않았으며, 커피는 기호 식품이 아니라 생명수였다. 커피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직장인들에게 커피만큼 매력적인 영양제가 또 있을까. 직장인들은 기쁠 때나 슬플 때 당연하다는 듯 커피를 쐈고 "잘 마시겠습니다"라는 말을 듣는 걸 사회생활의 보람과 영광으로 여겼으며, 커피를 마신 후에는 기꺼이 더 밀도 높은 노동을 바치었다. 성과만 보장된다면 꿈이든 현실이든 무슨 대수랴. 영원히 잠드는 건 어차피 저 생에서나 가능한 거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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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까지 쓴 글로 미루어 내가 언제나 꼼꼼하고 정확하게 업무를 해 왔다는 사실을 의심하실까 봐 불안하지만, 부디 그러지 않으시길 바란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이쯤은 대도시 직장인들의 평균이며, 이 사실은 나의 동료들이 증명해 줄 수 있다. 그들은 때때로 나보다 더 심하다.


 오늘은 2월 마지막 날이었다. 겨울에서 봄으로 향해가는 계절에는 새벽 출근길이 매일 한 뼘씩 더 밝아진다. 가로등지기가 회사에서부터 우리 집 쪽으로 하나씩 하나씩 불을 켜고 있는 것 같다. 가로등지기는 얼마나 바쁠까. 나는 가로등지기의 노고를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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