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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라 Oct 11. 2023

우리는 그저 인간이고저

퇴사일기#07

 도시의 밤을 밝히는 야근의 불빛을 바라보며 서늘한 가슴 훑어 내린 적, 당신은 있는가. 그렇다면 당신도 언젠가 이 도시를 비추는 작은 광원이었겠지. 어느 날 한강에서 바라본 고층 빌딩의 유리창에는 하늘이 감금되어 있었다. 거기에는 꺼지지 않는 별처럼 일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내가 엘리베이터를 한참 타고 올라갔던 곳. 새의 높이. 허공에 존재하는 이상한 시공간. 반짝반짝반짝반짝…… 태어나서 한 번쯤은 빛나는 별이 되어야 한다고 믿은 사람들은 허공으로 올라가 도시의 기념품이 되었지. 와르르… 와르르르…… 별떼들이 환장한 듯 내게 달려들 때,


 이 서울의 하늘을 거쳐 간 별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그러나 나는 새로운 것을 배웠다. 지하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별도 기념품도 될 수 없다는 것. 우리는 도시의 쥐, 도시의 바퀴벌레, 도시의 두더지. 누군가가 말했지, 이 사람들은 말이야, 땅속에서 일하는 사람들이에요! 하하하! 자 다들 인사하세요! 아니, 이렇게 웃긴 진담이 있다니요? 밤하늘에 빛나는 별보다 더 웃겨주는 이야기시네. 그런데 오신 김에 여기 태양 하나만 설치해 주시면 안 될까요?…… 여기 도대체 지구 어디예요?…… 아 뭐든 말하라면서요?…… 이 어둡고 습한 지하실에서 나는 도대체 왜 사는 걸까, 하고 궁금해하는 건 오로지 나의 취미생활이었다.


 이 서울의 땅은 무엇이 지탱하고 있는 걸까? 땅 아래는 이렇게 잔뜩 뚫려 있는데


 주변을 둘러 보니 지상에 발을 딛고 사는 이가 없었다. 사람들은 허공이나 지하에서, 단지 인간의 몸으로 버티고 있었다. 현대인의 두통과 소화불량은 어쩌면 인간이 새나 두더지를 흉내내려고 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고층 빌딩은 우리를 허공간에 살게 했다. 읏차차차…… 우리 지구가 수직적으로도 고생이 많다. 나는 상상 속에서 고층 빌딩들을 90도로 뉘어, 너른 땅에 가로로 올려둔다. 위도 없고 아래도 없는 방향으로. 여, 우리 모두 똑같이 힘내지 맙시…… 그런데 나는 지금 인간의 언어로 말하고 있긴 한 걸까?


 점심시간이면 사람들은 한꺼번에 지상으로 쏟아져 나왔다. 나는 하늘로 올라가 그 장면을 한 번만 타임 랩스로 봤으면 했다. 거울 속 내 모습을 확인하듯 자연스러운 욕구였다. 자, 그 풍경을 90도 돌려 보면?…… 거기가 또 고층 빌딩이다. 아니, 이건? 진짜야? 나도 모르게 고개를 까딱까딱 휘젓는다. 회사가 사람을 먹여 살리는 걸까, 사람이 회사를 먹여 살리는 걸까. (고민할 것 없지요. 닭이 먼저인지, 알이 먼저인지와 같은 문제!) 나는 동료들과 함께 재빨리 비싼 점심과 비싼 커피를 해치운다. 망상은 여기까지. 우리는 각자의 얼굴이 인쇄된 사원증을 찍고 다시 땅속으로 내려간다. 한 명씩 한 명씩 줄지어 차례차례…… 우리는 사원증에서 하얀 이를 드러내고 당당히 웃는다. 새도 두더지도 웃을 줄은 몰라서, 우리만 웃는다.


 인간적이지 않은 환경에서 그저 인간이고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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