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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라 Apr 13. 2024

한 장의 꽃잎이 태양을 가르고

봄날의 황사에도 마스크 없이 돌아다니며 생것의 얼굴로 꽃보라를 맞았다. 내 최대한의 살아 있음으로 순간이라는 진실을 마주하리라. 벚꽃 행려객들의 소란으로부터 얼마간 동떨어진 의자에 앉아 아득히 흐려져 가는 태양을 바라보았다. 그때, 태양을 가르고 날아가는

 

    (좌우반전글자)

      

           (좌우반전글자)

              .

꽃잎이 하늘하늘 흔들릴 때마다 태양이 푸딩처럼 몰캉거리며 두 개의 태양으로 쪼개졌다가 이내, 다시 하나로 합되었다. 어떤 존재가 눈을 한 번 떴다가 감은 것이다. 그 삼엄한 찰나에 내가 본 것은 단 한 장의 꽃잎뿐이었는데…… 눈동자는 누구의 것입니까. 꽃잎은 정말 꽃잎이 맞습니까.


나는 여전히 질문하는 버릇을 고치지 못하여 사람들로부터 떨어져 나와 홀로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앉아 있는 나를 두고 시간은 얼마나 흘러갔던…… 한 철 반가사유의 꿈으로 산 것일까. 어느새 꽃잎들은 다 떨어지고 꽃받침들만 매달려 흔들리고 있었다. 그러나 아름다움은 거기에도 있었다. 결정적 순간에 발목을 붙잡힌 존재들. 나는 사람들이 떠나간 자리에서 꽃잎 없이 홀가분해진 꽃받침들을 올려다보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떴다.


밥벌이를 위하여 어느 곳에라도 뛰어들겠다는 울울한 다짐으로 느낌표를 죽죽 그어댄 날들이었다. 어둠한 밤마다 광적으로 그어댄 것이 혹시 저 연약한 꽃잎들은 아니겠지, 찰나에 내 심령이 아뜩해진다. 한동안 몸과 마음이 해리되는 기분으로 일자리를 찾아다녔다. 본업으로 돌아갈까, 그러나 '본업'이라는 게 있기는 가. 이라는 글자를 사전에서 지워버리지 않았던가. 추락하며 혀를 깨물었던 나는 누구이며, 혈서를 쓰듯 이력서를 쓰던 나는 누구인가. 하루에 5시간씩 지하철과 버스를 탄 날도 있었으나 가도 가도 본래 그 자리요, 도착하고 도착해도 출발한 그 자리더라. 화엄의 세계 서울이여. 서울의 봄이 꽃보라로 쓸려나간다. 이곳에서 날개를 잃어버린 자들은 아무도 자신이 누군지 모르게 되리라.


지하철 안에서 우는 여자를 보았다. 소리를 내지 않으려 하는 것 같았으나, 서럽게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워 담느라 훌쩍거리는 소리가 마치 멈추지 않는 딸꾹질처럼 울려 퍼졌다. 나는 그 여자의 옆자리에 앉게 되었다. 여자는 왜 우는 걸까. 어디가 아픈가요. 누가 당신의 마음을 그어댔나요. 울지 말아요. 밤이 늦었어요. 가방을 열어 보니 카페에서 챙겨둔 휴지가 있었다. 어깨를 두드려주는 대신, 휴지를 모두 겹쳐 건네주었다. 그때 나를 쳐다보며 고맙다고 말하는 말간 눈동자, 거기에 뜻밖에 아름다움이 있더라.


이타심 때문은 아니었다. 오히려 이기심에 가까웠다. 나도 소리를 죽이고 어깨를 들썩이며 퇴근길 지하철에서 눈을 감고 울었던 적이 있었다지…… 그때 사람들의 얼굴은 하나가 된 듯 폰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중이었는데, 아무도 나를 보지 않아서 다행인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그게 아니었구나. 그저 가방 속에 휴지가 없기 때문이었어.


소소한 아르바이트를 두 개 구했으나, 그걸로는 한 달치 이자도 어림없다. 이렇게 멍청한 짓을 왜 하는 걸까. 쓰고 버리는 잡급직 따위에 지원하지 않겠노라고 나라는 우주에 대고 수없이 맹세했건만, 나는 감히 집 우와 집 주를 배반하고도 뒤틀린 궤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무엇이 나를 끌어당기고 있나. 정신을 차리니 자동차 한 대가 나를 향해 돌진해 오고 있었다. 아니다, 저 자동차가 법도 없이 돌진해 오는 바람에 정신을 차린 게다. 무법의 세계 서울이여, 여기는 또 어디인가. 익숙한 동네 골목이었다. 나는 밤의 공원을 향해 걸어갔다.


산수유와 목련과 벚꽃은 졌지만, 꽃잔디와 황매화와 사과대추의 꽃받침 위에서는  태어난 천사들이 날개를 꿈틀거리고 있었다. 나는 라일락과 조팝나무꽃에 파묻히듯이 하며 걸었다. 모르겠다, 나는 백수로소이다. 공짜 향기나 실컷 맡자. 그때, 누군가 말을 건넸다.


"사진 찍어줄까?"


지나가던 어르신이었다. 반사적으로 거절하려 하는데, 그 분이 화색을 띠며 이어 말했다. "혹시 그때 그 아가씨 아니야? 저기 북한산 배경으로 사진 찍어줬던 아가씨. 나 그 사진 자주 보는데. 계속 고맙다고 생각했어. 다 추억이더라고."


속으로는 놀랐으나 아, 예, 하며 웃으며 스쳐 헤어졌다. 문득 혼자가 되었을 때, 하늘거리는 무언가가 기억을 가르고 지나갔다. 눈 앞의 봄이 둘로 나누어졌다. 살구꽃이 난분분하게 흩어지던 일 년 전 봄날, 한 노인이 나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불렀었다. 나를 사진사처럼 끌고 다니다가 이윽고 흔적도 없이 사라진 그를, 나는 세상에 소풍 나온 살구나무가 아닐까 하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또, 또 얼마나 지나간 것인가…… 마치 두 개의 태양처럼 합되는 봄과 봄, 파근한 달빛 사이반개하는 찰나의 눈동자, 그것을 노인은 추억이라 부르네.


두 개의 태양을 꽃잎이 가르고. 꽃잎이 마침내 지상에 닿 순간, 반짝, 나는 기적처럼  눈동자를 알아본다.


당신이었군요, 나예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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