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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운 것은 없다

by 이봄


소쩍새는 국화꽃 한 송이를 피우기 위해 봄부터 울었다.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밤새 울었다고도 했다. 먼 길을 돌아 거울 앞에 선 내 누님 같은 꽃은 거저 피지 않았다. 지난밤에는 무서리가 그렇게 내리더니 노란 꽃잎을 피웠다. 계절이 차가운 바람을 부르고 뚝뚝 낙엽 지는 소리에 나는 잠도 오지 않았다. 청춘이 다 지난 젊음의 뒤안길에서 마주한 꽃은 그래서 향기 짙어 아뜩했다.

사람이 있었고 천둥번개가 요란스럽게 호위를 자청하고서도 서리 내리는 늦은 가을이 되어서야 겨우 국화꽃은 피었다. 봄부터 울었다는 소쩍새는 목이 쉬어 더는 울지도 못하는 밤에 그렇게 피었다. 전혀 상관도 없고 너무 생뚱맞은 거 같은 인연도 꽃을 피우기 위해 애를 태웠다. 바람이야 그렇다 하자. 햇살이야 당연하다 엮어 뭉뚱그린다 쳐도 소쩍새와 천둥은 무슨 소용이랴. 귀밑머리 하얗게 샌 누님은 또 무슨 까닭이 있을까 싶겠지만 완숙한 꽃송이 하나는 홀로 피는 게 아니다. 제 멋에 겨워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거야 말로 애송이 풋내 나는 일은 없다.

어렵다. 꽃송이 하나 피는 것도 어렵고 뭔가를 익혀 내 것으로 만드는 것도 어렵다. 콩깍지 씐 그의 마음을 얻는 것도 어렵고, 東家食 西家宿 떠돌더라도 살아내는 것은 더욱 어렵다. 그래서 그런가 어렵다는 말(難난)은 오죽하면 쓰는 것도 어렵다. 어렵게 익혀 내 것이 되었을 때의 기쁨이 어려움에 미치지 못한다 하면 익힐 이유가 없을 정도다. 산다는 것은 모르는 바를 익혀 삶의 도구로 쓰는 행위의 연속이다. 그러니 머리에 쥐가 나고 입맛도 달아난다. 거기에 호구지책의 어려움마저 더해진다면 죽을 맛일 터다. 쓰고, 떫고, 시고, 고초당초 얼얼한 매움까지 보태고 나면 눈물을 쏙 빼야만 한다.

쉬운 것은 없다. 거저 되는 것도 없고 길을 가다 줍는 것도 없다. 마음을 쏟아야만 하고 그 귀하다는 시간도 물을 쓰듯 펑펑 쏟아부어야만 한다. 그래야만 한 움큼의 쌀과 커피 한 숟가락을 얻을 수 있다. 소쩍새가 울었듯 나도 간절함을 더해 울어야만 하고, 먹구름 속에서 울었던 천둥처럼 눈을 부릅뜨고서 호통치고 막아서야만 한다. 그러고도 모자라 잠도 오지 않는 안타까움을 보태야만 비로소 노란 꽃잎이 피는 거였다.

심장이 뛰고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도 쉬이 잠들지 못하는 것은 그리운 무엇이 있어서다. 마음에 이는 바람이 가지를 흔들고, 서걱대는 잎새가 시끄러워 그렇다. 봄비처럼 요란하지 않게 내려 뿌리 깊은 곳에 스미고 싶은 마음이 새벽을 부르고, 나는 또 기껍게 새벽을 밝혀 너를 그린다. 나무 한 그루 돌멩이 하나에도 스며들 마음이고 보면 심장 뛰게 하는 너라면 오죽할까. 밤새 뒤척이다가 뿌옇게 동이 트면 안부를 묻는다.

"잘 잤니? 꾸물꾸물 비가 오려고 하는지 하늘이 심통을 부려. 그래도 너 있어 나는 하늘 맑음이야!"

싱거운 일상에 그보다 더 싱거운 말을 남긴다 하더라도, 말 하나 남기는 것조차 쉬운 것은 없다. 거기에 마음을 담아서 그렇다. 시구 한 소절 읊조리다 왈칵 눈물 쏟는 게 마음이다. 그 마음이 네게 닿기를, 그래서 향기 짙은 국화꽃 한 송이 피어날 수 있기를.... 어렵다는 말 하나 쓰고 소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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