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5년 차.
두 번의 임신과 두 번의 유산. 네 번의 시험관 시술 끝에 결국 임신이 되었지만 기쁨도 잠시. 계속되는 하혈로 병원신세 중이다. 화장실 가는 것 외엔 일어서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물같이 피를 쏟는 날이면 뱃속에 아가는 잘 있을까, 무슨 문제가 생긴 건 아닐까 두려워한다. 지금 나는 두려움을 두려워하게 됐다.
시험관 시술은 참으로 고통스럽다. 사람마다 그 증상이 다르겠지만 인위적으로 과배란 시켜 난자를 많이 만들어 채취한다. 어떤 이들은 이 과정에서 복수가 차기도 한다. 그리고 배에 셀프 주사를 놓는 과정도 순탄치는 않다. 이식 날을 잡고는 혹시 난포가 먼저 터질까 봐 이를 억제하는 주사를 놓는다. 모두, 본인이 혼자서 복부에 자가 주사를 한다.
이식이 잘 돼서 한 번에 성공하면 좋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지 못하다. 나 역시 네 번째에야 피검사 수치가 나왔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이식 후가 더 사람 피를 말린다. 약 12일 후 1차 피검사를 한다. 병원에서는 안정적으로 100 이상 정도 나와야 '임신'이라고 전화를 준다. 그로부터 사나흘 후에 2차 피검사를 하는데 이때는 그 수치가 6-7배는 뛰어야 안정적인 임신 괘도에 들어갔다고 할 수 있다.
나는 이 모든 과정을 거쳐, 지금의 임신 12주에 이르렀다. 하지만 기뻐할 새 없이 시작된 출혈로 2주간 병원에 입원 중이다. 그. 폭풍 하혈 속에서도 아기는 잘 크고 있단다. 놀랍기만 하다.
남들은 12주 넘어가면 안정기다 뭐다 하지만 내게는 해당사항이 아닌가 보다.
쏟아지는 피를 산모용 패드에 받아내며 불면의 밤을 보낼 때, 혹시 내가 억지로 되지 않는 일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묻곤 한다. 나약한 엄마다.
누구는 내게 위로한답시고 하나님이 주시는 고난의 시간을 내 것으로 만들라고 한다. 지금이 징벌의 시간이고 회개를 촉구하시고 있다고...
나는, 지금이 고난의 때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 몸에 일어난 변화고, 내 태반이 커지면서 출혈이 일어나는 것을 어떻게 하나님 탓으로 돌리겠는가.
하나님이 마치 나를 깨우치시기 위해 부러 고난을 주시는 거라고는 더더욱 생각하지 않는다.
나의 하나님은 그렇게 치졸한 분이 아니시다.
두 번의 유산 이야기를 하자면, 지금도 때때로 가슴이 아프다.
누군가가 그랬다 슬픔에도 수명이 있다고. 내 경우에는 아닌 것 같다. 7주, 9주에 아이 심장이 멈췄다. 처음에는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하나님의 뜻이 있으실 거야.'라는 말은 위로가 아니었다. '다음번엔 더 좋은 아기를 주실 거야.'라는 말은 나를 두 번 죽이는 일이었다.
그냥 말없이 옆에 있어주는 남편이 고마울 따름이었다. 그저 같이 울어주는 친구들이 있어 다행이었다.
'아이 없이 우리 둘이 살까?'는 내가 남편에게 수없이 했던 말이다. 남편은 내가 좋으면 본인도 좋은. 그런 사람이다.
나보다 늦게 결혼한 친구들이 첫째를 낳고 둘째를 낳았다. 새로 이사 온 아파트 옆집 아주머니는 초면에 왜 애가 없냐고 대뜸 묻는다. 결혼하면 으레 아기를 낳고 길러야 한다는 사고 때문이리라.
내 주위에는 실제로 아기를 안 낳기로 한 커플이 여럿 있다. 나름 그들만의 삶을 잘 살아간다. 그런데 나는 그렇지 못했다. 아기를 가져야 했다. 이것이 내 유일의 열등감이었고, 아기를 갖지 않고는 결코 극복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기를 쓰고 노력했다. 시험관 네 번이 힘들지 않았다는 말은 아니지만, 육체적 고통은 얼마든지 참을 수 있었다. '남들처럼, 아기를 가질 수 있다면...'
앞서 말했지만 나는 임신 중이다.
아침마다 회진을 오는 내 주치의 표정을 보면 사실 이 임신이 언제까지 유지될지 모르겠다.
매일같이 울어도 눈물이 마르지 않는 날이 계속되고 있다.
아이가 태어나면 과연 나는 행복할까.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