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깊숙이 들어왔다. 저녁밥을 후딱 먹고 재빠르게 설거지를 마치고 밤마실을 나간다. 제법 차가워진 바람. 바삭거리는 공기는 이미 깊어진 가을을 증명한다.
오늘도 남편 손을 잡고 걷다 살짝 쌀쌀한 기운에 냅다 팔짱을 꼈다. 그리고 문득, 언제까지 우리 둘이 이렇게 행복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둘이 여서 좋지만, 둘이기에 힘든 나날이다.
다시 겪고 싶지 않은 유산을 했다. 아이를 품다 놓치는 일은 정말이지 끔찍한 경험이다. 그 경험을 벌써 세 번이나 했으니, 정신도 몸도 온전한 상태는 아니다. 그렇게 힘들게 여름을 났다. 한 여름 덥고 꿉꿉한 날씨처럼 내 감정도 땀에 젖어 몸에 달라붙은 옷처럼 찝찝하기만 했다.
이쯤 되니 쉽게 위로를 건네는 사람도 적었다. 그저 살다 보면 살아진다는 유행가 가사에 되뇌며 그 여름을 보냈다. 눈물도 없고 환장도 못한 채 느린 시간 속에서 시간이 가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가을이 왔다. 다시 웃고 떠들고 지낸다. 일상은 별반 다르지 않게 흘러간다. 여전히 남편은 다정하다. 습기를 머금은 한 여름의 옷들은 바삭하게 말랐다.
그러나 문득. 너는 어디로 갔을까. 생각한다. 내게 와 잠시 머물던 너는 이 가을 속 어딘가에 있긴 한 건지. 아주 잠깐 그런 생각을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