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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lly Oct 30. 2017

부족한 인생

"지금 몇 주죠?"

유산 후 석 달만에 만난 내과 의사가 물었다. 임신 중 나는 갑상선 약을 복용했는데(임신 중에는 갑상선 수치(TS)가 2.5 정도로 유지돼야 하는데 나는 2.7이었다.) 유산 후에도 계속 약을 먹어왔다. 3개월 후에 피검사하고 약을 끊어보자고 했는데, 올 때마다 똑같은 질문이다. 


"저 유산했어요."

의사는 그제야 진료 기록을 찾아본다. 며칠 전 병원을 방문해 피검사를 한 후, 오늘 결과를 들으러 의사 앞에 앉았다. 

  

"약을 계속 유지하죠."

"어, 선생님. 3개월 전에는 약을 끊자고 하셨는데..."

"임신 계획 없어요?"

"네, 없어요."

"흠....그렇다면 끊어보죠. 대신 음식을 적게 먹는데도 살이 찐다거나 몸이 바삭거리고 피곤하면 바로 오세요."

"네....근데 제가 진단명이 있는 건가요?"

"자가면역 갑상선염이요." 


멍하니 무방비 상태로 있다가 누군가 몸을 잡아채 흔드는 것 같았다. 오늘 자가면역 갑상선염이라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진단명을 얻었다. 

선천적으로 갑상선 자가 항체에 문제가 있고, 현재는 안정적인 수치를 보이지만 임신을 계획한다면 꼭 약을 복용해야 하며, 앞으로 언제든지 갑상선 기능이 무너질 수 있는 유전 인자를 가지고 태어났단다. 40 가까이에 알게 된 내 병명이다. 


의사는 차가운 청진기를 내 목에 갖다 댄다. 그리고 이내, "부어있어요." 나는 못 느끼는 내 울대뼈 안쪽, 나비모양 그 작은 갑상선이 내 뒤통수를 칠 줄이야 상상이나 했겠는가. 


내내, 건강했다. 잔병치례 없이 그저 단단했고, 병원 입원이나 수술 없이 살아 건강하다 자부했다. 

결혼을 하고 아기를 기다리면서, 수 차례 반복되는 유산을 경험하면서, 몸이 여기저기 좋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 특히나 자궁이 약했다. 지금까지 수십 년 사용해온 성분을 알 수 없는 생리대의 영향인지, 극심한 생리통을 그냥 진통제로 때우던 무성의함 때문인지, 아님 모든 인생사의 그 무지막지한 스트레스가 모두 내 자궁으로 모여 이런 사단을 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이제 임신이 종료되었고, 앞으로 임신 계획도 없는 나에게  갑상선이라는 작은 장기가 내 발목을 잡았다. 나는 선천적으로 임신이 유지되지 않는데 억지로 아기를 지키려고 한건 아닌지 모르겠다. 


돌이켜보면 피곤을 느끼고 에너지가 바닥인 날들이 많았다. 호르몬의 영향이라 생각하지 않았고 일시적인 거라 믿고 며칠 기운 없이 보내다 다시 바쁜 일상 속에 젖어 몸을 관찰하지 않았다. 


자연이 순환하고 우주의 모든 존재가 탄생 직후부터 소멸을 향해 가고 있다. 젊음은 돌아오지 않고 하루하루 죽음에 가까워져 가는 인생이다. 그런 인생을, 관리는커녕 방치했다. 인체에 유해한 화학성분이 내 삶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화학섬유로 만들어진 옷은 환절기만 되면 피부에 알레르기를 일으켰고, 식품에 첨가된 성분과 농약은 내 몸에 남아있었지만, 그 속에 홍삼과 비타민을 들이부었다. 


바쁜 시간 속에서 몸의 에너지는 세상의 시간을 따라가기에 역부족이었다. 왜 몰랐을까. 몸이 신호를 보내왔을 때, 멈추지 않은, 돌아보지 않은 내 책임 이리라. 


이 땅의 식물과 동물, 자연과 함께. 순리대로 순환하며 살아가는 것을 배우고 싶다. 약에 의지한 채 노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자연에서 답을 얻고 그것을 믿고 실천하며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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