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에 대한 쓸데없는 생각들
아이가 꼭 있어야 하나요?
마음속이 채 정리되지도 않았는데 전화번호를 누르고 있다. 계속 미루고 미뤘다. 고작 전화하는 게 뭐 그리 어렵다고. 실은 집이 아니다. 사람들로 소란한 카페에 한 켠을 비집고 앉았다. 통화 연결음 후에 낯선 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화기 넘어 속 냉랭한 목소리가 내게 넘어왔다. 카페 안에 소음과 날카로운 내 마음이 만들어낸 느낌이겠지.
입양상담을 했다. 사실 인터넷 등을 통해 다 알고 있던 내용들이다. 누군가의 설명을 듣는다고 내 궁금증이 더 풀리거나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렇게 전화를 하는 데는 큰 용기가 필요했다.
임신이 여러 번 실패하고 더 이상 아기가 생기지 않을 거라는 절망의 터널을 지나고 나니 또다시 둘만 덩그러니 남았다. 아이 없이 잘 살아보자 싶다가도 이렇게 둘이 늙는 게 못내 서러워졌다를 반복했다. 여러 번.
남편이야 내가 하자는 대로, 내가 좋은 게 본인도 좋은 거라 말하지만 입양에 대해서는 크게 열려있는 편이다. 심지어 연장아도 괜찮다는 입장이다. 문제는 나. 한 아이를 만나 품고 기르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입양은 어쩌면 아이를 갖는 확률보다도 더 낮지는 않을까.
입양 절차는 처음 상담부터 가정조사, 입양교육 후 필요한 서류 만들어 가정법원에 제출하고 법원에서 인용되기까지 5~11개월 정도의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혹시나 여아를 원할 경우에는 더 많이 기다려야 한다. 근데 여아를 선호하는 건 왜일까. 나는 어떤 아이를 기다리고 있는지 조차 아직 잘 모르겠다. 그저 건강하기만 하면 되지 않을까. 근데 어디 건강하기가 쉽나. 마음이 이렇게 오락가락이다.
"아이 없이 살려고요."
언젠가 시어머니께 했던 말이다. 시어머니는 크게 놀란 기색 없이 그래 요즘에 애 없이 사는 가정도 많더라. 하셨다. 어디 아들 내외의 아픔을 모르시겠는가. 그저 내 아들이 행복하기만을 바라시는 게 어머니 마음인 것을.
그렇게 안심되는 말을 들었음에도 나는 시어머니에게 친손주를 안겨드리고 싶어 했다. 피붙이가 대체 뭐라고. 그게 뭐 대수라고. 아니 대수니까 내가 지금껏 이렇게 망설이고 있겠지.
혈연으로 엮이지 않은 가족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있는가? 나도 잘 모르겠는데, 아마 내 부모세대는 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더 지나고 나면. 10년 후, 20년 후에는 조금은 자연스러운 일이 되지 않을까. 입양가정, 다문화가정, 한부모가정. 모두 편견 없이 얘기하고 받아들이는 날이 오지 않을까.
내 시간은 지금 어디쯤 와있나. 아직은 누군가의 편견에 단단히 맞서야 하는데, 그럴 힘이 내게 있는지 사실 의문이다. 강하다 믿었는데, 열정적이고 주체적이라 생각했는데, 누구보다 나약하고 흔들리는 존재였다.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