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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문 Mar 03. 2024

개학의 맛

2000년 3월 3일

'작은 나'의 일기장



2024년 3월 3일

'큰 나'의 일기장


3월 개학, 전교생 50명짜리 분교 학생의 질문은 스케일이 다르다. '누구랑 같은 반일까?' 대신 '어느 학년이랑 같은 반이지?' 이었으니까. 5학년 때는 2학년과 합반이었던 모양이다. 머리 좀 컸다고 기세등등했겠지, 2학년 교과서 들썩이며 "아직 이거 배우나~"하고 귀여워했겠지.


우리 초등학교는 4개 마을 대상이었다. 노량마을 애들은 고개를 넘었고, 덕신마을 애들은 논둑 따라, 감암마을 애들은 갯벌 따라, 월곡마을 애들은 찻길 따라 학교에 왔다. 중학교, 고등학교는 면으로 읍으로 가야 있었지만 초등학교는 마지막 보루 같은 것이었는지 마을 곁에 끝까지 남아 있었다. 그래서 아이들은 20분이 걸리든 1시간이 걸리든 하나 같이 걸어서 학교로 왔다. 


마을마다 주요 산업이 다른 까닭에 가정의 돈벌이도 달랐던 게 기억 난다. 노량마을 사람들은 충렬사란 문화상품을 등에 지고 있었기에 대체로 횟집이나 건어물집, 모텔 등을 운영하는 비중이 많았다. 우리집만 해도 할아버지는 충렬사 관리원을, 할머니는 남해대교 매표원을 했으니 말이다. 학교가 있는 덕신마을 사람들의 생계는 농업이었다. 덕분에 학교 주변은 죄다 논이었고 등하교길에 계절 오고 가는 맛을 톡톡히 느낄 수 있었다. 감암마을 사람들의 생계는 어업. 배를 타고 나가 고기를 잡거나 물가의 굴, 갯벌의 쏙 등을 잡아다가 팔았다. 월곡마을은 남해대교에서 남해읍으로 향하는 길목에다가 바다를 끼고 있었으나 볼거리가 없어 산업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빈약했다. 그래서인지 월곡마을 학생 수가 제일 적었다.

 

합반을 하면 칠판을 중심으로 교실에 중앙선이 생긴다. 사물함을 줄지어 배치해 영역을 가르는 것이다. 선생님은 이쪽 저쪽을 오가며 수업을 하는데, 한 학년에서 먼저 진도를 빼고 과제를 준 다음 반대편으로 넘어가 수업하는 식이다. 그래도 나름 신경 써서 점심 먹고 하교하는 저학년과 오후까지 남아 있는 고학년을 매칭했던 것 같다. 나이 차이가 꽤 있으니 소소한 다툼이나 갈등도 없었다. 물론 그러한 수업 방식에 학생 역시 불만은 없었다. 상황 상 어느 학년은 해야 할 수밖에 없으며, 합반을 하든 하지 않든 수업의 질이 그리 달라지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작은 나'는 폐교가 되지 않기를 바랐지만, 딱 11년이 지난 2011년 3월 1일, 학교는 마지막을 알렸다. . 대학생이 되어서도 할머니집에 갈 때면 한 번 씩 기웃댔으니 둘러볼 수 없이 막힌 문, 운동장을 뒤덮은 잡초가 내 기억 속 학교의 마지막 풍경이다. 아쉽다. 시간과 기억이 묻는 공간이 사라진다는 건 이렇게 아쉽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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