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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실밖 May 10. 2020

여백 훈련

좋은 하루였고, 매 시간이 좋았다.

감염병 상황이 장기화되면서 신경이 예민해질 때가 많았다. 소위 코로나 블루라고 하는 것은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지난주 토요일 밤을 꼬박 새운 이후 수면 조절을 제대로 하지 못하여 피로가 겹쳤다. 감염병의 장기화에 따라 위험에 대비하는 세포들이 다 일어나 경계를 하니 몸과 마음이 고단 해지는 것은 당연지사. 거기다가 이런저런 공적, 사적 일들이 사정을 봐주지 않고 발생한 덕에 마음도 무척이나 피폐해졌다.


오늘은 아침 일찍 전통시장을 둘러보며 사람 사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오후엔 가까운 수목원에 들러 여러 식물들이 자라나는 모습을 보았다. 천천히 느리게 걸었다. 의식적으로라도 여유를 가져야 할 것 같았다. 오늘은 몸이 보내는 신호를 수용하고자 했다. 비 갠 오후 수목원엔 물기 머금은 각양각색의 식물들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부드러운 이파리와 꽃봉오리들은 그 자체로 삶의 여백을 주문하는 듯했다.


항동철길역에 앉았다. 왼쪽으론 개성이고 오른쪽으론 남해란다


여유와 휴식도 습관이다. 그리고 훈련을 통해서 다져지는 능력이기도 하다. 그 능력이 좋은 사람이 재충천 주기도 빠르다. 야외로 나온 시민들이 경기화학선 철도에서 드문드문 느리게 걷고 있었다. 그래 오늘은 이 흐름에 몸을 맡겨보자 하면서 천천히 수목과 공기를 음미하였다.


저녁에는 맛있는 음식을 찾아 즐겼다. 아내가 놀랐다. 매일 시간에 쫓겨 서둘러 먹고 일어서자고 하더니 오늘은 웬일로 여유가 있어 보이냐고 한다. 앞으로도 그렇게 살라고 했다. 늘 바빠 허둥대고 있으니 옆에서 보기에도 불안하다고 했다. 스스로 여유를 만들고 시간을 느긋하게 즐기자는 다짐은 내일이면 깨질지도 모른다. 오늘과 같은 시간이 더 자주 반복되면서 내 몸에 습관으로 붙길 바란다. 좋은 하루였고, 매 시간이 좋았다.




칼랑코에, 목수국, 경기화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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