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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실밖 Dec 20. 2022

어떤 고독

먼 곳과 가까운 곳, 혹은 그 사이를 보다

외부로부터 강요된 '혼자'라면 그 자체로 두려운 일이다. 그러나 인식 주체가 선택한 고독은 다르다. 그 고독은 주관자의 통제 범위 안에 있다. 가령 "오늘은 뭔가 혼자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라고 생각하면서 적극적 의도 안에서 선택하는 상태와 같다. 혼자 책을 읽거나, 걷거나, 사색하는 모든 시간들은 홀로 버려진 시간으로 소비되지 않는다. 두려움이 아닌 경이로움으로 다가온다. 

'혼자 걷기'는 건강과 사색을 동시에 얻을 수 있는 주관자에 의하여 선택된 고독이다. 혼자 걷는 행위가 몰입의 시간에 이르면 고독은 일종의 창조물로 변한다. 어제저녁 강변을 걸을 때 완벽한 혼자를 느낀 순간이 있었다. 차가운 공기, 독특한 질감으로 밟히는 눈, 서쪽 하늘에 걸린 해까지 고독을 즐기기에 충분했다.


업무의 양이 꽤 많은 편인데, 젊은 몸이 아닌데도 큰 탈없이 견디고 있는 이유를 말하라 하면 주저 없이 두 가지를 들겠다. '걷기'와 '혼자 있는 시간'이다. 폭넓은 인간관계 역시 삶을 풍부하게 만드는 것에 일조하겠지만, 분명 내 경우는 사람들 사이에 있을 때보다 혼자 있을 때 훨씬 더 많은 영감과 에너지를 얻는다. "물 위를 걷는 것도 기적, 땅 위를 걷는 것도 기적"이란 말을 버릇처럼 되뇌던 시절이 있었다. 몸이 많이 상했을 때 이야기다. 당신이 지금 걷고 있다면 그 자체로 충만한 삶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걷다가 잠시 멈춰 서서 풍경을 바라본다. 그냥 보이는 것이 아닌 '적극적 보기'라 할 만하다. 먼 곳을 보고, 가까운 곳을 보고, 그 사이를 보면서 사색에 빠지는 순간이 좋다. 종종 안경을 쓰지 않고 나온다.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기 불편한 것 외에는 괜찮다. 안경과 마스크를 함께 쓰면 안경에 김이 많이 서려 몰입하여 걷기를 방해하기도 한다. 그러나 본시 인간이란 존재는 보조 도구 없이 세상을 보던 생명체다. 걷는 동안만 느껴보는 불편함이기 때문에 긴 시간 견딜 일도 아니다.  


강의 일부는 얼었고, 녹아 있는 곳에선 느리게 흘렀다. 오래전 북유럽에 갔을 때 아이들을 자주 밖으로 내보내는 것이 일상이라는 말을 들었고, 실제로 영하 15도 이하로 내려간 날씨에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을 보았던 적이 있다. 나도 영하 10도 이하로 내려가지 않는다면 꽁꽁 싸매고 걷기를 즐기는데 이게 습관이 되면 전혀 춥지 않고, 겨울 공기가 주는 느낌을 제대로 맛볼 수 있다.  


어떤 사람은 혼자 있는 시간을 견디기 힘들어한다. 혼자 먹는 밥을 두려워하고, 혼자 보는 영화는 안 본 것만 못하다. 혼자서는 도무지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아서다. 전화번호를 뒤적거려 지인을 불러내고 함께 밥을 먹고, 술을 먹으며 대화한다. 당연히 이런 사람의 성격이나 취향도 존중한다. 그런데 이런저런 경험이 쌓이다 보니 결국 혼자 무엇인가를 행하는 것에 익숙해지지 않으면 힘든 삶이 될 것 같더란 이야기다. 


혼자 있는 시간에는 당신의 내면이 단단해진다. 그냥 모든 생각을 내려놓고 '멍 때리는' 것도 나쁘지 않다. 무엇인가를 읽고 쓰거나, 보고 들으면서 익숙해지도록 몸에 붙이길. 앞으로 더 많은 시간을 혼자 견뎌야 할지 모른다. 그래서 <어떤 고독은 외롭지 않다>라는 책이 나왔는지도 모른다. 첫 장을 넘기는 중인데 나중에 리뷰를 쓸 것이다. 
  

혼자 걷기에 너무 충분한, 좋은 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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