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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실밖 Nov 04. 2024

지훈이의 캔버스(2)

그 열정 오래도록 식지 않기를...

  개학 이튿날 조회 시간에는 자리 뽑기를 했다. 나는 분필을 들어 칠판에 34명의 자리 배치도를 그려놓고 자리마다 번호를 매겼다. 그리고는 한 명씩 나와 젓가락 제비를 뽑았다. 젓가락의 끝에는 번호가 1번부터 34번까지 쓰여 있었다. 아이들에게는 먼저 양해를 구했다.     


  "여기 지훈이는 귀가 좀 불편하여 수업을 알아듣기가 힘들다고 하니 교탁 앞에 앉았으면 하는데, 혹시 다른 의견이 있는 사람?"     


  이렇게 물었으나 아이들은 그 문제에 대하여 별 관심이 없었다. 제비를 뽑으면서 어떤 아이는 탄성을 지르기도 했고, 어떤 아이는 나지막이 욕설을 내뱉기도 했다. 지훈이 옆에는 여학생이 앉게 됐다. 그렇게 서른세 명이 제비를 뽑았고 자리 배치는 끝났다. 아이들은 책상과 의자를 살폈다. 일 년 동안 자기가 쓸 것이기 때문에 몸에 맞지 않으면 조절도 해야 했고, 또 파손된 것은 목공실로 보내 수리를 부탁해야 했다. 이제 저 책상의 오른쪽 위에는 진지한 명조체로 학번과 이름이 적힌 이름표가 붙을 것이다. 동시에 사물함의 주인도 정해졌다. 사물함에도 이름표가 붙을 것이다. 성질이 급한 아이는 벌써 자신의 사물함에 자물쇠를 달았다.      


  학기초 사무는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교사들의 정신을 빼놓았다. 새롭게 만난 아이들을 위한 교과수업 준비, 수업과 평가 방식을 안내, 공부를 위한 모둠 편성도 했다. 공강 시간에는 각종 제출 자료들을 만들어 냈다. 25년의 경력은 무엇을 빨리 내고, 무엇을 천천히 내도 될지를 판단하여 일을 조절하게 했다. 신임교사는 무엇을 먼저 해야 할지 몰라 계속 옆 자리 선배 교사에게 물었다. 학기초 교무실 풍경은 늘 분주하고 정신이 없어 보였다. 내 경우 상담할 때 필요한 환경조사서는 따로 받지 않았다. 그 대신 학급활동 시간에 스스로 자신을 소개하는 자료를 작성하게 했다.     


  생활부에서는 학생들의 사진 명렬표를 내라고 재촉했다. 업무관리 시스템에서 컬러로 출력한 사진에 이름과 집전화번호, 휴대폰번호를 입력하여 사진 명렬표를 만들었다. 사진이 빠진 아이들은 따로 불러 휴대폰 카메라로 교무실 벽을 배경으로 즉석 사진을 찍어 인쇄하여 붙였다. 서른네 명의 아이들의 사진과 이름, 전화번호가 A4용지 한 장에 모두 들어갔다. 조악한 품질의 사진, 그리고 무표정한 사진 속 표정들, 흡사 어느 이발소나 허름한 식당에 붙어 있는 지명수배자 명부와 꼭 닮았다. 생활부에선 40 학급이나 되는 전체 학급의 이 명부를 수합하여 비치할 것이다. 아이가 사고를 쳐서 빠르게 신원을 파악해야 할 일이 있을 때, 또 '공범'들을 잡아야 할 때 이 명부가 쓰였다. 교직 25년을 넘기고부터 이런 절차들이 무의미하게 생각되었고 무기력증 같은 것이 찾아왔다.      


  3월 한 달은 매우 빠르게 지나갔다. 그 사이 학급 정부회장 선거가 있었고, 학생회장단도 꾸려졌고, 학부모 총회까지 이어졌다. 3월 3주쯤에 열리는 학부모 총회는 학기초 업무의 큰 매듭이었다. 이때를 위해 줄달음치듯 학교 업무는 정신없이 전개됐다. 환경 구성도, 대청소도 이 날을 위한 것이었다. 학부모 총회 날 교사들은 자신의 수업을 공개하였다. 학부모들은 교실 뒤편에서 교사의 수업과 자녀의 태도를 동시에 살폈다. 어떤 학부모는 교사의 수업 방식이 내 자녀에게 유리한 방식인지를 셈 하였다. 학부모 총회가 끝나고 학급의 임원 학부모를 선임하고 학교운영위원회까지 구성되면 비로소 학교는 일상을 찾았다.     


  교사들은 학기초 긴장을 늦추고 조금 여유를 찾았다. 학년협의회와 교과협의회, 그리고 부서협의회가 이어졌다. 협의회라고 해봐야 현안 문제를 이야기하면서 저녁 식사를 하는 것이었다. 3월 말이 되자 교사들은 다른 학교로 전출된 교사들을 방문했다. 일종의 관례 같은 것이었다. 5년마다 학교를 바꾸면서 교사들은 마음 맞는 동료들과 관계를 이어갔고, 학교가 서로 달라진 후에도 가끔 만나는 사이가 됐다. 그렇게 일 년에 한두 번씩 만나면서 새로운 학교 이야기, 교장 이야기, 아이들과 학부모들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지훈이의 3월은 교과 교사들의 지적이 넘쳤던 시기였다. 잘 듣지 못하여 수업을 따라가기가 벅찼던 지훈이는 그 답답함을 낙서로 푸는 것 같았다. 녀석의 교과서 여백, 공책, 그리고 책상은 온통 낙서 천지였다. 교과를 담당한 교사들은 바로 교탁 앞자리에 앉아 낙서만 하고 있는 지훈이를 나무랐다.     


  "너는 맨 앞에 앉아서 공부는 안 하고 낙서만 하는구나... 과제는 하지도 않고 그림만 그리고... 너 좀 혼나야 하겠다..."      


  하루에도 지훈이는 거의 모든 시간에 교사의 주의 주는 말을 들었다. 수업은 재미가 없었고, 한 번 흥미가 떨어지니 이제는 어떤 말도 이해하기 힘들어졌다. 아이들은 지훈이가 말을 못 알아들어 답답하다고 어울리려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보청기를 할 순 없었다. 언젠가 누나가 알아본 보청기의 가격은 상상을 초월했다. 2백만 원짜리는 보통이고 귀에 쏙 들어가는 최첨단 보청기는 3백만 원도 넘었다. 공부도 못하면서 그런 비싼 것을 귀에 꽂고 다니긴 싫었다.

  초등학교 때는 동네에서 태권도를 배운 적이 있지만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그만 두었다. 어렸을 때는 주먹을 내지르고 발차기를 하고 하는 것이 재미있었는데 사춘기에 들어서면서 태권도를 하기 싫었다. 지훈이가 좋아했던 사범형이 더는 도장에 나오지 않았던 것도 태권도에 흥미를 잃게 했다. 사범형은 고등학교에 입학하더니 아버지를 따라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다. 관장님이 직접 가르쳐 주었지만 도장에는 아이들이 점점 줄어들어 지훈이 말고 열 명도 안 되는 아이들이 운동을 했다. 결국 관장은 경영난에 시달리다 도장 문을 닫았다.  


  학교에선 어울려 지낼 만한 친구가 없으니 심심했고, 선생님들은 눈만 마주치면 지적만 하는 통에 우울한 나날이 계속됐다. 낙서를 할 땐 그나마 다른 것은 좀 잊고 거기에 몰입할 수 있었다. 지훈이는 매 시간 낙서를 했고 매시간 지적을 받았고, 때론 벌을 섰다. 교실 뒤에 나가서 멍하니 서 있는 벌도, 교과서를 어디부터 어디까지 베껴오라는 과제 아닌 과제도 했다.      


  4월 초, 학교에는 연두의 물결이 넘치기 시작했다. 바쁜 3월은 끝났고 중간고사는 아직 한 달 정도 남아 있는 시기, 그리고 대기는 한층 따뜻해지고 부드러워져서 수업도 근무도 할만한 시간이었다. 그런 어느 날이었다. 수업 끝나는 종이 울리자마자 평소에 자주 대화도 하며, 친하게 지냈던 젊은 교사, 이미영 선생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내 자리로 왔다.      


  "선생님 반에 신지훈이라고 있잖아요? 그 아이 좀 어떻게 지도해주세요. 맨 앞자리에서 공부는 안 하고 낙서만 하는 통에 신경이 쓰여서 제가 수업을 할 수가 없어요. 쪽지 시험도 맨날 다 틀리고... 제 말도 듣지 않아요. 저기 그리고요..."     


  이미명 선생은 주위를 한 번 둘러보았다. 그리고는 조금 더 가까이 내 앞으로 다가와 낮고 빠른 목소리로 말했다.        


  "사실은 제가요. 바로 생활부에 넘기려고 했는데요. 그래도 선생님에게 먼저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서... 아 글쎄 이 녀석이 제가 판서하고 있을 동안에... 칠판에다 여자 나체 그림을 그렸어요. 아이들은 웃고, 어찌나 민망한지... 너 두고 보자... 그리고는 바로 나왔어요. 전 수치심을 느꼈어요. 샘이 그놈 혼내주실 거죠?"     


  이미영 선생은 분이 풀리지 않는 얼굴로 국어 시간에 있었던 일을 쏟아냈다. 이 선생은 분이 풀리지 않는지 연신 숨을 몰아 쉬었다.     


  "샘 그러니까요. 제가 뒤돌아서서 판서하고 있을 때 이 놈이 나체 그림을 그리면서 무슨 상상을 했겠냐고요... 뭐 한창 그럴 때라는 건 저도 알지만, 그래도 아이들이 그걸 다 봤잖아요... 아이들이 제 얼굴과 그 그림을 번갈아 보면서 막 웃는데... 하... 정말 기분이 나빴어요... 근데요 샘, 너무 혼내지는 마시고... 아무튼 다음부턴 그러지 않겠다고 다짐을 받아 주세요."     


  이야기를 하고 나서 분이 좀 풀리는지 조금 편안한 얼굴이 된 이미영 선생이 말을 이어 갔다.     


  "근데요. 그 녀석 좀 웃기지 않아요? 아까도요. 저를 그냥 빤히 쳐다보더라고요... 만약에요. 그 녀석이 아니고 샘 반에 그 일학년 때 짱 먹었던 아이 있잖아요... 그놈이 그랬다면 전 정말 무서웠을 것 같아요..."     


  그러고 보니 우리 반에 들어오는 교과 교사들에게 좀 더 명확히 상황을 알릴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마다 보건실에서 '건강 문제로 관심을 가져야 할 학생 명단'을 해당 학년 교사들에게 비공개로 전달했다. 교육활동 중 고려해야 할 정도로 몸이 불편하거나 기저질환이 있는 아이는 간단하게 질환명과 수업할 때 참고하라는 내용이 있었다. 지훈이도 그 명단에 들어 있었다. '좌측 난청, 앞자리 배치 요망' 이것이 지훈이에게 해당하는 내용이었다. 그러니 나도 교과 담임들도 앞자리에만 앉히면 다른 문제는 없었던 것으로 알았던 것이다. 낙서 습관 정도야 그저 사춘기 때 있을 수 있는 정도일 것이라 봤다.     


  "예 선생님, 당황하셨겠어요. 선생님도 아시다시피 그 친구가 한쪽 귀를 못 듣잖아요? 그래서 수업에 잘 적응을 못하나 봐요. 낙서는 그 녀석의 유일한 취미인 것 같고... 아마 그날의 소재가 여자 나체 그림이었던 것 같은데... 그게 꼭 선생님을 상상하면서 그러진 않았을 겁니다. 제가 불러서 샘에게 사과하라고 잘 타일러 볼게요."     


  이미영 선생은 내 얘기를 듣자 바쁜 걸음으로 자기 자리로 갔다. 에너지가 넘치는 젊은 교사였다. 가르치는 것에 대한 자부심도 강하고 매 수업을 열정적으로 준비하였다. 선배 교사들에게도 씩씩하게 할 말은 다 하는 편이었다. 열 명 남짓한 교원노조 분회 모임에도 나와서 잘 어울렸다. 이미영 선생의 뒷모습을 보면서 생각했다. 부디 오래가기를. 그 열정 오래도록 식지 않기를.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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