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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실밖 Nov 06. 2024

지훈이의 캔버스(3)

지훈이는 귀가 어두운 대신 눈이 밝았다

  그날 종례가 끝나고 지훈이가 내 자리로 왔다. 녀석은 무심한 얼굴로 운동장 쪽에 놓여 있는 화분을 바라보았다. 아직 사춘기의 어떤 징후도 보이지 않는 앳된 얼굴이었다. 내 자리 옆에 있는 동그란 의자를 끌어당겨 앉게 했다. 녀석은 왜 불렀느냐고 묻지 않았다. 내가 중학교 2학년 땐 어땠었지? 뜬금없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내가 첫 번째로 한 질문은 그 사건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었다.     

 
 "선생님들 설명을 알아들을 수 없어 답답해?"     

  "네"     


  지훈이의 대답은 간단명료했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형편없는 질문에 당연한 답이었다. 두 번째 질문 역시 뜬금없었다.     


  "그렇게 그림을 그릴 땐 마음이 좀 편안하니?"


  이렇게 질문을 해 놓고도 '이게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명료하게 서둘러 이미명 선생에게 찾아가 사과하고 다시는 그러지 말라고 다짐을 받아야 하나... 생각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머릿속에 얽혔다. 지훈이가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입을 열었다.       


  "샘은 낙서라고 안 하고 그림이라고 하시네요?"     


  지훈이의 말은 내 질문과는 영 동떨어진 것이었지만 내 질문에 대한 답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어 시간 이야기 들었다. 국어 샘 좀 화가 나셨던데?"     

  "많이 화나셨어요? 그거 그냥 별생각 없이 그런 건데... 국어 샘은 열심히 가르쳐주시는 데 저는 알아들 수 가 없어서 답답해서... 저도 모르게... "     

  "그래 그 마음 알 것 같다. 그래도 국어 샘에게 가서 죄송하다고 사과 말씀드리는 게 어떠니?"     

  "네, 지금요?"     

  "그래 국어 샘 자리는 저쪽이다."     


  지훈이는 머리를 한 번 긁적이더니 이미영 선생에게로 갔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 듯했으나 내 자리까지는 들리지 않았다. 그때 갑자기 교무실에 울려 퍼지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이미영 선생이었다. 다시 지훈이는 내 자리로 왔다. 나는 왜 국어 선생님이 저렇게 웃었느냐고 묻지 않았다. 또한 지훈이를 집으로 보내면서 낙서를 멈추라든지, 공부에 집중하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내가 한 말은 겨우 "국어 선생님이 네 사과를 받아들이셨나 보다. 그럼 이제 집으로 가거라."였다.
  
  지훈이는 가방을 메고, 신발주머니를 들고 교무실 밖으로 나갔다. 중학교 2학년이라기엔 앳된 몸집이었다. 확실하게 낙서를 멈추고 공부를 하라고 했어야 했을까. 그리고 낙서를 하더라도 여자 나체 같은 것은 그리지 말라고 해야 했을까. 화가 난 국어 선생님에게 사과를 시킨 것 외에 내가 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도 간간히 녀석은 수업 시간에 낙서를 하다가 교과 선생님에게 꾸중을 들었다. 교과 교사들은 이 아이가 자신의 수업을 알아듣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공부하라, 수업에 집중하라'라고 말하지 않았다. 적극적으로 공부를 방해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맨 앞자리에서 녀석은 점점 투명인간이 되어 갔다. 다른 아이들 역시 학기초에 입모양으로 놀리던 것을 멈추었다. 몇 번 집적거리던 1학년 때의 짱이라는 놈도 더는 지훈이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수학 시간이 되면 지훈이는 안절부절 어쩔 줄 몰라했다. 적극적으로 낙서를 할 수도 없고, 수업 내용은 귀에 들어오지 않으니 마음이 불안한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내 편에서 '지훈아, 편안하게 낙서해'라고 하는 것은 또 얼마나 웃긴 일인가. 기껏 내가 생각해낸 것은 교과서에 나오는 가장 쉬운 예제 문제 두 문제를 선정하여 문제를 쓰고, 풀이 과정과 답까지 적으라는 것이었다. 사실 예제 문제는 교과서에 풀이과정과 답까지 다 나와 있으니 그렇게 어려운 주문은 아니었다. "질문이 있으면 해라."라고 말을 보탰다. 도무지 이게 무슨 가르침인지.

  지훈이는 서둘러 예제 문제를 공책에 베꼈다. 거기까지 10분. 그것을 낙서에 대한 허락으로 알았을까. 남은 시간은 낙서로 일관했다. 나는 수학 교과서의 여백이 저렇게 넓은지 지훈이의 낙서를 보고 알았다. 상하좌우 여백을 물론이고 단원이 끝날 때 주어지는  넓은 여백까지 지훈이의 그림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소재도 무척 다양했다. 총, 식물, 동물, 건물 그림이 계속 이어졌다.     


  지훈이는 자기에게 주어진 일상을 잘 소화했다. 적극적으로 수업을 방해하거나 교사들에게 대들 정도의 심성을 가진 아이는 전혀 아니었다. 수업시간이 되면 낙서를 시작했고, 수업을 방해하지 않으니 교과 선생님은 무시했으며, 쉬는 시간에도 조용하게 화장실에 다녀와 자기 자리에서 그림을 그렸다. 점심시간에는 누구보다 맛나게 밥을 먹었다. 남김없이 밥과 반찬을 먹고는 만족한 트림을 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진지하고 성실했는지 녀석이 밥을 다 먹고 숟가락을 놓을 때 지켜보던 내가 '아멘!'이라고 할 정도였다.

  

  '그래 학교에 빠지지 않고 꼬박꼬박 나오지, 최소한 다른 아이들 수업을 방해하지는 않지, 밥 잘 먹지, 뭐가 문제지?'라고 생각하며 나 역시 지훈이의 일상에 익숙해져 갔다. '아무 문제없어. 하루가 멀다 하고 사고를 쳐서 학생부에 끌려가는 애들도 있잖아. 앞으로도 큰 문제없을 거야. 지훈이의 일상이 익숙한 풍경이 될수록 아무 문제없을 거야'라는 내 생각도 주술처럼 반복됐다. 늦봄의 아침 조회시간이었다. 지훈이가 먼저 작은 소리로 말했다.     


  "선생님, 넥타이가 바뀌었네요... 파란 바탕에 하늘색 줄무늬가 보기에 좋아요. 양복 하고도 어울려요"     


  세상에, 파란 바탕에 하늘색 줄무늬라니... 중학교 2학년 남자아이의 표현이었다. 지훈이는 귀가 어두운 대신 눈이 밝았다. 복도를 지나다가 이미영 선생과 마주친 것도 그날이었다. 나는 지훈이가 찾아가 사과하던 날 교무실이 떠나가도록 웃은 일이 궁금해졌다.     


  "샘, 그날 왜 그렇게 웃으셨어요?"     


  내 질문에 이미영 선생은 다시 웃었다. 크고 맑은 웃음소리였다.     


  "아, 진짜... 그 자식이 있잖아요... 글쎄 저한테 와서 죄송하다고 하고는, 전 뭐 그 정도면 그냥 돌려보내려고 했거든요... 근데 이 자식이... 저한테 뭐라 했는지 아세요?"     

  "뭐라고 했어요?"     


  이미영 선생은 거침이 없었다. 곧 그 이유를 말할 태세였으므로 난 귀를 바짝 기울였다. 그 당시엔 별로 궁금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흥미가 바짝 올라왔다.


  "글쎄 그 녀석이... 그날 저에게 왔을 때요. '선생님, 죄송해요.'라고 하길래 '그래 네가 무엇을 잘못했는지는 아니?' 이렇게 물었더니, '네, 다신 안 그럴게요...'라고 아주 예의 바르게 말하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알았다. 이제 가봐라'라고 했죠. 근데 교실로 가려던 그 녀석이 갑자기 뒤를 돌아서 저를 보더니 '근데요. 선생님 되게 이쁘세요.' 이러지 않겠어요? 나참 기가 막혀서... 뭐 기분이 나쁘진 않았지만요. 암튼, 웃기더군요. 예 전 그날 지훈이의 그 말을 듣고 웃음이 터졌어요."


  이미영 선생은 이야기를 전하면서도 계속 웃었다. 매사에 활달한 이미영 선생은 지훈이의 뜬금없는 말이 싫지 않은 것 같았다. 한편으론 야단을 치면서도 관찰을 멈추지 않았다. 그날 나는 대형 마트에 갔다. 문구류 코너에서 8절로 된 파스텔 톤의 도화지를 한 묶음 샀다. 얼추 200장은 돼 보였다. 도화지를 살 때 지훈이 생각을 하긴 했지만 이걸로 도대체 지훈이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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