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학적 사교육비, 과잉 선행학습을 동시에 억제하는 정책을 고민하
교육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하 사걱세, 댓글 링크 기사 참고)은 학교 내신 수학 시험에서 교육과정 범위와 수준을 벗어난 킬러문항 출제 관행을 근절하기 위해 수학 내신 킬러문항 신고센터를 상시 운영한다고 1일 밝혔다. 수학 내신 킬러문항 신고센터에는 중·고등학교 내신 수학 시험에 출제된 문제 중 교육과정을 벗어난 것으로 의심되는 문제를 언제든지 제보할 수 있다.
구체적인 제보 대상은 ▲학교 수업 시간에 배운 것으로는 풀 수 없는 수학 문제 ▲풀이 시간이 지나치게 오래 걸리거나 난도가 높은 수학 문제 ▲학원에서 배운 공식을 쓰지 않으면 풀 수 없는 수학 문제 ▲수학 교과서에서 본 적이 없는 수학 문제 ▲처음 보는 기호나 용어가 포함된 수학 문제 ▲상위 학년이나 뒷 단원의 내용을 알아야 풀 수 있는 수학 문제 등이다.
사걱세 "중간·기말고사 수학 킬러 문항 제보 주세요"…신고센터 운영
https://v.daum.net/v/20250401163644270
사걱세가 신고 센터를 운영하는 것은 공교육정상화법(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 일명 선행학습금지법)에 근거를 두고 있다. 공교육정상화법은 학교장, 교원, 학부모의 의무를 명시하면서 무엇을 선행교육 및 선행학습 유발행위로 볼 것인지 나열하고 있다.(동법 8조) 아래와 같은 내용이다.
① 학교는 국가교육과정 및 시ㆍ도교육과정에 따라 학교교육과정을 편성하여야 하며, 편성된 학교교육과정을 앞서는 교육과정을 운영하여서는 아니 된다. 방과후학교 과정도 또한 같다.
② 제1항 후단에도 불구하고 방과후학교 과정이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 편성된 학교교육과정을 앞서는 교육과정을 운영할 수 있다. <개정 2019. 3. 26., 2020. 10. 20.>
1. 「초ㆍ중등교육법」 제2조에 따른 고등학교에서 「초ㆍ중등교육법」 제24조제4항에 따른 학교의 휴업일 중 편성ㆍ운영되는 경우
2. 「초ㆍ중등교육법」 제2조에 따른 중학교 및 고등학교 중 농산어촌 지역 학교 및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절차 및 방법 등에 따라 지정하는 도시 저소득층 밀집 학교 등에서 운영되는 경우
③ 학교에서는 다음 각 호의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개정 2016. 5. 29.>
1. 지필평가, 수행평가 등 학교 시험에서 학생이 배운 학교교육과정의 범위와 수준을 벗어난 내용을 출제하여 평가하는 행위
2. 각종 교내 대회에서 학생이 배운 학교교육과정의 범위와 수준을 벗어난 내용을 출제하여 평가하는 행위
3. 그 밖에 이에 준하는 것으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행위
④ 「학원의 설립ㆍ운영 및 과외교습에 관한 법률」 제2조에 따른 학원, 교습소 또는 개인과외교습자는 선행학습을 유발하는 광고 또는 선전을 하여서는 아니 된다. <개정 2016. 5. 29.>
위 법이 제정될 때부터 발언을 해 온 편인데, 그 때문에 여러 토론회에서 이 법 내용을 옹호하는 분들과 논쟁을 벌인 적이 있다. 애초 발달 단계를 무시한 선행학습이 학습자의 발달 단계를 무시하고 과도한 사교육비 발생하여 사회 문제가 되는 것은 사실 공교육보다는 사교육 쪽이었다.
그런데 사교육을 통제할 순 없으니 학교의 선행학습을 철저하게 묶고 사교육에 대해서는 '학원, 교습소 또는 개인과외교습자는 선행학습을 유발하는 광고 또는 선전을 하여서는 아니 된다'라고 명시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이 법 제정 이후에 공교육의 선행학습은 막되, 사교육에서는 광고, 홍보만 하지 않는다면 선행학습을 해도 단속할 길이 없게 됐다.
이 법으로는 영유(유아영어학원), 7세고시, 초등 의대반 같은 사교육을 통제할 수 없다. 그러니 교육청에서는 학교 시험이 끝난 후 문제지를 점검하여 교육과정을 벗어난 문제가 있는지 없는 지를 따진다. 벗어난 문제가 있을 경우 공교육정상화법에 따른 문책이 있다.
상위 학년에서 배울 내용을 앞당겨 배우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그러나 과목별로 교육과정을 재구성하다 보면 단원의 학습 내용이 섞이기도 하고 순서가 바뀌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뒷 단원 내용을 앞당겨 배우면 신고 대상이 된다. 이 법의 적용 대상과, 조항의 경직성 때문이다.
학습자에게 과도한 선행학습을 부과하는 것은, 학습효과 면에서도 큰 실익이 없으며 그 정도가 심한 경우 그 자체로 아동학대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선행학습의 통제방법을 법률로 규제한다고 할 때 그 대상을 학교(공교육)으로 국한해야 할까. 결국 이 법은 학부모들에게 공부를 더 하기 위해 사교육을 찾아야 한다는 악순환을 반복하게 할 우려가 있다.
그렇지 않아도 얼마 전에 사교육비 총액이 30조에 육박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공교육을 강화하여 사교육 수요를 억제한다는 발상은 그럴 듯 하지만 사교육에 의존하는 구체적인 동기가 있기 때문에 선행학습이 불가한 학교 대신 학원을 선택하게 되는 것 아닌가. 모든 사교육을 일거에 통제하자는 발언으로 오해하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여전히 특기적성 및 보습 성격의 사교육은 보호자와 학생의 선택 사항이라고 보는 입장이다. 이른바 공교육정상화법에서 제시하는 방법으로는 과잉 선행학습의 근본적 원인에 접근하기 힘들다. 천문학적 사교육비, 과잉 선행학습, 학생들의 사회정서 발달 측면(교육희망 칼럼 '안전 지상주의와 놀이의 복원' 참조)을 두루 고려하는 정책 대응이 필요하다.
안전 지상주의와 놀이의 복원
https://news.eduhope.net/26843
*커버 이미지 https://www.donga.com/news/Society/article/all/20160215/76442478/1
일러스트레이션 동아일보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