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작 서로 힘들게나 하라고 만났겠어?
"자기가 생각하는 친구가 어떤 건데? 난 헤어진 사람과 친구를 해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어."
- 나도 없어. 헤어지면 다 차단했으니까. 선이라... 연락은 하고 싶으면 편하게 해. 호칭은 그대로 자기라 불러도 괜찮아. 자기가 보고 싶은 건 아니지만 고양이들은 보고 싶으니까 괜찮다면 가끔 가도 될까? 스킨십은 저번 정도면? 그래도 조심해 줬으면 좋겠어. 아니다 싶으면 알아서 컷 할게.
그게 뭐야. 우린 그때도 입을 맞추고 이마를 맞대고 끌어안고 잠들었는데. 아닌 말로 볼 꼴 못 볼 꼴 다 본 사이에 친구라는 게 가능해? 되묻고 싶었지만 사람은 너무 상궤를 넘는 이야길 들으면 말문이 막히기 마련이었다.
- 잘 지냈으면 좋겠어. 그런데 고통스러웠으면 좋겠어. 그게 하루든 1년이든, 내가 힘들었던 만큼. 나에겐 이렇게 연락해도 되지만 다음 사람에겐 그러지 마.
"내가 원하는 건 자기뿐이었어. 남자사람 친구를 원한 것도 아니고."
- 난 친구도 없는걸.
"연인에게 말 못 할 일도 말할 수 있는 게 친구 아닐까?"
- 그럼 자기가 내 첫 번째 친구네.
유는 살포시 웃었다. 나는 그 웃음이 서글프게 느껴졌다. 우리가 만나는 동안 그에게 나란 존재는 연인이자 친구였고 멘토였으며 세상에 발 디딜 수 있게 하는 한 뼘의 땅이었고 서로 보살펴야 하는 사람이었다. 우리는 둘만의 좁은 세상에서 가장 작고도 긴밀한 모든 것이었다.
"행복했으면 좋겠어. 여전히 그래."
- 나는 행복을 바라지 않아. 모두가 행복을 추구하지만 나는 일을 하고 살아갈 수 있으면 그거면 돼. 남들이 보기엔 잘 지내는 것 같지 않을 수도 있지만 나 나름은 잘 지내고 있어.
그에게서 일이 목표나 모든 것이 아닌 수단이나 과정이길 바랐다. 유가 필사적으로 치열하게 살아온 모든 삶의 궤적을 사랑했다. 결함이나 공백도 규칙성을 이루면 무늬가 된다. 그가 자아낸 태피스트리는 성긴 그 모습 그대로도 나에겐 충분히 아름다웠다.
하지만 나는 무력했다. 유는 나로 인해 힘들었다고, 상처받았다고 말했다. 타인이라면 기분 나쁘거나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말 모든 것이 사랑하는 사람이라 촘촘히 상처가 되고 만다. 사랑의 역설이다.
나와 유는 그렇게 친구도 연인도 아닌 알 수 없는 관계를 시작하게 되었다. 1~3주에 한번가량 집으로 찾아와 얼굴을 보고 함께 밥을 먹고 고양이들을 쓰다듬다 같이 잠들었다. 눈앞에 있고 손에 닿지만 더 이상 나의 연인은 아니었다. 어떤 날은 그것이 나를 무너트렸고 또 다른 날을 안도케 했다. 온전히 혼자가 되어 이별을 견디는 날들보다 치밀어 오르는 많은 감정이 있었다. 유의 말 하나, 행동 하나에 끝에서 끝까지 롤러코스터를 타곤 했다.
유도 어떤 날은 이 관계가 말이 안 된다며 화를 내다 차갑게 굴기도 하고 또 어느 날은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거나 말없이 내게 와 안겼다. 차라리 성적인 에피소드였다면 비극이긴 해도 흔한 클리셰였겠지만 그조차 아니었다. 내가 차려주는 밥을 먹고 같은 샴푸를 쓰고 내 옆에서 잠을 자고 돌아가선 일이 끝나고 1시간 넘게 통화를 하며 지내다가도 2-3주씩 연락이 되지 않는 사람.
엄마와 친구들은 이 기묘한 사이를 이해할 수 없다 했다. 너에게 밥 얻어먹으려고 오는 거냐는 말도 들었다. 나라도 그럴 것 같았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다면 절대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건 유도 마찬가지 일 테고.
나는 이 말도 안 되는 관계에서 기이한 감각을 느꼈다. 우리가 서로 연인일 때도 느끼지 못했던 느낌을 받았다. 정말 이상한 이야기지만 우리가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이었다. 연애 초기에 가족들과 술을 먹고 전화가 온 유가 내게 너는 나야 라는 말을 했을 때 오글거린다고 생각했었는데 시간이 지나서 우리가 이별한 후에 그 말이 다시 떠오르게 될 줄은 몰랐다.
그때 알 게 된 것이 트윈플레임이라는 개념이었다. 세상에는 하나의 영혼에서 분화되어 두 사람으로 태어나는 사람들이 있고 이를 쌍둥이 불꽃이라고 부르며 이 관계는 조건이 없는 궁극의 사랑을 알려주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이에 관해 한동안 꽤 많은 글을 읽었고 깊은 생각을 했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인류가 크기를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우주 안에서 작디작은 창백한 푸른 별인 지구, 그 안에서도 인간으로 태어난 자들에게만 내려진 의무이자 권리라니. 너무 인간우월주의적 사고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나는 이 개념을 수용하기로 했다.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이 조건이 없는 사랑이었기 때문이다.
이어져 있는 두 사람은 어느 한쪽이 영성적 성취를 이루면 거울처럼 반사되어 같이 성장하게 된다는 대목에서 나는 내가 달라지기로 했다. 내가 앞서 나가면 그도 더 나은 삶으로 갈 수 있다는 게. 트윈플레임은 이 팍팍한 인류의 삶 속에서 영혼의 성장을 일깨우는 이야기이며 괴로움이 단순히 고통으로만 머무르지 않고 불교의 고행이나 시련처럼 극복할 수 있는 무언가라고 말해주는 듯했다.
물론 유와 나의 관계가 트윈 플레임이 아닐 수도 있다. 사랑에 빠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서로가 운명이길 바라듯 나만의 바람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이 관계가 이전의 카르마를 풀기 위한 것이고 우리가 각자 해결해야 하는 업이 아주 많아서 아직 함께 있는 것이라고 해도 나는 기꺼이 받아들이기로 했다. 내가 잘 살아가는 것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는 게 된다니. 이 얼마나 로맨틱한 일일까.
나는 언젠가 유에게 말했다. 너라는 존재 하나만으로 무언가를 하거나 증명하지 않아도 모든 것을 긍정받는 경험을 받아들여봐. 물론 내가 하는 일이라 완벽하진 않을 거야. 하지만 살면서 그런 기회는 흔치 않을 거라 생각해. 이것이 내가 너와 하고 싶은 거였어.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고 상황과 환경에 쉬이 휩쓸리기에 나 역시 그때의 다짐이나 마음가짐을 온전히 지키고 있진 않다. 다만 이렇게 그때의 나를 리마인드 하며 흐리고 닳아버린 내 사랑을 한번 더 추스른다. 잠든 유의 머리칼을 쓸어보며 조금씩 나이가 들어가는 그를 또렷하게 바라본다.
우리의 만남은 단 한순간도 완전한 평화와 풍요는 없었지만 고작 서로를 비탄에 빠트리고 괴로움 속에 살게 하기 위해 만난 것은 아닐 거라고. 너는 나고, 나는 너이기에 나는 오늘도 나를 사랑하기로 했다. 너를 더 많이 사랑해 주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