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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성은 Jan 02. 2019

친구여, 그 답은 바람만이 안다네

밥 딜런의 <You ain't goin' nowhere>를 들으며

미숙한 귀의 고백


  이십 대 때 나의 음악적 취향은 편식이 심한 어린아이의 입맛처럼 형편없었다. 한 소절만 듣고도 아기 코끼리 점보처럼 귀를 닫아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판소리와 아리아와 인도 음악은 사람을 고문하기 위해 만들어진 음악이라 생각되기도 했다. 그 시절의 나에게는 재즈도 처음 맛본 해산물처럼 흐물흐물하면서 징그럽게 느껴졌다. 록과 힙합에 열광했던 탓인지도 모르겠다. 멸치볶음과 김치 사이에 놓인 카스텔라라고 하면 좋을까, 공깃밥 위에 올라간 아이스크림 한 스쿱(scoop)이라 하면 좋을까. 어쨌거나 빽빽대던 트럼펫 사이로 흘러나오는 잔잔한 피아노 연주는 ‘재즈(Jazz)’라는 발음만큼이나 낮고, 뭉툭하고, 지루했다. 느끼한 음표들이 내 귀에 노크할 때마다 나는 조용히 답하곤 했다. 뭐 그래도 밥 딜런 보다야. 이 무식하고 미숙한 취향이 부끄럽기도 하지만 실제로 그랬다. 나는 밥 딜런이야 말로 미화된 가수라고 여기고 있었다. 영어 가사를 곧장 알아먹을 수 없기도 했지만 딱히 흥미를 돋우는 내용은 아닌 것 같았다. 멜로디도 단조로워 지겹기까지 했다. 나는 몇 곡을 채 듣지도 못하고 입맛에 맞는 다른 가수들을 찾아다녔다. 밥 딜런은 20세기에서나 통용되는 가수라는 것이 나의 결론이었다. 적어도 내가 살던 시대에서 그는 구식처럼 느껴졌다.


음악과 문학 사이


  그런 그가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난데없는 소식이라 생각했다. 노벨음악상이 있다면 모를까, 노벨문학상이라니. 한림원이 드디어 문학의 종언을 선언한 걸까. 그는 자신의 노래가 문학이 될 수 있는지 스스로 고민했던 적이 있다고 밝혔다. 스웨덴의 한림원이 그를 대신해서 답을 내렸다. 밥 딜런의 음악은 장르를 허물고 경계를 넘어선 순수한 문학이라는 것이다. 그로 인해 모든 문학은 음악이 될 가능성을 가지게 되었다. 나는 그가 혁명을 일으킨 영웅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밥 딜런은 여전히 펜 한 자루와 기타 한 대로 세상을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밥 딜런은 스스로를 저항 가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여겼다. 하지만 다른 의미로 그는 저항 가수가 분명했다. 그것은 자크 랑시에르가 말하는 ‘문학의 정치’와 닮아있다. 그의 노래는 체제에 대한 전복이나 부조리한 사회를 향한 목소리이기도 했지만 실존에 대한 개인의 투쟁에 더 가까웠다. 포크음악의 신도들 앞에서 당당하게 일렉기타를 선택한 용기, 종교인으로서의 삶, 머나먼 항해를 마치고 돌아온 오디세이아 같은 귀환. 그의 삶은 헝클어진 머리카락만큼이나 복잡하고 험난했다. 그래서일까. 그의 가사는 심해에서 끌어올린 낯선 생명체 같은 힘이 있었다. 그의 언어는 멜로디에 쩍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누구도 그의 노래에 다른 가사를 붙여 부르지는 못할 것이었다.


  내가 가진 1977년 한국용 보급판 LP <Bob Dylan> 속 그는 히피처럼 두건을 두르고 생각에 잠겨 눈을 감고 있었다. 다른 사진 속 그는 십자가 아래에서 나무 지팡이를 들고 먼 곳을 응시하기도 했다. 로버트 앨런 짐머맨이라는 사내, 딜런 토마스(시인)를 존경하여 밥 딜런이라 불리길 원했던 그, 길 위의 남자(Man on the street), 뒤죽박죽 머리(Mixed up confusion), 제3차 세계대전을 블루스(Talkin' world war Ⅲ Blues)화 하던 그, 불어오는 바람 속에서(Blowin'in the wind) 바람만이 아는 대답을 묻고 있던 밥 딜런이 처음으로 내 귀를 두드리던 참이었다.


You ain't goin' nowhere


  밥 딜런의 가사를 꼼꼼히 읽고 노래를 듣자 여태껏 가졌던 감정과는 다른 새로운 경험이 펼쳐졌다. 아니다, 새로운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진 오래 전의 기억들이었다. 처음으로 기타를 잡았던 날, 처음으로 영화를 보았던 날, 시를 읽고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던 날, 처음으로 사랑에 아파했던 나날의 기억들. 우이-우이! 칼립소 풍의 스트로크, 무심하면서도 힘 있는 목소리, 반복되는 리드미컬한 후렴, 정확하게 흘러들어오는 하모니카의 멜로디. 그는 노래한다. ‘우우-이이! 기분이 날아갈 듯 좋잖아. 내일이 바로 그날이야. 나의 신부가 오는 날. 오, 오, 우리 멀리 날아가 볼래? 저 안락의자에 앉아서 말이야!’(You ain't goin' nowhere) 


  나는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마르크 샤갈의 <결혼>이 떠올랐다. 바이올린을 켜는 염소와 피리를 부는 사내, 팔이 달린 물고기와 밤이 내린 마을. 한 남자가 꽃을 든 신부를 이끌고 하늘을 날고 있었다. 그의 얼굴이 이상하게도 밥 딜런과 닮아 보였다. 무대 위의 밥 딜런은 단정한 셔츠를 입고 더벅머리에 검은 선글라스를 낀 채로 통기타를 타고 날아다녔다. 젊고 따뜻한 기운이 그를 감싸고 있었다. 비틀즈에게, 로이 로빈슨에게, 에릭 클랩튼에게서 느꼈던 기운과는 또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밥 딜런 씨, 문학이란 무엇이며 음악이란 무엇입니까. 그는 대답을 유보하지만 결코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말하겠지. 친구여, 그 답은 바람만이 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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