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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소연 Jun 25. 2023

히스테리의 역사

수술 후 2주가 경과한 후에 다시 병원에 방문했다. 수술장에서 장비로 촬영된 나의 난소 사진은 축축하게 녹아내린 화이트 초코볼 같았다. 그렇게 해서 나는 내 자궁과 난소의 “실존”을 눈으로 보게 되었다. 히스테리의 어원이 된 자궁(Hystera)은 나에게 처음으로 자신의 실체를 증명하려는 듯이 내 앞에 나타났다. 내 어머니도 자궁 근종으로 수술을 받았던 그 신체 기관. 임신과 출산을 하지 않으면 암 덩어리처럼 몸속을 돌아다니며 ‘히스테리’를 유발한다고 간주되던 그 장기.   

   

자궁 이동과 히스테리를 다룬 가장 오래된 문서는 기원전 1900년경에 작성된 『카훈 파피루스(Kahun papyrus)』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는 “떨어지는 자궁, 생리통, 돌아다니는 자궁” 등의 항목이 있는데, 자궁의 이동이 여성에게 다양한 증세를 일으킨다고 쓰여 있다. “스스로의 욕망에 따라 움직이는 자궁은 간에 가서 부딪치고, 위장을 때리고, 췌장을 짓눌러서 통증을 유발하고, 폐를 압박해서 호흡곤란을 가져온다.”

- [네이버 지식백과] 히스테리의 역사 1 - 히스테리, 자궁이 돌아다니는 병 (뜻밖의 세계사, 김지혜)  


의사는 나에게 자궁내막증이 생기는 경로 그리고 에스트로겐을 차단하여 폐경을 인위적으로 유도하는 호르몬 치료가 필요하다는 얘기를 했다. 작년 6월에 단 한 번 심각한 통증이 찾아온 걸 제외하고는 통증이나 생리불순도 없었고 일상생활에 아무 불편이 없었기에, 호르몬 치료로 인한 부작용을 나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호르몬 치료를 원하지 않는다고 의사에게 강하게 얘기했다. 의사는 차분하고 담담한 태도로 당분간 호르몬 치료는 하지 말고 주기적으로 관찰하면서 지켜보자고 했다.

그 후 한 번 칼을 댄 내 아랫배 속에 위치한 자궁과 난소는 작은 스트레스에도 자신의 존재를 나타내기 시작했다. 싸하고 미세하게 밀려오는 그 통증. 임신도 출산도 하지 않는 자궁은 나에게 ‘이제 나는 아무 쓸모없는 것이냐’고 묻는다. 그것은 마치 자궁 근종 수술 후 병실에 누워 있던 어머니의 모습과 같았다. 그녀의 몸은 내게 이렇게 묻고 있었다. ‘이렇게 늙은 내 몸은 이제 아무 쓸모없는 것이냐.’

시간 순서상 어머니가 자궁 근종 수술을 받고 6개월가량이 흐른 시점에 그와의 결별 후 자살하였다는 관계가 성립된다. 그렇지만 나는 그 구체적인 행방과 맥락을 논리적으로 규명할 수 없다. 다만 내가 그녀에게서 보았던 것을 단서로 삼아 끊임없이 묻고 또 묻는 수밖에 없다.

내 어머니의 정신질환은 무엇이라 명명해야 할까? 나는 그녀의 증상과 관련된 자료들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4~5년간의 행동은 정신분석학에서 설명하는 ‘히스테리’의 일부 특징을 보였다.      


히스테리성 성격 장애:

정신병 또는 이상 성격의 한 형태이다. 자기중심적이고, 항상 다른 사람에게 주목받기를 원하고, 극적으로 과장된 감정 표현을 하며, 감정 기복이 심한 성격을 가리킨다.

- 이동귀 지음, 『너 이런 심리법칙 알아?』, 21세기북스, 2016      


외향적인 성격의 어머니. 친구가 많았던 어머니. 사람들에게 다정다감했던 어머니.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 지나치게 민감했던 어머니. 폭음을 하며 나락으로 떨어졌던 어머니. 지속적인 불면증. 수면제 복용. 산에 올라가서 밤이 될 때까지 술을 마시고 내게 전화했던 어머니. 술을 마시면 밤새도록 울었던 어머니.       


히스테리는 그 원인이 자궁에서, 머리(뇌)와 신경체계로, 그리고 마음(정신)으로 변화해 갔지만 결국 1952년 정확한 발병 소인이 규명될 수 없다고 판정되어 『질병 표준 용어집(Standard Nomenclature of Disease)』에서 삭제되면서 질병으로서의 지위를 상실했다. 현재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서 히스테리는 “광범위하고 다양한 감각 및 운동장애, 마음의 동요를 일으키는 정신장애의 일종”으로, 『정신질환 진단 매뉴얼(Mental Disorders Diagnostic manual)』에는 “분리성 장애”로 정의되어 있다.

- [네이버 지식백과] 히스테리의 역사 1 - 히스테리, 자궁이 돌아다니는 병 (뜻밖의 세계사, 김지혜)     


오늘날의 정신의학에서는 히스테리란 용어를 단독으로 사용하지 않고 있고, 히스테리성 인격 장애와 같이 용어의 일부로 차용돼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어머니가 사망하기 전 1개월간의 모습은 히스테리를 넘어선 그 무엇이었고, 더욱이 자궁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것이었다. 나 역시 어머니의 히스테리와 자궁 질환이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을 품었지만, 그것은 오래된 자궁 수난의 역사에서 기인한 편견에 불과했다. 아이 셋을 낳은 어머니의 자궁은 아무 잘못이 없다. 자신의 욕망에 따라 사내와 몸을 섞은 것은 어머니의 의지였지, 자궁의 잘못이 아니다. 다만 자궁은 기억의 창고처럼 삶의 투쟁의 결과를 보여줄 뿐이다.

여성의 자궁은 히스테리를 유발하거나, 성욕에 목말라 있는 기이한 신체 기관이 아니다. 중세 신화와 기독교에서 말하듯 악마와 몸을 섞는 육욕의 화신이 기거하는 기관도 아니다. 자궁은 몸속에서 방랑하지 않는다. 다만 정직히 우리 삶의 흔적을 보여줄 뿐이다. 방랑하는 것은 우리의 정신이다.

나는 다른 단계로 나아갈 필요를 느꼈다. 어머니가 애인과 헤어진 이후 히스테리성 신경증의 수준을 넘어서 심각한 피해망상을 보이기 시작한 그 1개월간의 행적에서 그녀의 증상과 조현병이 겹치는 지점이 있는지 찾아봐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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