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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소연 Jun 26. 2023

‘말할 수 없음’에 대하여 쓰기

조현(調絃)이란 사전적인 의미로 현악기의 줄을 고르다는 뜻으로, 조현병 환자의 모습이 마치 현악기가 정상적으로 조율되지 못했을 때의 모습처럼 혼란스러운 상태를 보이는 것과 같다는 데서 비롯되었다.

- 서울대학교병원 의학정보 http://www.snuh.org/


어머니의 정신 ‘줄’이 끊어졌을 때 보였던 망상, 과잉 행동, 비논리적인 언어들, 성에 대한 집착들은 현이 어긋난 악기처럼 비속한 소리를 내며 제 기능을 상실하고 혼란을 야기했다. 나는 정신과 전문의도 심리학자도 아니기에 그녀의 질환을 규명하려는 이러한 시도가 얼마나 위험하고 무모하고 쓸모없는 짓인지 알고 있다. 나는 그녀를 ‘진단’ 내리려는 게 아니라 ‘이해’하려고 하는 것이다. 내가 동원할 수 있는 세상의 모든 언어들을 동원하여 질서 정연한 언어의 포획망 안에 그녀의 작은 조각들을 수거하여 형상을 복원하려는 것이다. 그러면 그럴수록 혼란과 무질서함은 더욱 커져 나는 더욱 깊은 미궁에 빠져들기 일쑤였다.

나는 서울대학교병원 의학정보 사이트에서 제공한 조현병의 진단 기준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1) 망상
(2) 환각
(3) 와해된 언어 (예: 빈번한 탈선 또는 지리멸렬)
(4) 심하게 와해된 행동이나 긴장증적 행동
(5) 음성증상, 즉 정서적 둔마, 무논리증 또는 무의욕증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편람 제5판(DSM-5)』)     
- 서울대학교병원 의학정보 http://www.snuh.org/


위 기준을 특징적 증상으로 보고, 이 중 최소 두 가지를 포함하되, 1개월간 증상이 지속되어야 할 것, 발병 이후 사회적, 직업적 다른 중요한 영역에서 기능이 저하될 것이라는 기준이 제시되어 있다. 어머니는 망상, 와해된 언어, 와해된 행동 세 가지가 해당됐고, 모든 대인 관계에 있어서 정상적인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상태에 이르러 사회적 기능 또한 상실한 상태였다. 그러나 부가 설명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위의 특징적 증상만으로는 확정할 수는 없으며, 이 기간을 포함한 장애의 징후가 6개월 이상 지속되어야 한다는 내용이 제시되어 있다.

이렇게 해서 나는 또다시 미끄러지고 말았다. 어머니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명확하게 규명할 수 없었다. 끊어진 현, 부서진 악기, 제 소리를 내지 못하는 음音처럼 와해된 언어와 행동, 탈선… 이런 언어들에 기대어서 나는 또다시 어머니에게 왜 이러한 일이 일어났는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조현병의 원인은 뇌 질환과 관련된 생리적 원인, 유전적 원인, 충격 및 스트레스 등 환경적 요인, 성장 환경 등 복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하지만,  중에서 단 하나의 결정적인 단서는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어머니를 어둠 속에 그대로 내버려 두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빠지게 되었다. 어머니는 그대로 밤의 침묵 속에 잠겨 있어야만 했다. 그 무력함이 나를 압도하는 밤이면, 나는 그 ‘말할 수 없음’에 대하여 ‘쓰기’로써 엄혹한 침묵의 시간을 건너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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