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후배가 운영하는 요가센터에서 두 시간의 요가와 이십 분간의 명상을 했다. 스무 명 남짓한 사람들 속에서 나는 어떤 파동을 느꼈는데, 그것은 살아 있는 사람의 호흡에서 나오는 고유한 ‘파동들’이었다. 재활 요가를 주된 목표로 하고 있는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의 질병과 아픔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서로에 대해 잘 알지 못하지만, 각자 자기 치유에 대한 의지를 지니고 모인 사람들이었다. 사람이 어떤 순수한 의지를 지니게 될 때 그 호흡이 자아내는 에너지의 파동이 나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리고 내 호흡의 파동 역시 타인에게 어떤 식으로 전달되리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깊이 호흡을 들이마시고 오랫동안 내쉬는 일은 중요하다. 호흡하는 일은 우리 몸에 에너지를 생성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호흡이 불규칙할수록 몸속에 쌓인 이산화탄소는 원활하게 배출되지 않는다. 우리 몸 전체가 호흡통이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우리는 폐로만 호흡하는 것이 아니라 몸 전체로 호흡하기 때문이다. 잘 호흡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잘 ‘우는 일’이다. 내 몸이 거대한 울음통이 되는 것이다. 몸 전체가 거대한 울음통인 수컷 매미처럼 울음을 토해내면서 내가 여기에 있음을 인식하고, 제 존재를 알리는 것이다. 그것은 구애의 울음이지만, 우리가 우는 이유는 어쩌면 삶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울음을 통해 몸과 마음을 정화하고 계속해서 삶을 향해 구애하는 일. 또한 울지 못하는 암컷 매미는 이 땅의 울지 못하는 어머니들을 닮았다. 암컷 매미는 어두운 땅속에서 긴 시간을 보내고 세상에 나오자마자 교미 후 나뭇가지 속에 알을 낳고 생을 마감한다. 그렇게 태어난 알 속의 매미는 제 어미를 기억할까. 땅에는 죽은 것들의 잔해가 묻혀 있다. 그 죽은 것들이 그리워서 애벌레는 땅속으로 들어가는 것일까. 그 어둠 속에서 추위를 견디며 살아 있는 것들은 생명을 이어간다. 한여름의 작열하는 태양을, 생의 눈부신 환희를 그리워하면서.
오늘 하루에도 봄, 여름, 가을, 겨울 순환하는 계절이 있다. 자연의 리듬으로 매 순간 살아내며 자연의 리듬으로 하루를 살아내는 것. 그리고 나를 충분히 돌보고 계절의 냄새를 맡고 타인의 안부를 살피는 일.
나는 이 방황하는 섬을 타고
바다의 폭동과
산의 폭발을 무사히 넘기며 항해해 왔다.
조각조각 부서진 것은 그 하나로 합쳐진 존재의 비밀이었다.
그 가장 비천한 조각들로부터
태양이 탄생했다.
- 포루그 파로흐자드,「추운 계절의 시작을 믿어 보자」,『바람이 우리를 데려다주리라』, 문학세계, 164~165쪽
일상이 비루하고 남루할지언정 그것을 살아낸 내 일상을 함부로 폄하하지 않는 일, 그 일상의 비천한 조각들이 모여 현재를 통과한 나는 다른 존재가 되어 간다. 아침의 나는 오후와 저녁의 나를 통과해 밤의 내가 되고 밤새 거친 땅을 떠돌던 영혼은 다른 존재로 태어나 아침의 빛을 맞이한다. 자신만의 고유한 리듬은 파동이 되고 에너지가 된다. 그리고 이 세계와 에너지를 교환한다. 그럼으로써 내가 이 세계와 우주의 일부라는 사실에 깊이 감사하게 된다.
믿어 보자
추운 계절의 시작을
상상 속 정원의 파멸을
게으르게 엎어져 있는 낫들과
감옥에 갇혀 있는 씨앗들을
보라, 얼마나 많은 눈이 내리는지
- 같은 책, 174쪽
우리는 현재라는 씨앗 속에서 다시 태어날 수 있다. 나의 씨앗이 진흙이나 진창 속에 있거나, 길거리의 오물 속에 갇혀 있어도 내가 씨앗을 품은 존재임을. 계절은 아직 추운 2월이지만, 봄이 머지 않았으니까. 순환하는 계절이 돌아오듯 자신의 존재가 돌아올 것을 믿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