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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성이 Sep 05. 2022

아버지 텐트 걷다 바지 적삼 다 적시셨네

저의 온갖 감언이설과 유혹으로 캠핑을 시작하게 된 친구와 캠핑을 다녀온 지 2주 후... 우리는 또다시 함께 캠핑을 가게 되었습니다. 지난번에는 땀을 부르는 몸으로 바지 적삼을 적셨던 친구는 이번에는 어떤 사건으로 바지 적삼을 축축하게 적셨을까요.


https://brunch.co.kr/@emf241/33


지난 첫 캠핑에서 처음 산 새 텐트를 치며 온 몸을 땀으로 적셨던 친구 가족과 2주 만에 함께 캠핑을 떠났습니다. 특히 이번 캠핑은 태풍이 다가온다는 소식도 있어 친구와 저는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다 1박 2일이라는 짧은 기간이고 캠핑 당일은 비 소식도 없고 다음날 비가 조금 내린다는 예보를 보고 취소하는 것은 좀 아깝다는 생각도 들어 저희는 캠핑을 강행하기로 했습니다.


지난 캠핑에서 처음 산 텐트를 설치하다 땀으로 범벅이 되며 바지 적삼을 적신 친구는 이번에는 유튜브, 인터넷 등 다양한 스승의 가르침을 받았기에 땀으로 바지를 적시는 사태는 발생하지 않을 거라 호언장담했습니다. 


지난번 설치해봐서 그런지 확실히 지난번과는 달랐습니다. 그리고 지난번에는 혼자 뚝심 있게 거실형 텐트를 쳤지만, 이번에는 앞으로 든든한 캠핑 파트너가 될 와이프의 도움을 받아 그런지 더 빠른 시간에 땀도 절반의 양만 흘리며 텐트 설치와 1박 2일간의 보금자리를 꾸미는 것을 완성해냈습니다.


하지만 도움의 손길이 있었어도 친구의 상의는 이미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고, 눈가에는 눈물인지 땀인지 모를 액체가 계속 흘러내리고 있었지만 지난번처럼 마치 쉬를 한 것 같이 바지가 축축이 젖어 있지는 않았습니다. 


벌써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렸는지 아니면 곧 다가올 태풍의 영향인지 날씨는 선선했습니다. 아이들이 방방장에서 몇 시간을 신나게 뛰어놀고 왔지만 이마에 조금 땀이 흐른 정도였습니다. 저희도 계곡의 물소리와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아이들이 노는 것을 바라보며 맥주 한 캔씩을 마시며 오직! 오직! 캠핑 이야기만을 나눴습니다. 


저도 처음 캠핑에 푹 빠졌을 때 앉으나 서나 캠핑 생각, 자기 전에도, 화장실에서도 캠핑 생각뿐이었는데, 친구도 이미 캠핑이 뇌를 지배하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텐트, 테이블, 의자, 버너, 랜턴 등 최소한의 장비만으로 캠핑을 하겠다는 친구가 한 번의 캠핑을 다녀오더니 선반, 스토브, 코펠 세트뿐만 아니라 이너텐트를 장식할 우주인 모형 조명까지 장만했습니다. 


쉬지 않고 앞으로 장만할 캠핑 장비 이야기를 하는 친구를 보니 "그래 이렇게 캠핑에 미쳐가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희의 이번 캠핑의 목표는 바로 "잘 먹고 가자"였습니다. 다양한 고기를 먹고, 아이들을 위해 까르보나라 떡볶이도 만들어줬습니다. 어른도 아이도 입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어느덧 첫날을 마무리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하늘을 바라보니 태풍이 오긴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날씨가 좋았습니다. 캠핑을 다니면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던 별똥별을 아들과 함께 2개나 봤더니 기분이 좋아집니다. 


그렇게 저희는 아이들과 별구경, 밤 산책 등을 마치고 각자의 텐트에서 잠이 들었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아들이 제 얼굴에 발을 올려놓고 자고 있는 새벽녘에 텐트 천장에서 비가 떨어지는 특유의 소리가 나기 시작합니다. 제발 틀리기만 바랬던 일기예보가 하필 오늘은 정확하게 약속을 지키네요. 


첫 캠핑부터 우중 캠핑을 경험했던, 그리고 다양한 우중 캠핑의 경험이 있는 저는 단순히 '비가 내리는구나' 라는 생각으로 침낭을 걷어 차고 발을 제 얼굴을 향해 자고 있는 아들을 제대로 눕히고 침낭을 덮어주고 있는데, 친구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그리고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비 온다! 비와! 어떻게 해? 철수해야 해? 어떻게 하지?"


캠핑에서 나름 저는 산전수전 육박전 망쳐버린 감자전까지 경험해본 나름 베테랑이라 자부하는 마음으로 친구에게 차분하게 말했습니다.


"그냥 자. 지금 이 시간에 애들도 있는데 비 맞고 철수하기도 그렇고 이따 아침에 비 맞더라도 그때 정리하면 괜찮아." 


"그래도 지금 비가 내리는데 텐트가 괜찮을까? 비 때문에 텐트가 무너져 내리는 거 아니야?"


"지금 이 정도 내리는 비로는 무너져 내리지 않아. 정 그렇게 걱정되면 나가서 텐트 지붕에 물 고인 거 있나 확인해보던지." 


잠시 후 친구가 텐트 밖으로 나와 텐트 주변을 서성이는 소리와 텐트를 툭툭 치며 물을 털어내는 소리가 들립니다. 하긴 저도 생각해보니 첫 캠핑 때 갑자기 내린 소나기와 강풍에 타프에 뺨을 맞은 가슴 아픈 기억도 떠오르네요. 그래도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다릅니다. 제가 첫 캠핑 때 내린 비가 강력 분사기로 쏘는 정도였다면, 지금 내리는 비는 집에 있는 화분에 물 조리개로 뿌리는 정도였습니다.


아침이 되면 정리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잠이 들었고, 8시가 되자 어떠한 알람시계보다 정확한 배고픈 아들이 깨우는 소리에 일어났고, 제가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났을 때 새벽부터 내린 비는 잠시 소강상태를 맞은 듯 내리지 않고 있었습니다. 


저희는 부랴부랴 배고픈 아이들이 먹을 아침을 준비했고, 새벽에 내린 비 덕분인지 날씨는 선선했지만 도시에서는 결코 맛볼 수 없는 신선한 공기를 맛봤습니다. 제가 이런 상쾌한 아침을 즐기고 있을 때 친구는 곧 다가올 정리의 시간을 앞두고 안절부절못하고 있었습니다. 


"텐트가 다 젖었는데 어떻게 정리하지?"


"텐트 안에 있던 젖지 않은 장비들부터 정리하고, 텐트는 나중에 내가 준비하라고 했던 김장 비닐봉지에 일단 넣은 다음에 나중에 날씨 좋을 때 말리면 돼. 정리할 때 비 내리면 비 좀 맞으면서 하는거고 여유 있게 하자고."


"으윽. 2번 밖에 안친 건데 벌써 비를 맞다니..."


거의 새것이나 다름없는 텐트가 비에 흠뻑 젖은 모습을 보며 가슴 아파하는 친구에게 "텐트는 소모품일 뿐이다."라며 달랬지만, 이미 젖은 텐트처럼 친구의 마음은 '내 소중한 텐트가 빗물에 젖다니' 하는 아쉬운 탄식으로 젖어가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1박 2일 캠핑 일정을 마무리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비가 내리지 않는 처마 밑에서 사람을 따르는 고양이와 놀고 있었고 처음 도착했을 때처럼 이제 아빠들이 힘을 쓸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다시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빠르게 젖지 않은 장비들과 비를 맞으면 안 되는 장비부터 빠르게 차에 실기 시작했고, 이제 덩그러니 텐트만 남았습니다. 제가 아무 미련 없이 빠르게 텐트에서 폴대를 꺼내 텐트 스킨만 김장 봉투에 집어넣었을 때도 친구는 텐트 주변을 서성이며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팩을 뽑고 폴대를 빼고 있었습니다. 


제가 도와주겠다고 해도 혼자 해야 경험이 된다며 거절하던 친구는 터널형 텐트를 감싸고 있는 긴 플라이를 걷다가 물벼락을 맞기도 했고, 갑자기 내린 비로 물이 고인 쪽을 무리해서 내리다 물벼락을 안면으로 맞이 하기도 했습니다. 끝까지 제 도움을 거절하던 친구는 김장비닐에 텐트 스킨을 쑤셔 넣으면 될 것을 엉거주춤한 자세로 텐트를 소중히 접다가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주저앉게 되었고, 결국 이번 캠핑에서는 절대 바지 적삼을 적시지 않겠다고 했지만 엉덩이 탐정에서 브라운이 갑자기 나타나 시청자를 향해 던지는 퀴즈처럼 나오는 엉덩이 모양으로 앙증맞게 바지가 젖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1박 2일간 가족의 행복을 위해 온 몸을 불사른 아버지는 이번에도 바지적삼을 적셨습니다.

아니 이번에는 엉덩이 탐정이 되었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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