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든든한 캠핑 파트너

by 성성이

와이프는 힘이 세고 민첩한 편입니다. 거기에 비해 저는 신생아와 맞먹는 수준의 체력을 가지고 있는 연약한 사무직입니다. 연애할 때 몇 번 맞아봤는데, '너와 나의 혼인신고'보다 '나의 사망신고'가 더 빠를 거 같아 연애 때부터 지금까지 절대 와이프 앞에서 함부로 매를 적립하는 행위나 말을 하지 않는 편입니다.


주로 다른 사람들의 캠핑을 따라다니던 제가 "이제 우리도 텐트도 사고 캠핑 장비를 사서 우리끼리 다녀보자!"라고 선언했을 때 와이프는 "과연 우리가 가능할까? 아니 오빠가 과연 가능할까?"라는 의문을 던졌습니다. 그리고 그 말은 현실이 되어 캠핑 초기 이론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프로였지만, 저는 실전에서 폴대 하나 제대로 세우지 못하는 몸치이다 보니 텐트 설치는 와이프의 몫이었고 제 역할은 아이를 돌보고 짐을 나르는 역할이었습니다.


평범한 캠퍼들에게 보기 힘든 광경이었죠. 심지어 와이프는 모 캠핑장 지기님에게 이렇게 텐션을 잘 주시는 여성분은 처음 본다고 칭찬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와이프는 제가 텐트를 못 쳐도, 장비를 조립하다 버벅거려도 절대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낸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제가 텐트를 칠 거라는 기대 자체를 하지 않아 그런지 제가 폴대도 제대로 못 끼우고, 팩 하나 박는데 반나절을 보내도 화를 낸 적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처음으로 혼자의 힘으로 폴대를 제대로 세웠을 때 마치 아들이 첫걸음마를 떼던 그날처럼 기뻐해 줬습니다.


가끔 캠핑장에서 남편이 텐트나 타프를 제대로 설치하지 못할 때 남편에게 한숨 쉬고 면박을 주는 분들을 본 적 있는데 그런 분들을 볼 때면 와이프가 제게 전생에 지은 죄가 얼마나 많길래 이렇게 잘해주나 싶기도 합니다. 아마 전생에 저는 독립군 투사였고, 와이프는 저를 고문하던 일본 순사였나 봅니다. 그래서 이렇게 현생에서 을 받고..


생각해보니, 2박 3일 떠났던 여름 캠핑에서 아들의 속옷을 챙기지 않아(아들과 제 옷은 주로 제가 챙깁니다.) 아들이 노팬티로 다녔을 때 와이프가 제게 크게 화를 낸 적은 있습니다. 근데 당사자인 아들이 팬티를 입지 않으니 시원하고 좋다고 하고, 남자는 가끔 노팬티로 살아야 한다.


왜 아들을 벌써부터 외적으로 억압하려 하냐!라고 했다가 등짝을 맞았습니다. 정말 아팠습니다. 이러다 '아들을 노팬티로 방치하다 와이프에게 맞아 죽은 매정하지만 맷집 약한 아빠'로 뉴스 단신으로 소개되겠구나 싶어 정신이 번쩍 들더군요.


올해 드디어 제가 혼자의 힘으로 텐트를 설치할 수 있었을 때, 와이프는 9살 아들보다 빠르게 한 명의 캠퍼로 성장한 제 모습이 대견했는지 제게 아낌없는 칭찬은 물론 친구들에게도 "우리 남편이 드디어 혼자 텐트를 친다!"며 자랑하기도 했습니다. 아니 이게 뭐라고 자랑을... ㅠㅠ


요즘 캠핑을 가면 저는 여유 있게 천천히 텐트를 치고 (와이프가 제발 다치지 말고, 시간 걸려도 괜찮으니 천천히 치라고 합니다. 대신 아들이 옆에서 잔소리를 하지만요.) 와이프는 하나씩 장비를 옮기고 아이를 돌봅니다. 다른 평범한 가족의 모습처럼 캠핑을 시작하는 게 딱 2년 반 걸렸네요. 물론 지금도 제가 버벅대면 바로 와서 '이건 이렇게 해야지~" 하며 와이프가 도와주고는 합니다.


캠핑 초기에 저의 모습에 답답하기도 하고, 화도 많이 났을 텐데 싫은 소리 한 번 안 하고 지금까지 함께 캠핑을 다녀주는 와이프님 감사합니다.


* 본인의 동의를 얻지 못해 사진은 없습니다


* 캠핑 때문에 잔소리(?)를 듣는 경우는 제가 몰래 가격을 속이고 장비를 사거나, 분명 당근에서 샀다는 캠핑 장비가 택도 안 떨어져 있을 때입니다. (미개봉이라고 해도 안 믿어요..)


* 이 글은 절대 생존을 위해 쓴 글이 아닙니다. 진심입니다. 믿어주세요. 사랑해 여보, 우리 평생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