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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성이 Sep 29. 2022

아이들과 함께 한 고난의 캠핑

하나밖에 없는 아들과 저의 공통된 취미는 바로 '캠핑'입니다.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무렵부터 캠핑을 따라다닌 아들은 이제 금요일이 되면 자연스럽게 "아빠 이번 주는 어디로 캠핑 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물론 매주 캠핑을 다니는 것은 아니지만, 아이에게 주말은 캠핑을 떠나는 것으로 머릿속에 강하게 뇌리가 박혀있나 봅니다.


그리고 유치원에 다닐 때는 캠핑을 다닌다는 것을 친구들에게 자랑하지 않았는데, 초등학교에 입학한 이후 최애 캠핑장 몇 곳이 생긴 아들은 친한 친구들에게 캠핑을 다닌다는 것을 자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아들이 얼마 전 제게 "아빠, 우리 다음 캠핑 때 **이도 함께 가면 안 돼?"라고 물었습니다. 낯가림이 심하고 소심한 저는 아이가 오면 당연히 부모 중 한 명 특히 아버지가 함께 할 것이기 때문에 그런 어색한 자리가 싫어 아이에게 아빠의 낯가림이 심하고 소심한 사정을 이야기하며, 만일 **이가 옆에 엄마가 없으면 잠을 못 자면 어떻게 하니? 나중에 너희가 엄마 없이도 잠들 수 있을 정도로 좀 더 크면 꼭! 데리고 가겠다고 했습니다. 


"그럼 이번에 **이 하고 함께 못 가겠네" 라며 아들은 실망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이번 캠핑은 아들과 둘이 떠나는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와이프는 주말에 중요한 약속이 있어 함께하지 못했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들이 저를 보자마자 흥분해서 큰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아빠! 아빠! **이 혼자 캠핑 갈 수 있대! 엄마랑 같이 안 자고 혼자 잘 수 있대!" 


친구와 함께 캠핑을 가고 싶은 아들은 흥분하며 제게 말했고, 저는 결국 친구 아버지와 전화 통화를 한 뒤 몇 시간 후(처음 아이를 1박 2일 엄마, 아빠 없이 보내는 것이라, 아이 엄마와 신중히 논의를 하셨다고 합니다.) 미안한 목소리의 아이를 잘 부탁한다는 친구 아버지 전화를 받았습니다. 출발 전날 아이에게 준비할 것을 적은 메모지를 주었고, 출발하는 아침 친구 아버지와 어색한 분위기에서 아이들과 함께하는 캠핑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큰 걱정을 하시지 않아도 된다며 안심시킨 뒤 과자와 음료수 등이 들어있는 간식 보따리를 받고 캠핑장으로 출발했습니다. 


뒷자리의 아이들은 신이 났는지 창밖에 지나가는 새를 봐도, 지나가는 트럭을 봐도 깔깔거리고 웃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제 두 아이의 안전과 재미 그리고 앞으로 세끼의 식사를 혼자 책임져야 한다는 막중한 사명감에 불타오르고 있었습니다. 


떠드는 아이들에게 잠시 제게 집중할 것을 요구한 뒤 캠핑장에서 지켜야 할 기본적인 예절, 그리고 안전에 대한 부분을 설명한 뒤 만일 예절에 어긋나거나 위험한 행동을 했을 때는 제가 무서운 사람으로 변한다고 엄포를 놨습니다. 


하지만 이 아이들 저를 전혀 무섭게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어떻게 무서운 사람으로 변하냐고 묻길래 저는 아이들이 무서워할 곤충이라 생각되는 사마귀를 떠올리며 말했습니다. 


"아저씨는 사마귀를 맨손으로 잡는 무서운 사람이야." 


아이들이 '사마귀를 맨손으로 잡다니. 조심해야겠군!'이라 생각할 거라 믿었지만, 오히려 "에이 사마귀는 맨손으로 잡을 수 있잖아요."라며 그게 뭐가 무서운 사람이냐고 합니다. 그럼 제가 무서운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고 물어보니 아들은 제게 "아빠 호랑이나 사자 맨손으로 잡아봐."라고 합니다. 


하나밖에 없는 애지중지 키운 아들은 아빠가 사자 잡다가 저승사자와 함께 황천길 트레킹 하길 바라나 봅니다.


그렇게 신나는 마음으로 도착한 캠핑장, 이번 캠핑은 아이 둘이 있기에 텐트, 테이블, 의자 정도만 준비한 극도의 미니멀 캠핑으로 준비해서 그런지 최대한 빠르게 만반의 준비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서로 마주 보더니 갑자기 옷을 갈아입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텐트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왔을 때 저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이들이 커플티로 입은 옷은 햇살 아래 눈부시게 반짝이는 형광색의 함께 다니는 태권도장 티셔츠였습니다. 가슴에도 그리고 등에도 크게 쓰여있는 태권도장의 이름은 캠핑장에서 마치 도장의 PPL을 하는 것만 같았고, 지금 이 순간 가장 뿌듯할 사람은 아마도 짱구 아빠를 많이 닮으신 관장님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들은 가끔 이해할 수 없을 때가 있는데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인 것 같습니다. 멋지고 예쁜 옷들 중에 하필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끌 수 있는 형광색의 옷을 입었을까요. 아무튼 옷이 너무 튀다 보니 이 아이들이 어디에 있든 찾기는 쉬울 거 같아 오히려 다행입니다. 


짧은 시간 방방장에서 놀았지만, 땀범벅이 되어 온 아이들은 이제 제게 곤충을 잡으러 가자고 합니다. 

이번 캠핑은 1박 2일 동안 아이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해주자 하는 결심을 하고 왔기에, 두 아이를 이끌고 곤충채집을 위한 채집통을 들고 여정을 떠났습니다. 


아이들이 원하는 곤충은 메뚜기, 사마귀, 방아깨비, 섬서구 메뚜기 등 다양했는데, 곤충이 없으면 어떻게 하지 아니면 내가 곤충을 잡지 못하면 아니 곤충에게 내가 잡혀먹으면 어떻게 하지 걱정이 됐습니다. 그러나 다행히 아이들의 바람처럼 곤충들은 하나둘씩 우리에게 호기심을 가지며 접근했고 저는 섬서구 메뚜기를 시작으로 곤충을 잡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메뚜기보다 더 민첩하게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따라다니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풀밭에서 주저앉는 등 저의 고난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때 아들의 친구가 '와! 여치다!'라고 소리쳤습니다. 여치라는 말에 호기심을 가진 아들은 신나서 달려가고 저는 채집통을 들고 따라갔습니다. 그리고 제가 마주한 것은 '이게 여치여 여포여..'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위풍당당한 체구를 가진 말 그래도 거대한 여치였습니다. 아이들에게 "얘들아 이건 여치가 아니야. 괴물이야. 그러니 피해 가자."라 하고 싶었지만 두 아이는 이미 대형 여치를 잡아달라고 성화였습니다. 


저는 결국 두 눈을 질끈 감고 여치를 잡았고, 다행히 난폭해 보이는 여치는 순순히 제게 잡혀(?) 주었습니다. 


그렇게 다양한 곤충을 잡다 보니 시간이 벌써 저녁을 먹을 시간이 되었습니다. 캠핑에는 역시 고기! 오늘의 저녁은 당연히 삼겹살이었습니다. 저녁 먹을 준비를 하는 동안 아이들은 벌써부터 배고프다고 빨리 저녁을 달라고 합니다. 고기가 익지도 않았는데, 서로 자기 먼저 달라고 합니다. 아이들이 배고프다고 할지라도 저는 장유유서 정신으로 똘똘 뭉친 엄격한 아버지입니다. 일단 제가 먼저 먹어 봤는데, 역시 고기는 그리들에 구워야 맛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가 먹기 좋게 잘 익은 고기 몇 점을 접시에 놓았을 때 아이들은 허겁지겁 먹기 시작합니다. 저희 아이가 평소에 고기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이 정도까지 고기에 환장한 아이는 아니었는데, 아무래도 친한 친구이자 고기의 경쟁자가 등장하니 식욕에 자극을 받은 것 같았습니다. 


'아이들이 먹어야 얼마나 먹겠어.' 하는 마음으로 고기를 한 근만 샀는데 아이들이 먹는 속도를 보니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합니다. 


"얘들아 버섯도 좀 먹어봐. 이거 마트에서 산 새송이 버섯이야. 그리고 이따 샤워장 가면 아빠가 너희들에게 뭐라고 할지 알아? 바로 둘 다 버섯!" 


고기만 마시고 있는 아이들에게 저도 고기를 먹고 싶은 마음에 버섯으로 관심을 돌려보려 했지만, 이미 초등학생에서 저녁식사 먹이사슬 최상위에 있는 포식자로 돌변한 아이들은 거침없이 고기만을 먹고 있었습니다. 결국 저는 맛있게 구워진 보기만 해도 입에 침이 고이는 고기를 아이들에게 양보하고 고기 몇 점과 버섯만으로 배를 채웠습니다.


식사한 자리를 정리하고 잠시 설거지하러 다녀온 사이 배가 부른 아이들은 함께 게임한다고 텐트 안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씻으러 가기 위해 텐트를 여는 순간 텐트 안에서는 제 인생에서 처음으로 맡아보는 강력한 발 냄새가 텐트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얼굴만 살짝 들이밀었을 뿐인데 참을 수 없는 발 냄새는 캠핑장에서 질식사하지 않으려면 당장 탈출하라고 지시하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자신들의 발 냄새가 느껴지지 않는지 둘 다 게임에 집중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아이들이 이해가 되기도 하는 건 저도 가끔 제 방귀 냄새가 향긋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더 시간이 늦어지기 전에 이 발 냄새나는 아이들을 씻겨야 하는 또 하나의 막중한 임무가 있었습니다. 게임을 조금만 더 하겠는 아이 둘을 끌고 샤워장으로 향했습니다. 평소 목욕할 때 아빠 말을 잘 듣던 아들은 친구가 있어 그런지 샤워기를 제 얼굴을 향해 발사하며 장난치기 시작했고, 그걸 지켜보는 친구까지 제 배를 향해 샤워기를 발사하며 함께 장난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두 아이를 씻긴 뒤 텐트로 돌아와 이제 하루 일정을 마무리하기 위해 누웠습니다. 


그동안 캠핑을 다니며 이렇게 하루가 길게 느껴지고, 몸이 힘든 것은 처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아들과 아들의 가장 친한 친구가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으니, 이 정도 희생은 감수해야 된다는 생각이 들기는커녕 머릿속에 드는 생각은 '이건 정말 못할 짓이다. 다음에는 꼭 보호자를 한 명 더 동반해야겠다!'였습니다. 


다행히 이런 저의 마음을 아는지 아니면 하루 종일 떠들고 온 몸으로 놀았던 아이들은 '우리 오늘 밤새고 놀 거야.'라고 둘 다 다짐했지만 불을 끄고 눕자마자 잠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곤히 잠든 아이들을 바라보니 하루의 고생은 모두 잊히고 데리고 오길 잘했다 라며 마음이 흐뭇해집니다.


이 아이들이 앞으로도 서로에게 도움이 되고 즐거운 학창 시절을 보내며 우정을 쌓길 바라는 마음으로 저도 잠이 들었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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