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캠핑을 결심했다.
#캠핑은 언제나 맑음
취미 : 즐거움을 얻기 위해 좋아하는 일을 지속적으로 하는 것.
나의 주변의 사람들은 각자 자신만의 취미가 있다.
세상만사 모든 것이 귀찮아 보이는 부장님은 골프 이야기만 나오면 반짝이는 눈으로 "자네도 골프에 관심이 있어?" 하며 골프에 대한 이야기를 쉴 새 없이 말하며, 하루 중 그의 행복으로 가득 찬 미소를 볼 수 있는 시간은 짧은 점심시간 주차장에서 마치 검객이 복수를 위해 명검을 갈고닦듯 빛나는 눈빛으로 골프채를 만지작거리고 닦으며 이상 야릇한 신음 소리를 내는 그 순간이다.
취직을 위해 고향을 떠나 낯선 타지에서 함께 자취를 하다 보니 이 자식은 '바보'구나라는 추측을 확정 짓게 한 동거인 녀석도 기타와 함께 하는 순간만큼은 세상 모든 것을 가진 남자처럼 행복한 모습이고, 남자인 내가 봐도 아주 조금은 멋있어 보였다. 물론 기타를 내려놓는 즉시 맨인블랙의 요원에게 일시적으로 기억을 잃은 어느 엑스트라 배우처럼 찰나의 멋있던 모습을 잊고 다시 '찹쌀고추장에는 찹쌀이 들어있어 밥이 없을 때 밥 대용으로 먹어도 된다.'라는 논리를 펼치는 순박한 바보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즐거움을 얻기 위한 행위인 취미라는 것이 있고 그 취미를 하는 순간만큼은 행복해 보이고 화려하게 빛이 난다. 캠핑을 알기 전 나에게 빛이 나는 순간은 과연 언제였을까? 내가 즐거움을 얻기 위해 지속적으로 무엇을 할까 생각해 보니 동거인 녀석이 자리를 비운 주말 혼자 느긋하게 팬티 차림에 가죽이 떨어진 낡은 소파에 앉아 배를 긁적이며 티브이를 보는 그 순간이었던 것 같다.
그 시간만큼은 복장에 대한 해방감과 남자가 소파에 누워 배를 만지는 모습은 볼썽사납다는 편견에서 벗어나 내가 행복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어김없이 낡은 사각팬티 차림에 배를 벅벅 긁는 자세로 '아오 저 똥물에 튀겨 죽여야 할 것들을 봤나..' 이러며 비련의 여주인공에 감정 이입하며 막장 드라마를 보고 있는데, 가끔 회사 옥상에서 매일 멍하니 하늘만 서로 바라보며 함께 담배를 피우는 과장님에게 연락이 왔다.
"뭐 하냐?"
그의 짧은 질문에 차마 '배를 긁적이며 소파에 누워 눈물 흘리며 막장 드라마를 보고 있어요.'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 그냥 집에 있어요."
"특별한 약속 없으면 나랑 바람이나 쐬러 갈래?"
주말이지만 딱히 약속도 없었고, 집에서 막장 드라마를 보는 것보다는 이렇게 날씨 좋은 날 바람 쐬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흔쾌히 과장님과 함께 하기로 했다. 그리고 과장님이 나를 데려간 곳은 서울에서 한 시간 반 정도 거리에 있는 경기도의 한 캠핑장이었다.
텐트를 치고 장비를 정리하는 사람들, 모든 정리를 마치고 음식을 함께 나눠 먹는 사람들, 소리 지르며 신나게 뛰어놀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 등 캠핑장의 사람들은 모두 활기 넘치는 모습이었다. 그동안 캠핑장에 대한 이야기만 들어봤지, 직접 와 본 것은 처음이었다.
과장님은 주섬주섬 차에서 짐을 내리기 시작했고, 나도 과장님을 도와 함께 짐을 옮기며 물었다.
"과장님 그런데 왜 저한테 함께 바람 쐬자고 하신 거예요?"
"너는 할 일 없이 집에 있을 거 같았거든."
할 일이 없다니요! 그동안 못 본 막장 드라마보다 라면도 끓여 먹고 얼마나 내가 주말을 바쁘게 보내는데요!라고 반박하고 싶었지만, 평범한 사람들의 관점에서는 그 모습이 전형적인 할 일 없는 모습 같았기에 반박할 수 없었다.
회사에서 엔터키를 신경질적으로 강하게 누르며 항상 화가 난 듯한 모습으로 일하는 과장님이 이렇게 즐거운 표정으로 일을 그것도 격렬하게 몸을 쓰는 일을 하는 것을 본 건 처음이다.
텐트 설치와 장비 배치를 마친 뒤 과장님께서는 아이스박스에서 맥주 한 캔을 꺼내 건네주었다. 뭔가 뚫리는 시원함과 온몸의 혈이 뚫리는 듯한 청량함, 그때 마셨던 맥주의 맛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캠핑을 하게 되면 이것저것 할 게 많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 당시 딱히 할 일이 없어 과장님과 멍하니 앉아 캠핑장만 두리번두리번하며 다른 텐트 구경만 했다. 아무런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이렇게 좋은 곳에 왔는데 뭔가 해야 할 거 같아 과장님의 말동무라도 되어 드려야겠다는 생각으로 나는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고 내 이야기를 계속 듣던 과장님께서는 말했다.
"너는 나랑 회사 이야기밖에 할 게 없냐?"
그렇다. 나는 자연스럽게 공통의 관심사라 생각했던 회사 이야기만 해댔다. 결국 화제를 바꿔 과장님에게 캠핑 장비에 대한 질문을 던졌고, 그동안 과장님과 함께 옥상에서 담배 피우며 이야기했던 것보다 더 많은 대화를 그날 과장님과 나눴다. 그리고 나와 캠핑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의 얼굴에서 행복 100%로 가득 찬 표정을 볼 수 있었다.
그렇게 캠핑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저녁 먹을 시간이 되었다. 화로대에 숯불을 피우고 고기를 나눠 먹으며 다시 긴 침묵 모드가 시작되었다. 다른 사이트들은 시끌벅적하게 만찬을 즐기고 있었고, 침묵의 고기 시위를 벌이고 있던 우리의 정적을 깬 것은 바로 과장님의 전화기였다.
순간 약간 당황한 표정의 과장님은 뭔가 다짐한 표정으로 전화를 받으셨다.
"왜? 왜 전화했어?"
전화기 밖으로 형수님으로 추정되는 여자분의 큰 목소리가 들린다. 애써 나는 못 들은 척하며 과장님의 눈치를 살살 보며 고기를 뒤집기만을 반복했다.
"혼자 온 거 아니야. 회사 후배하고 같이 왔어."
전화를 끊은 과장님은 핸드폰을 내 방향으로 바꾸며 말했다.
"너 사진 하나만 찍자. 와이프가 사진 찍어서 보내래."
"웃을까요? 아니면 진지하게?"
"그냥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저는 어색하게 손을 브이 모양으로 만들고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과장님은 그 사진을 와이프 분에게 전송했다. 그리고 잠시 뒤 휴대폰에서 알람 소리가 울렸고, 과장님께서 문자 메시지를 확인하시고 한숨을 한 번 쉬신 뒤 말했다.
"너 내 옆으로 잠깐 와 봐."
나는 과장님 옆으로 갔고, 과장님과 어색하게 휴대폰 액정을 바라보고 있었다.
"좀 웃어봐. 즐거운 표정으로 지금 니 표정이 오기 싫은데 끌려온 사람 표정이잖아."
나와 과장님은 안면 근육을 최대한 활용하여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표정의 두 남자로 변신하여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어색한 웃음을 짓고 있는 그 사진을 와이프 분에게 전송했다. 과장님이 그 후 말하길 원래 가족캠핑을 떠나기로 했는데 오늘 아침 와이프 분과 부부 싸움을 크게 하고 혼자 차를 몰고 나오셨다가 혼자 가면 적적할 거 같아 내게 전화를 하신 거라고 하시며 "너는 절대 결혼하지 마라.."라는 말로 마무리했다.
꿩 대신 닭이라는 말이 떠올랐지만, 공기 좋은 곳에서 바람도 쐬고 고기도 먹으니 지금 이 순간 내가 꿩이면 어떻고 닭이며 어떠리 하는 마음으로 그저 행복했다. 그래도 이때까지는 "앞으로 나도 캠핑해야지." 하는 생각까지는 들지는 않았다.
약간 긴장하며 저녁을 먹으며 술을 조금 마셨더니 이른 시간부터 졸리기 시작했다. 조심스럽게 과장님께 양해를 구하고 먼저 잠을 자러 텐트 안에 들어갔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나의 요도는 화장실로 어서 달려가라 신호를 보냈고 텐트 밖을 조심히 열고 나갔는데, 조명도 모두 꺼진 캠핑장, 텐트 앞에 과장님이 혼자 앉아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과장님의 등 뒤로 서울에서 보기 힘들던 별빛이 쏟아지고, 어려운 업무 처리를 멋지게 해내는 회사에서의 모습보다 멍하니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고 있는 과장님의 뒷 모습이 내게는 더 멋있게 보였다.
그리고 그의 취미가 나의 취미도 되길 바라며 마음속에 "나도 캠핑을 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 캠핑은 열심히 다니지만 사진을 잘 찍지 않는 편입니다.
** 제가 사진을 워낙 못 찍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