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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성이 Jun 07. 2022

캠핑을 시작하다

# 언제나 캠핑은 맑음

과장님과의 캠핑 이후 바로 캠핑을 시작하고 싶었지만, 정작 캠핑을 하게 된 건 몇 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후였다. 당장 캠핑을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월급쟁이가 캠핑 장비를 장만하는 것이 부담도 되고 캠핑 장비를 산다 하더라도 보관할 장소도 없었기에 훗날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다시 캠핑을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건 결혼을 하고 2년 정도 지났을 때였다. 다행히 와이프도 캠핑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고, 경제적으로도 이제 어느 정도 안정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어 캠핑을 시작하려 했다.


하지만 또 캠핑을 연기할 수밖에 없는 행복한(?) 사건이 생겼는데, 와이프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임신을 하게 된 것이었다. 그렇게 또 몇 년을 기다린 끝에 아이가 어느 정도 자란 뒤 드디어 우리도 캠핑을 시작하게 되었다. 


지인 분들을 따라다니기만 하다 아이도 이제 어느 정도 자랐고, 우리도 이제 더 이상 다른 분들에게 기생하지 말고

우리만의 공간을 만들어보자는 마음으로 과감히 독립된 캠핑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순순히 우리 가족은 자발적으로 빠져나갈 수 없는 캠핑 지옥길의 편도행 티켓을 끊게 되었다.


지인들에게 받은 텐트 등 캠핑 용품과 캠핑 용품점에서 직원이 골라주는 제품으로 몇 가지의 장비만을 장만하고 떠난 첫 캠핑. 장소는 양평 어느 계곡에 있는 캠핑장이었는데, 사이트 옆에 주차를 할 수 없어 짐들을 우리만의 보금자리가 생긴다는 사실에 신나고 들떠있는 아들과 함께 리어카를 끌며 옮겼던 기억이 난다. 앞으로 다가올 지옥의 시간을 예상하지 못하고 우리는 곧 있으면 펼쳐질 오붓한 공간만을 상상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짐을 옮겼다.


이미 출발 전 영상으로 텐트 치는 법, 타프 치는 법 등을 연마했고, '텐트 치고 타프 올리는 게 얼마나 어렵겠어' 하는  쓸데없는 자신감으로 똘똘 뭉쳐 있었다. 하지만 텐트를 치는 순간 영상과 현실을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 부부는 헤매기 시작했고, 구슬땀을 흘려가며 몇 번의 시행착오와 우여곡절 끝에 텐트를 치기는 했다. 


이제 문제의 타프가 남았는데, 그동안 혼자 있는 게 지루했는지 아이가 슬슬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결국 와이프에게 아이를 데리고 잠깐 캠핑장 주변 구경이라도 하고 오라고 하며 혼자 타프를 치기로 결심했다. 

영상을 봤을 때 텐트보다 타프가 더 쉬워 보였기에 텐트도 쳤는데 타프쯤이야 하는 자신감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심각한 경기도 오산이었다. 타프라는 녀석은 결코 쉽게 일어서지 않았다. 

뭐가 그리 불만인지 어르고 달래며 힘껏 망치로 때려봐도 녀석은 길거리의 취객처럼 힘없이 픽픽 쓰러지기만을 반복했다.


"아빠! 일어나!"를 외치던 영화 클레멘타인의 귀여운 딸처럼 타프에게 마음속으로 간절하게 마음속으로 외쳤다. "타프 야 일어나!!" 하지만 이런 제 마음도 모르는 타프 녀석은 거의 1시간이 넘게 걸음마를 시작하는 아이처럼 비틀거리다 쓰러지기를 반복했다.


이런 나의 모습을 본 와이프는 그냥 "우리 타프없이 지내다 가자 얼굴 좀 타면 어때" 라며 포기를 제안했지만,  나는 포기할 수 없었다. 나는 한 가정의 가장이고, 지금도 나를 최고의 남자라 생각하고 있는 아들을 생각하며 뒤돌아 보니 어.. 저 자식, 아빠는 열심히 일하는데 낮잠 자고 있네..


아무튼 타프와 씨름을 한 지 1시간 30분이 넘어가 포기라는 단어가 뇌를 지배하고 있을 때 하늘에서 묵직한 음성이 들려왔다. 


"저기, 제가 좀 도와드릴까요?"


나는 웅장한 음성이 들리는 하늘 위를 올려다봤다. 그리고 너무나도 눈부셔서 그를 제대로 바라볼 수 없었다.

그곳에는 망치를 들고 있는 중년의 토르가 서 있었다. 혼자 낑낑대는 모습을 보며 도와줄까 말까 고민하다 오셨다는 내게 강림하신 토르, 아니 그 아저씨는 내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다. 


마치 처음 걸음마를 처음 도전하는 아이를 지켜보고, 도와 주 듯 토르, 아니 아저씨는 친절하게 그동안 내가 왜 타프를 제대로 세우지 못했는지 설명해주셨고, 신의 망치질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깡" "깡" "깡"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색이 그의 손과 망치에서 벗어나 세상으로 울려 퍼지고 있었다.

맑고 청아한 소리는 내 가슴만을 후벼 파고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안쓰러운 모습으로 나를 바라보던 와이프도, 곤히 잠들었던 아들도 잠에서 깨 고귀한 토르가 만들어 내는 환상의 선율에 물아일체로 빠져들고 있었다.


"아이 아빠가 이제 직접 한 번 해봐요. 이건 직접 해야 늘어."


토르 선생님, 아니 아저씨께서는 내게도 망치질을 해볼 것을 권유했다. 감히 인간 주제에 신의 망치로 할 수는 없고 우리가 준비했던 다이소 망치로 망치질을 시작했다.


"틱.." "틱.." 


하지만 나의 망치질에서는 그 특유의 맑고 세상을 지배하는 아름다운 소리가 나질 않았다.


"어허.. 그렇게 살살하지 말고 세게 내려쳐요. 그렇게 해서는 팩이 제대로 안 들어가.."


"틱,.,, 틱.."


"어허.. 세게 내려쳐도 망치 대가리 안 나가니까 내려쳐봐요."


신의 뜻대로 저는 있는 힘껏 망치를 내려쳤다. 그리고..


"어?"


"어?"


망치 대가리(?)는 잠시 하늘을 비행한 뒤 툭 하고 땅에 떨어졌다.


"진짜 나가네.." 


토르, 아니 아저씨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가족의 앙증맞은 망치는 하루살이의 일생과 맞먹는 시간을 보낸 뒤 양평의 한 캠핑장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리고 나는 아저씨를 한 번 봤다, 앞부분이 날아간 망치를 한 번 보고 말했다.


다이소 망치 다이 했네..



**  1시간 30분 동안 치지 못했던 타프를 단 15분에 뚝딱하고 완성한 전능하신 토르, 아니 아저씨에게

저는 맥주 한 캔을 제물로 바치고, 그분에게 캠핑에게 대한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 캠핑 카페에 이 글과 비슷한 글을 올렸을 때 토르 아저씨 와이프 분이 직접 댓글을 남겨주셨는데 아저씨 뿐만 아니라 그분 가족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호박전도 나눠주시고, 불멍만 알았지 토치를 준비하지도 않았던 우리를 위해 불을 나눠주시며 낮에는 토르, 밤에는 프로메테우스의 모습으로 캠핑 초보였던 저희를 돌봐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이전 01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캠핑을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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