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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성이 Jun 07. 2022

자연을 거스르면 안된다.

# 캠핑은 언제나 맑음

먼저 캠핑을 시작한 지인들이 쓰던 캠핑 장비를 받아 사용하던 캠린이 시절인(물론 지금도 아니 앞으로도 영원히 캠핑 신생아 일것이지만.) 아이가 세 살정도 되었을 때 일이다. 세 살이었던 그 아이는 지금은 무럭무럭 성장하여 벌써 아홉살이 되었고 나와 쌍쌍바를 나눠 먹으며 정치와 사회 그리고 인생을 논하고 있다. 


아무튼 다시 과거로 돌아가 우리 부부가 '이제 아이도 어느정도 성장했으니 캠핑을 시작해보려 한다.' 하니 주변의 지인들이 자신들이 사용하던 캠핑용품을 나눠주기 시작했다. 캠핑의 즐거움을 알려준 와이프 회사 사장님께서는 사용하던 돔텐트와 작은 타프를 주셨고, 나보다 먼저 캠핑을 시작했던 친구들 중 우리 세 가족이 올라가 단체로 제로투 댄스를 춰도 될만큼 큰 테이블을 준 친구도 있었고, IQ 140 이하는 절대 접을 수 없는 고난이도의 퍼즐 같은 접기 힘든 발포매트를, 다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낚시 의자를 준 친구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이것들이 캠핑 시작 축하 선물로 양도한 것이 아닌 부피가 큰 캠핑용품들을 내게 폐기처리를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긴 한다.  


아무튼 그 당시에는 충동적으로 캠핑용품을 사버릴 수 없기에 일단 캠핑을 경험해보기 위해 그들의 쓰레기(?)를 수거했고,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우리 가족만의 단독 캠핑을 시작했다. 당시 돈을 주고 구매한 것은 오직 90mm 무반동총 만한 거대한 크기와 무게를 자랑하며 산속에서 곰을 만났을 때와 같은 위기상황에서 호신용으로도 사용이 가능한 초거대 의자 밖에 없었다. 버너는 집에서 사용하던 부탄가스 버너 하나를 들고 다녔고, 집에서 쓰던 냄비, 식기는 1회용 그릇과 나무젓가락을 그리고 집에서 쓰던 이불을 들고 다니는 말 그대로 피난 캠핑을 다녔다.


제대로 된 장비가 거의 없었지만 여러 우여곡절 끝에 첫 캠핑을 즐겁게 다녀온 우리 가족은 두 번째 캠핑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갑자기 강원도 화천이 가고 싶었고, 결국 나의 의지대로 화천에 있는 캠핑장으로 떠나게 되었다. 


초여름의 날씨는 조금 덥긴 했지만, 일기예보에 비소식도 없었고 캠핑을 즐기기에 딱 좋을거라 생각이 들었다. 캠핑장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아이가 좋아하는 동요도 듣고, 와이프와 이런 저런 캠핑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즐겁게 떠났다. 


그리고 거의 3시간 가까이 달려 도착한 캠핑장, 산자락에 계곡을 품고 있는 캠핑장은 보기만 해도 그동안 갑갑한 도시에서 살던 우리에게 Healing을 선사했다. 맑은 공기와 새소리 그리고 초록의 물결을 만드는 나무들과 그 모든 것을 하나로 품고 있는 자연속에서 '이것이 바로 힐링이다! 사람들이 이런 기분때문에 몸은 힘들지만 캠핑을 떠나는구나!" 라는 것을 느꼈다. 


와이프가 아이를 돌보는 사이 어설프게 텐트를 치고 일전 캠핑에서 토르 아저씨에게 배운대로 더욱 어설프게 타프도 쳤다. 바람이 조금씩 선선하게 불었지만, 머리와 등은 이미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몸은 조금 힘들었지만, 우리 가족이 1박 2일 함께할 공간을 내 손으로 만든다는 생각에 기분은 좋았다. 그리고 차에서 장비를 옮겼는데, 뭔가 빠진게 있는 것 같은 허전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바로 1박 2일간 우리가 먹을 음식을 요리할 휴대용 가스버너를 집에 두고 온 것 이었다. 그 당시에는 아이의 안전을 핑계로 화롯대도 없는 상황이라 우리가 가진 불이라고는 주머니 속의 라이터가 유일했다. 순간 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두뇌 풀가동을 시작했다. 


1. 자연속에서 화기를 사용해 음식을 먹는 것 보다 1박 2일간 자연속에서 생쌀을 씹어먹으며 생식을 즐겨보자 라고 제안한다. 


> 와이프에게 분명 욕먹고 등짝을 맞는 상황이 발생할 것이다.


2. 다른 캠퍼들이 화롯대에 불을 피고 있을때, 양해를 구하고 화롯대 위에서 잠시 요리를 한다


> 에이.. 이건 너무 다른 분들에게 민폐다.


3. 냄비 하나를 희생해 그 안에 장작을 넣고 화롯대처럼 만들고 요리를 한다. 

> 잠깐 우리가 가져온 냄비는 하나 잖아..


4. 아이를 업고 애처롭게 다니며 불동냥을 하러 다닌다. 

> 내가 무슨 심봉사도 아니고..


결국 와이프에게 사실대로 이야기하고, 결국 휴대용 가스버너를 사기 위해 캠장님께 근처 마트를 물어봤을 때 고마운 캠장님께서는 이런 일이 있으면 말을 하지 그랬냐며, 휴대용 가스버너를 무상으로 대여해주셨다. 그래서 감사한 마음에 부탄 가스를 챙겨왔음에도 불구하고 2개를 구매했다. 


그렇게 자비로운 프로메테우스 캠장님께서 대여해주신 가스버너로 밥도 해 먹고, 고기도 구워 마셨다. 간단하게 식사를 마친 뒤 근처 계곡으로 아이에게 태워줄 튜브를 들고 물놀이를 하러 갔다. 한 없이 투명에 가까웠던 계곡의 물은 여름 햇빛이 반사되어 눈부시게 반짝이고 있었다. 물에 들어가면 그 아름답게 투영된 빛과 순수하게까지도 느껴지는 투명함이 사라지겠다는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로 맑았던 물에 몸을 담그는 순간..


"아땀룸루댜밸무ㅏㅇㄴ랟ㅂㅈㄸㄸ시부럴" 


내 입에서는 사람의 말로 해석될 수 없는 온갖 말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어찌나 계곡의 물이 차가웠는지 몸은 순간 얼어붙고, 물처럼 뇌도 투명해지는 것을 느꼈다. 물에 들어오려는 와이프와 아이를 "안 돼! 너희 얼어죽어!" 라며 필사적으로 제지하였고, 물에서 놀고 싶은데 물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니 아이는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얼음장 같은 계곡물에서 물고기를 잡아주겠다고 하며 우는 아이를 달래고 다시 계곡물로 입수를 했는데, 또 나의 입에서는 인간의 언어가 아닌 짐승의 괴성이 나오기 시작했다. 제발 한 마리만 잡혀라! 라는 마음으로 어망을 들고 다니는데 화천의 물고기는 순간이동을 하는 지 잡을 듯하면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결국 어렵게 잡은 한 마리로 아이의 마음을 달랬지만, 몇 년이 지나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화천의 냉동 계곡의 사람잡는 냉기는 잊혀지지 않는다. 


저녁을 지나 밤이 되었고 이제 잠들 시간이 되었다. 저녁 무렵부터 바람이 선선하게 불기 시작했는데, 그 바람은 밤이 되자 조금씩 세지기 시작해 이제 어설프게 친 타프와 텐트가 들썩이고 흔들리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분명 비 예보가 없었는데, 비도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가족을 지켜야하는 가장이었다. "그래 이런 악천후에 내 가족은 내가 지킨다!" 라는 생각으로 텐트 밖으로 나섰다. 이미 밖에 있는 식기들, 용품들은 쓰러져 있는 등 난리였고, 타프는 거의 쓰러질 지경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일단 빠르게 캠핑용품들을 비를 맞지 않는 한쪽으로 모았고, 흔들리는 타프를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 폴대를 다시 제대로 일으켜 세우고, 팩을 굳건히 박기 시작했다. 


그때 텐트 안에서 와이프가 "오빠! 여기 비 들어와, 어떻게든 해봐!" 라고 말했고, 이렇게 된 거 타프를 해체하고 텐트 위를 덮고 팩을 박아버리자! 라고 생각했다. 박았던 팩을 다시 빼고 폴대에서 타프를 빼 타프를 들었을 때 인생에서 처음으로 타프에게 뺨을 맞는 경험을 했다. 그동안 선생님, 멍멍이, 고양이 등 살아 숨쉬는 생물에게 뺨을 맞아봤지만, 타프라는 무생물에게 이처럼 강렬한 감정이 실리지 않은 뺨을 맞은 것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외쳤죠. "이것은 Healing이 아니다 Helling이다! 제발 살려줘!!"


바람과 타프의 콜라보한 결과물이던 그때 그 매정했던 타프의 싸대기는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때부터 타프를 두려움의 존재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텐트안에 비는 들이닥치지 않게 임시 방편으로 하긴 했지만, 불안해서 잠이 들 수 없었다.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새우고 다음날 아침 텐트 밖으로 나섰을 때 마치 전쟁터의 마을처럼 대참사가 벌어진 상황이었고, 냄비속에 담긴 물은 측우기처럼 전날 내린 강렬한 소나기의 강우량을 알려주고 있었다. 


지금은 웃으면서 생각하는 추억이지만, 그 당시에는 이런 최악의 상황에 울지않고 고이 잠들어 준 아이도 고맙고 캠핑을 포기하지 않고 지금까지 함께 열심히 다녀주는 동반자인 와이프에게도 고맙다.


미운 놈이 있다면 그때 대자연의 심술에 좌절하고 있는 한 가정의 연약한 가장에게 회심의 싸대기를 무참하게 날린 '타프'라는 놈 밖에 없다.


지금 생각해도 나쁜 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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