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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성이 Oct 14. 2022

캠핑에 중독된 것 같습니다.

저는 무언가 하나에 빠지면 한동안 그것에 헤어 나오지 못해 일상생활을 정상적으로 보내기 힘들 정도입니다.  대학생 때는 성역의 용사가 되어 악마를 무찌르는 것에 집중하고 싶어 과감히 한 학기 휴학을 한 적도, 사회 초년생 때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소위 말하는 와우에 푹 빠져 밤을 새우고 다음날 아침 부스스한 외모로 출근한 날이 부지기수이었으며, 주말에 아주 가끔 잡히던 절세 미녀와의 소개팅도 과감히 거절한 뒤 공대장의 무겁고 비장한 책임감으로 레이드를 열심히 뛰었을 정도였습니다.


물론 제가 인생을 살면서 가장 푹 빠졌던 존재는 바로 지금의 와이프입니다. 그 좋아하던 게임을 과감히 접게 만든 여자이니까요. 처음 만난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일편단심 민들레처럼 와이프만 바라보며 사랑하고 있습니다. 적어도 와이프에게는 이 시대의 마지막 로맨티스트이자 그녀만의 전속 사랑꾼이 되고 싶습니다.


부인 사..

사....

사.. 고 싶은 텐트가 있어..

인생의 마지막 텐트가 될 거야.. 아마도 


자유롭던 총각에서 책임감을 가져야 하는 유부남으로 신분이 변한 이후 저도 이제 한 가정의 가장이기에 게임 폐인으로 지냈던 과거를 생각하며 무언가에 빠지지 않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디아블로 3가 출시되었을 때 김유신 장군이 자신을 유흥가로 데려가던 애마의 목을 베었던 심정으로 눈물을 흘리며 산지 얼마 되지 않은 컴퓨터를 팔았으며 (생각해보면 김유신 장군도 참 웃긴 양반입니다. 지가 잘못해놓고 왜 말한테 화풀이를 하다니..) 친구 따라 낚시를 한 두 번 다녔을 때, 이게 은근 손맛도 있고 낚시터에서 끓여먹는 라면도 맛있길래 이제 새로운 취미로 낚시를 시작해볼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낚시에 조금씩 관심을 가지던 때 이러다 낚시에 빠지게 될 경우 한 대 맞으면 삼도천 편도 행 배를 태워줄 수 있는 치명적인 매력을 가진 회색곰 같은 와이프와 아빠를 맘마라 부르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귀여운 아들이 있는 소중한 가정을 등한시할 거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습니다. 결국 낚시에 대한 좋지 않은 추억을 적립한 뒤 낚시에 대한 관심을 단번에 끊기 위해 함께 낚시를 다니던 친구에게 낚싯대로 저를 인정사정 패 달라고 부탁한 적도 있습니다. 물론 그 친구는 제게 미친놈이라 했고, 미친놈에게는 매가 약인데 이 자식을 패야 해, 아니면 말아야 해 하며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수많은 유혹의 손길을 스스로 거부하며 최소한의 취미만 유지하고 지내던 저는 캠핑이라는 것을 우연히 시작하게 되었고, 지금은 캠핑에 미쳐 살고 아니 거의 중독된 것 같습니다. 


처음 지인에게 초대받아 갔던 캠핑 때 "한 여름에 땀 뻘뻘 흘리며 왜 고생을 사서 하지." 하는 생각을 했던 제가 지금은 37도의 폭염에도 영하 18도의 혹한에도 텐트를 치며 고생을 할부도 아닌 일시불로 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실성한 사람처럼 피식피식 웃으면서요. 


그리고 틈만 나면 캠핑 장비에 대한 검색과 사람들의 캠핑 이야기를 읽으며 대리 만족을 즐기는 것은 기본이며, 가끔 집에서 자충 매트를 깔고 침낭을 덮고 잘 때도, 파워스토브를 꺼내 코펠에 라면을 끓여 먹을 정도로 일상에서도 캠핑에 미쳐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감히 생각하지도 못하던 브런치에 도전해 캠핑에 관련된 글을 열심히 쓰고 있기도 하고요. 그렇게 캠핑은 어느새 저의 일상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물론 제가 캠핑에 미치는데 도움을 준 존재들이 있었습니다. 주말이면 소파에 흡수되어 내가 사람인지 소파인지 구분할 수 없는 저를 끌고 다니며 항상 맛있는 고기도 배부르게 마시게 해 줬지만 고생이란 고생은 모조리 경험하게 해 주며 제대로 된 캠핑의 묘미를 알려준 와이프 회사의 사장님, 팩도 제대로 못 박고 타프를 텐트 덮는 용도로만 쓰던 제게 팩 박는 법부터 텐트 치는 법, 타프 치는 법을 알려주신 초보시절 옆 사이트와 주변의 이름 모를 고마운 친절한 캠퍼분들이 있었고,  지금은 저보다 더 캠핑을 더 좋아하고 주말이면 당연히 캠핑을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아들까지.. 


어제는 집에서 밤늦게까지 일을 하다 잠깐 졸았는데, 그 잠깐의 꿈에서 제가 사고 싶던 텐트를 산 뒤 열심히 폴대를 넣고 팩을 박은 뒤 텐트를 올리는 꿈을 꿨습니다. 와이프가 편하게 누워서 자라며 저를 깨웠을 때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한 비몽사몽 상태에서 꿈에서나마 제가 가지고 싶던 텐트를 과감히 일시불로 질러 준 와이프에게 무작정 "고마워! 사랑해! 내가 정말 잘할게!"라고 했습니다. 와이프는 이런 저의 사정도 모른 채 "뭐가 고마워. 그리고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어." 라며 저를 위로해주고 조금 감동하는 눈치였습니다. 만일 '꿈에서 텐트 사줘서 고마워. 그러니까 이제 현실에서도 하나 사줘.'라고 했다면 전신 특히 등짝에 타박상을 입고 이런 글을 쓰지 못하겠지만요.


제가 이 글을 쓰는 이유 중 하나는 이번 10월 말 아들의 태권도 심사가 있어 주말 특강 때문에 10월 한 달은 캠핑을 떠나지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인생에서 중요한 (적어도 아들에게는 세상의 어떤 시험보다 가장 긴장되고 중요한 시험입니다.) 첫 시험을 치르는 아이는 평일은 물론 주말마다 열심히 특훈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저희 부자의 마음은 주말마다 캠핑장에 있지만 몸은 캠핑을 가지 못해 아쉽지만 국기원 심사가 끝나는 날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들이 국기원 심사를 무사히 통과하고 원하는 목표를 달성한 뒤 기쁜 마음으로 캠핑을 떠날 그날이 기다려집니다. 이번 주 아들이 특강을 다녀오면 동네 공원(그늘막 텐트 설치가 허락된 공원입니다.)에서 2인용 텐트라도 치며 캠핑을 떠나고 싶은 마음을 좀 달래야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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