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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성이 Nov 21. 2024

사춘기 아이와 캠핑을 다닌다는 것

* 요즘 놀러 다니는데(?) 정신없어서 브런치에 글을 잘 올릴지 않습니다. 아직 살아있었구나.. 안녕..


긴 글입니다.


아주 간혹 초대 캠핑만 다니다 아이가 다섯 살 될 무렵 저희 가족은 본격적으로 캠핑을 시작했습니다.

주말 할 일 없이 소파와 혼연일체 되어 무료한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야외 활동을 해보는 것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더 큰 이유는 아이가 엄마, 아빠와 캠핑하며 시간 보내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입니다. 


다섯 살 아이에게 그동안 경험하지 못한 자연은 모든 것이 신기했나 봅니다.


봄에 싹트는 새싹, 더운 여름 계곡의 시원함, 가을밤 하늘의 빛나는 별 그리고 겨울 소복소복 쌓이는 하얀 눈까지도요.


아직 나이가 어려서인지 아이는 항상 옆에 엄마, 아빠가 옆에 있어주고 놀아주며, 근처에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길 원했습니다. 


저는 그때가 캠핑하면서 가장 재미있었던 시기인 것 같습니다. (물론 지금도 재미있습니다.) 텐트를 제대로 못 쳐서 와이프에게 구박(?) 받던 초보였지만 (물론 지금도 여전히 못 칩니다.) 남들이 10분이면 치는 텐트를 온몸을 땀으로 적시고 낑낑대며 한 시간 이상 걸려 치면, 텐트 안에서 신나게 놀며 '우리 아빠가 최고야!'라며 칭찬해 주는 아들이 있었기 때문이죠. 


집에서도 그리고 캠핑장에서도 엄마, 아빠 껌딱지 같던 아이가 '친구들과 노는 재미'를 알게 된 것은 8살이 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캠핑장에서 무리를 지어 노는 아이들에게 '이 아이도 8살인데 같이 놀아주지 않을래?'라며 아이의 손을 잡고 이야기했고, 아들은 아빠도 함께 놀아주면 자기도 여기서 놀겠다는 말에 저도 어쩔 수 없이 아이들과 함께 놀았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놀다 보니 아이들이 주고받는 말들이 웃기기도 하고, 제가 어렸을 때 했던 놀이들을 알려줄 때 아들을 포함한 아이들이 재미있게 함께 해주니 기분이 좋았습니다. 물론 '우리 아빠는 이렇게 잘 놀아!' 하며 아이의 어깨가 으쓱일 때 가장 기분이 좋고 보람을 느꼈습니다.


아이가 아홉 살이 될 무렵 캠핑 권태기가 도래한 와이프가 캠핑을 함께 다니지 않아 본격적으로 아들과 둘의 캠핑이 시작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내가 와이프 없이 이 아이를 최소 1박 2일 데리고 있을까? 걱정도 들었지만, 그 걱정은 기우였습니다. 


아이는 엄마 없이도 밥도 잘 먹고 신나게 노는 것은 물론 가장 걱정했던 잠들 시간 엄마를 찾지도 않았습니다. 평소 밤에 엄마가 없으면 잠을 못 자는 아이가 캠핑장에서만 오면 아빠와 이렇게 잠을 잘 잔다는 것이 참 신기했습니다. 


다른 어느 시간보다 아이와 둘이 캠핑을 다니며 둘만의 많은 추억을 쌓았고 엄마는 모르는 둘만의 비밀들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캠핑장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는 아이의 학교 이야기, 친구 이야기, 그리고 좋아하는 게임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캠핑장에 도착해 텐트를 치거나 장비를 설치하고 옮길 때 '나도 도울 게!"라며 여전히 캠핑 초보인 아빠를 돕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아이들 무리에 제가 데려가지 않아도 알아서 형, 친구, 동생들과 사귀어서 놀기도 하며, 저의 역할은 자연스레 멀리서 노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으로 변했습니다.


아이가 항상 아빠만 찾던 '아빠 껌딱지'에서 벗어난 것이 아주 조금 서운했지만, 항상 어리다고 생각했던 아이가 다른 아이들과 함께 어울려 놀며 사회성을 몸으로 배워간다는 것은 기특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11살이 된 올 해부터 아이는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여전히 아이들과 노는 것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바위에 멍하니 앉아 있기도 하고, 아무 말 없이 혼자 타오르는 불을 바라보는 등 혼자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제 눈에는 항상 바보같이 놀긴 합니다.)


그렇게 좋아하던 캠핑장에서 아주 사소한 일에 제게 짜증을 내고 화를 내기도 하며, 예전에 제가 다른 아이들과 놀아주는 모습을 좋아했는데 이제 그런 아빠의 모습이 싫다고 합니다. 


항상 즐겁게 대화하며 이동하던 차 안에서 평소 아이에게 했던 장난 섞인 농담에도 (물론 다 큰 아이에게 어렸을 때 했던 장난 섞인 농담을 해서 감정이 상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버럭하고 화를 내기도 하고, 캠핑장에서 시키는 대로 행동하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캠핑을 다니며 안전 문제가 아니면 아이에게 무섭게 말하거나 다그친 적이 없었는데, 말을 듣지 않아 조용히 훈육할 때 비아냥거리는 투로 말하는 아이의 모습에 저도 인내심이 무너져내려 아이를 다그치고 큰 소리로 화를 내기도 했습니다.


아이와의 갈등이 제대로 폭발한 것은 바로 지난 할로윈 캠핑 때였습니다. 그동안 할로윈 캠핑 때마다 제가 제대로 할로윈 용품을 준비하지 않아 아이가 서운해했는데, 이번에는 뭔가 제대로 해주고 싶어 이것저것 준비했지만 아이가 아무런 의욕도 없고 짜증만 내며 막연히 집에 가고 싶다는 말만 계속했습니다. 


이때 저도 아이에게 서운했습니다. 


할로윈 캠핑을 몇 주간 나름 고생하며 준비했는데, '이것도 싫다. 저것도 싫다.' 하는 아이의 반응에 서운한 감정이 들었습니다. 아이를 키우면서 한 번도 무언가를 바라고 한 적이 없었는데 이번만큼은 아이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습니다.  


할로윈 캠핑을 우여곡절 끝에 마치고 돌아가는 차 안에서 차가 막혀서인지 짜증 내는 아이에게 저는 화를 내며 "다시는 너와 캠핑을 다니지 않을 거야! 내가 너랑 같이 앞으로 캠핑을 다니면 사람도 아니다.'라는 해서는 안될 말을 하고 말았습니다. 말하는 순간 '아차 내가 아이에게 실수했구나.'라는 것을 느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습니다. 


며칠간 아이와 대화가 없었습니다. 아이는 저를 보면 슬슬 피하기 시작했고, 제가 말을 걸려하면 와이프에게 달려가거나 자기 할 일(숙제나 독서, 게임)이 있다며 자기 방에서 나오질 않았습니다. 


그동안 이런 적이 없었는데 도대체 이 아이가 왜 그러는 것인지 궁금하고 답답한 마음에 사춘기 아이와 관련된 유튜브도 보고 책도 읽어보고, 아는 분들에게도 물어봤는데, '모두 옳고 도움이 되는 말이만 이런 것들을 그대로 따라 한다면 오히려 내 아이를 또 다른 어른들의 틀에 가둬버리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뭔가 이 아이와 소통하고 함께 하기 위한 저만의 방법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의외로 답은 참 간단했습니다.


주말 와이프가 떠 밀어 아이와 둘이 자전거를 타러 나갔습니다. 처음에 아이도 저랑 둘이 나가는 것이 불만인지 자꾸 엄마도 함께 가자고 했는데 와이프의 감기 몸살에 걸린 것처럼 보이는 신들린 연기력에 결국 저와 둘이 자전거를 타러 갔습니다. 


자전거를 끌고 가는 길에서도 우린 여전히 대화가 없었습니다. 중랑천에서 자전거를 타는데 아이는 저를 놔두고 혼자 앞으로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아들은 21단 자전거... 저는 따릉이..) 이때만 해도 '그래 이렇게 몇 분 타다가 집에나 가야지.' 하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렇게 혼자 앞서 나가던 아이가 자전거를 잠시 세우더니 제게 말합니다.


"아빠! 내가 좀 천천히 갈 테니 아빠가 내 뒤에서 따라오면서 나 지켜봐 줘."



있는 힘껏 자전거 페달을 밟던 아이가 한 번씩 뒤를 힐끔 바라보며 아빠가 어느 정도 따라왔는지 지켜봅니다. 너무 거리가 멀어지면 속도를 줄여주고, 제가 속도를 내서 따라붙으면 조금 더 속도를 내 거리를 벌리고 그렇게 쉬지 않고 30분 정도 자전거를 탔던 거 같습니다. 숨이 가빠옵니다. 연약한 신생아 체력의 사무직에게 자전거 30분 타기는 고문입니다.


아이에게 잠시 쉬자고 하며 벤치에 앉았습니다. 어색한 분위기를 깨려 아이에게 '너는 자전거를 참 잘 타는구나'라는 칭찬을 했는데, 이때부터 쉬지 않고 자전거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어디서 이렇게 자전거에 대한 정보를 많이 얻은 건지... 


신나게 자전거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아이의 말이 끝날 무렵 조심스럽게 지난번 제가 했던 말에 대한 사과를 했습니다. 


"너도 캠핑을 아빠만큼 좋아하는 거 아빠도 잘 아는데, 지난번 다시는 캠핑 가지 말자는 말을 해서 미안해."


아이는 제 사과를 들으며 제 말을 듣고 느꼈던 감정을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했던 말에서 아이는 위협을 받는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빠는 항상 하라는 것만 많고 자기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하면서 (이때 조금 억울하기는 했습니다. 엄마 몰래 해주는 것이 얼마나 많은데...) 앞으로도 아빠 말을 듣지 않으면 이런 식으로 자기가 좋아하는 것들을 하나둘씩 못하게 할 거라는 생각이 들어 화가 났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나도 아빠한테 미안해' 라며 자기와 열심히 놀아주고 자기를 이해해주려 하는 거 알지만, 아빠랑 이야기하거나 같이 있을 때 가끔 한 번씩 이유 없이 화도 나고 아무 이유 없이 감정이 북 받쳐 오를 때가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엄마한테 그럴 때는 없어?'라고 물으니 '없다.'라고 하며 이유를 물어봤더니 '무서워서...' 순간 저도 모르게 아이의 말에 크게 웃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저도 말했습니다.


"나도 무서워."


"응. 알아. 아빠 엄마 무서워하는 거."


"너 그러면 아빠는 안 무섭니?"


"응. 아빠는 안 무서워. 카피바라 같아."


그날 벤치에서 생수 한 병씩을 마시며, 그동안 나누지 못한 이야기를 많이 나눈 것 같습니다. 


집에 돌아와 그날 찍었던 사진을 보며 생각이 드는데, 저는 그동안 이 아이를 대할 때 항상 다섯 살 때 모습 그대로 대한 것 같습니다. 


항상 불안해하고, 걱정하고, 간섭하고, 옆에 있으려 하고 모든 것을 함께 하려 하고..


아이의 문제가 아닌, 아이 몸과 마음의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아빠가 문제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넘어지며 혼자 자전거 타기를 배우 듯 아이가 그렇게 가끔 실수도 하고, 불안해 보이겠지만 그 과정에서 인생을 배워가며 성장하길 때로는 두 걸음 뒤에서 아이를 믿어주고 지켜보며 응원하려 합니다. 그동안 '친구 같은 아빠'가 되어줘야지 다짐했는데 조금 서운하지만 이제 그냥 옆에 있어주는 '그냥 아빠'가 되어 보려 합니다. 


그리고 저희 아이 옆에는 이제 엄마를 보내려 합니다. 그리고 저는 자유를...

힘내 여보. 당신 아들 몸으로 놀아주면 말 잘 듣는 거 알지?


사춘기 아이 때문에 마음 고생 하시는 부모님들 모두 힘내시길 바랍니다. 

육아전문가도 아닌 그냥 평범한 아빠이지만, 아이를 키우는데 정답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TV나 유튜브 등 육아 전문가들의 말이 옳기는 하겠지만, 그들보다 우리 아이를 가장 잘 아는 것은 바로 부모인 우리니까요.

오글거리네요. 쩝...


그래도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P.S 어제저녁 11월 말에 떠날 캠핑 계획을 아이에게 한 번 세워보라고 했는데, 하... 이 녀석 저보고 아빠는 밖에서 야전 침대 펼치고 혼자 자라고 합니다. 아빠 그러면 죽어 이 자식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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