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만들기] EUS+건축, 분석보다 이해와 공감으로 짓는 공간
[공간 만들기]에서는 트윈세대를 위한 제3의 공간 프로젝트를 함께 하는 이유에스플러스 건축이 아빠건축가로서 아이들의 생각을 건축가의 지혜로 해석하고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협업하며 공간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기록합니다. 트윈세대의 잠재성과 다양함을 고려한 좋은 공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이유에스플러스 건축의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지난번 브런치 글 ‘트윈세대 공간을 설계하는 건축가의 자세’ https://brunch.co.kr/@gradation/2 에서 우리 EUS+건축은 미끄럼틀이 없고 그네가 없고 시소가 없는 놀이풍경을 만들어왔다고 썼었습니다. 실제로 우리 스스로 다음세대들을 위하여 어떤 공간들을 어떻게 만들어왔는지를 돌아보는 것이 이번의 트윈세대를 위한 도서관을 구상하는데 저희 스스로도 참고가 되고 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겠습니다. 공간을 디자인하는 것은 하나의 ‘정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능성 중에서 그 ‘사람이 만든 안’으로 가치를 가지는 것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만든다면 다른 개념으로, 다른 모습으로, 다른 컨텐츠를 담게 될 것이지만 저희는 저희이기 때문에 만들게 되는 공간을 드러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디자인의 책임감 (ownership)을 가지고 짓는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거기에 더해서 저희의 이전 경험에서 얻은 지혜를 바탕으로, 새롭게 트윈세대들과의 워크샵과 교류를 통해 받는 영감, 그리고 여러 전문가 파트들과의 진지한 연구와 소통을 통해 이번 트윈세대의 도서관 공간에 대한 구상이 세워지고 있습니다.
최근 이 트윈세대 도서관 뿐 아니라 학교공간에서도 그 구성원인 학생들의 ‘참여설계 (혹은 디자인워크샵)’ 이 많이 시도되고 있습니다. 심지어 교육부는 최근 학교공간혁신을 위한 플랜을 발표하면서 학생참여설계가 필수로 반영되어야 한다고 조건을 걸고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 참여설계란 디자인에 있어서 완벽한 솔루션을 찾는 과정이어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대상 학생들이 공간을 좀더 주도적으로 생각해 볼 기회를 제공하고, 함께 짓는 저희 같은 전문가와 어른들이 조금이라도 그들의 마음과 생각을 해석하고 이해하는 과정입니다. 그들을 분석할 때는 그들이 ‘데이터’가 됩니다. 그들을 해석하려 다차원으로 노력할 때는 그들이 ‘이해의 대상’이 된다고 저희는 여러경우의 시행착오를 겪으며 믿고 있습니다.
단지 작가적 상상력으로 공간을 디자인 하는 것이 아니라 이전 프로젝트에서 무수히 많은 다양한 소통의 과정을 겪으며 우리에겐 ‘이해’가 우리의 디자인 ‘근육’이 됨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런 말은 실은 제가 미국에서 건축 대학생들을 가르치며 늘 해오던 이야기 이기도 합니다. “지금의 여러 훈련의 과정들이 힘들다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머지않은 미래에 이것이 너희들의 ‘design muscle’ 로 자리잡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라고요. 건축 대학생들에게 훈련이 디자인 근육이 되듯, 우리는 다음세대들과의 여러 경우 소통을 통해서 이해의 근육으로 디자인을 해 나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트윈세대를 위한 도서관 프로젝트를 여러 파트들과 함께 진행해나가며 우리는 자주 회의를 갖습니다. 회의를 위한 회의라기 보다는 서로의 장점을 찾아내고 응원하여 트윈세대들을 이해하는데 한걸음씩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 회의 중 한번은 각자의 소감을 한 단어로 쓰는 때가 있었는데, EUS+건축의 서민우 소장님은 ‘공감’ 이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그러면서 ‘공간’이라는 단어에서 ‘ㄱ’만 더하면 ‘공감’이라고 설명을 하여 많은 다른 전문가 파트들도 고개를 끄덕였더랬습니다.
‘이해’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 것이 ‘공감’ 입니다. 공감의 능력은 AI가 아무리 발달해도 따라할 수 없을 것만 같습니다. 이렇게 이야기 하는게 지나친 비약일지 모르겠지만 저는 ‘분석’ -> ‘해석’ -> ‘이해’ -> ‘공감’ 순서로 더 필요한 것이라 느낍니다. 다소 도식적일지 모르지만 우리말의 공감은 ‘공간’과 닮아 있습니다. 그 두 단어의 순서를 앞뒤로 바꿔가며 붙여 써도 말이 되는 것 같지요? 그런데 공간으로 공감을 담아낸다는 것, 참으로 추상적이고 어렵습니다. 나름 노력한 공간의 요소가,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담아내지 못할 수도 있고, 일부의 이용자의 공감을 받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공간’에 ‘공공’을 더할 때 어쩌면 ‘공감’이 더 생기는 것이 아닐까요. (‘ㄱ’이 두개나 더해졌다고 하면 너무 억지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즉 사적이고 상업적인 공간이라기보다는 ‘공공공간’이었을 때 더욱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고, 동시에 특정 세대의 공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트윈세대라고 별 스러운 세대로 치부하면 그것은 유행일 뿐이고 주체성을 가진 보편적인 사람으로 한 명 한 명 이해를 할 때 공감할 수 있는 공공공간을 만들 가능성이 생긴다고 믿고 있습니다. 우리에겐 오랜 ‘공공공간’의 프로젝트 경험을 통한 ‘공감’의 근육 또한 발달해 있습니다.
- 책읽는집
광주광역시의 한 동네에 주택을 설계 했었습니다. 주택은 물론 ‘공공공간’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이 들어서는 도시는 그 자체가 ‘공공적’ 입니다. 그래서 그곳에서 튀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어울려가도록 설계를 했고 처음 건축의뢰인 가족들과 만나서도 인터뷰를 하고 서면으로도 정리를 해서 생각을 받았을 때 그 가족의 아버지께서 쓰신 ‘함께’라는 단어가 큰 디자인 모티브였습니다. 전형적인 티비와 소파가 중앙에 차지하고 있는 거실 대신 갖고 계신 수많은 책을 계단실 주변으로 배치하여 입체적인 가족실이자 서재를 거실 대신 설계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집의 이름은 ‘책읽는집’이 되었고 다양하고 편안한 자세로 책을 읽을 수 있는 곳곳의 장소들을 통해서 가족이 서로 소통하고 공감할 수 있는 집이기도 합니다.
- 구산서가
서울 은평구의 한 동네에 있었던 여러 채의 다세대주택들을 포함하여 새로운 마을 도서관을 짓는 현상설계(건축설계공모)가 나왔었습니다. 그때 제가 제출한 안의 개념은 ‘책읽는 골목(서가書街)’ 이었습니다. 기존 건물들을 서로 연결하고 그 외벽을 투명하게 하여 각 건물의 내부에서 책을 꺼내고 넣고 걸터앉아 읽는 모든 행동들이 인접한 골목길로 투사되도록 설계했습니다. 직사광선이 투명한 외벽을 타고 건물로 직접 들어가지 않도록 골목길은 회랑형식으로 지붕을 덮었더니 실외이지만 실내 같은 공간이 되었고 그것이 여러채의 건물군들을 서로 엮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그 내부의 서가는 주민들이 참여하여 동네 목공기술자의 도움을 받아 직접 만들어 넣는 것으로 기획하여 사용자 참여의지를 높였습니다. 그때의 그 안은 안타깝게도 2위를 했고, 현재 그 곳에는 다른 건축가의 설계에 의한 구산동도서관마을이 완공되어 있습니다. (이 또한 괜찮은 공간입니다)
- 라이브러히
서울 연희동의 6-70년대에 지어진 주택을 개조하여 상업공간과 디자이너들이 서로 소통하는 임대 사무실로 설계를 하였습니다. Library와 Yeonheedong 을 결합하여 Librahee라는 이름으로 불렀으며 아주 작은 건물이었지만 골목에서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공간을 여러 레이어로 다층화 하여 그 안에서 다양하고 입체적인 소통과 이야기가 일어나는 것을 의도하여 디자인 했습니다. 그러한 ‘중간영역’이 결국은 다양한 가능성을 가진 공공공간이 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 무중력지대홍제
서울시의 청년공유 공간인 ‘무중력지대’의 서대문 공간을 홍제 유진상가 내에 설계 했습니다. 일반적인 업무공간이 아닌 청년들의 다양한 활동을 담아내고 지원할 수 있어야 하기에 일반적이지 않은 방식의 영역 구분을 갖고 있습니다. 벽으로 막혀 하나의 기능으로만 사용하는 공간이 아닌, 영역은 구분되어 있으면서도 느슨하게 서로 연결되어 다목적으로 활용이 가능합니다. 동시에 중심에 계단식 스탠드를 가진 광장이 있어서 캐주얼한 활동과 편안한 느낌을 전하고 있습니다. 얼마전 전주 트윈세대 도서관을 주로 이용할 학생들 몇몇이 서울에서 인사이트 투어를 다니면서 이 공간도 방문을 하였습니다. 같은 높이를 가진 공간이었지만 입체적이고 유기적인 공간감을 느낄 수 있었던 이곳에서 받은 인상이 많은 것을 그들의 글과 스케치에서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 키즈루덴스
실제 사이즈의 아이언맨 같은 많은 피규어들을 전시하고 관람할 수 있는 뮤지엄을 파주 헤이리에 꽤 오랜동안 설계를 하고 있습니다. 이곳 설계의 초기 개념은 '유니버스' 였습니다. 현실을 벗어난 상상력의 컨텐츠를 담는 공간이 시루떡 같이 각 층이 차곡차곡 쌓인 공간이기 보다는 그 안을 관통하는 우주가 있기를 바랬습니다. 그래서 '유니버스 코어'라는 빈 우주가 생기고 건물 자체가 흐르는 듯한 형상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안에 다양한 상상과 이야기의 산물인 피규어들이 전시되고 어린이들과 성인들은 새로운 우주를 경험하게 되길 저희는 바라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 흐르는 우주를 감싸는 외부 재료는 '테라코타' 인데 어찌보면 지구에서 가장 오래된, 점토로 구운 재료라는 점입니다.
- 놀이의 여정
어느 학교에나 꼭 있는, 권위주의의 산물인 구령대(혹은 조회대)를 아이들의 '놀이풍경'으로 치환시킨 작업입니다. 수차례의 디자인 워크샵을 학생들과 진행하면서 공감하며 발전시킨 이곳에서의 놀이는 그네나 미끄럼 등 기성화된 제품을 타는 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그 안에서 다양한 방식의 놀이를 혼자 혹은 함께 어린이들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여지'를 주었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믿고 있습니다. 즉 건축가가 지은 중성적인 놀이공간의 틀의 안팎을 오가며 어린이들은 상상력과 주도적인 놀이를 만들게 되고 그것이 멈춰 있기보다는 계속 순환되는 과정으로 이어집니다.
- 플레이캠프
서울 용산의 전쟁기념관 어린이박물관 안에 작은 대기 공간이 있었습니다. 답답한 벽으로 둘러싸인 그 기존 공간은 책만 읽는 곳이었습니다. 저희의 설계는 그곳을 과감하게 트이게하고 그 안에 세개의 목재 파빌리온을 두었습니다. 그 파빌리온들은 군인의 야전 캠프에서 모티브를 얻었지만 아이들의 놀이 캠프로 의미를 변화시켰습니다. 또한 다양한 상황과 활동에 맞게 공간을 사용할 수 있도록 그 파빌리온들은 재 배치가 가능한 휠을 장착하고 있습니다. 트인 공간이지만 가변적인 공간 속 공간들로 공공의 영역을 구성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 놀이의심곡
인천기독교사회종합복지관 이라고 하는 다소 딱딱한 이름의 기관 안에는 지역 어린이들과 주민들의 다양한 활동이 있었습니다. 그런 활동들을 교실같은 정형화된 공간들이 담고 있었는데 저희는 그 중의 한 공간을 실내 놀이공간으로 바꾸는 일을 했습니다. 이 곳을 이용하는 지역 어린이들과 워크샵을 통해 독특한 공간감을 만들어 내었는데 좁지만 이 공간을 다양하게 이용할 수 있는 신체 활동의 여러 모습과 사이즈를 여러 레이어로 중첩하여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그 공간에서 역시 아이들은 다양한 방식의 놀이를 할 수 있게 되었고, 집에서 가질 수 없는 공간감을 이 공공공간에서 경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 놀이 아방가르드의 풍경
대학로 아르코미술관의 필룩스 공간에서 하는 ‘놀이 아방가르드의 풍경’ 이라는 전시를 기획하면서 우리 EUS+건축은 지금까지 여러 프로젝트를 하며 경험했던 사용자 참여 방식을 확대하여 도시의 주인인 시민들이 자신의 집을 도시에 채워넣는 참여 퍼포먼스를 하도록 했습니다. 건축가가 만들어 놓은 입체 도시인 격자 프레임에 각 시민들이 자신의 희망과 집과 놀이에 대한 표현을 담은 집 모양의 키트를 꽂아 놓을 수 있게 했습니다. 서서히 바뀌어가는 도시의 풍경을 관찰 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고 미리 대학생들이 만들어서 배치해놓은 놀이공간을 중심으로 스스로 살 집에 대한 위치를 정하기도 하면서 도시와 놀이, 그리고 주거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 보는 시간이기도 할 것입니다. 한쪽에서 일방적으로 공간을 만들어 놓고 이용자는 이용하기만 하라는 것보다 참여형으로 풍경을 변화시키는 것을 경험하게 했습니다.
미국의 친환경 수퍼마켓인 ‘트레이더 조스’는 싸고 유기농의 좋은 품질의 식자재도 유명하지만 그 안에 일하는 직원들이 항상 즐겁고 적극적으로 일하며 고객들과 소통을 활발하게 하는 매장으로 유명합니다. 월마트 등 다른 대형 매장들의 직원들은 마지못해 일하는 듯한 표정과 태도로 일하는 경우가 많은데 트레이더 조스의 직원들은 고객을 고객으로만 대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 대하고 이웃으로 대하며 자신이 생각하는 좋은 재료도 추천하며 주말의 계획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눕니다.
어쩌면 우리는 건축계의 ‘Trader Joe’s’가 아닐까 한다는 이야기를 이 트윈세대 전문가 파트의 모임에서 한 적이 있었습니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그러고 싶다는 것이 맞겠지요) 대형 조직이 하지 못하는 이해와 공감의 근육을 통해서 이용자와 소통을 하는 그런 건축가들이길 원합니다.
*이유에스플러스건축 지정우 소장이 그간의 경험과 모아둔 생각을 바탕으로 글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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