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상담의 시작은 서로를 알아가는 데에서부터 시작한다
사이먼을 만나기 전, 나는 르네라는 나이가 아주 지긋한 프랑스 정신과 의사와 상담을 했다. 한 시간의 대화로 이분이 정의한 나는, ‘일도 적당히 잘하고, 집에서도 적당히 좋은 엄마가 되고 싶어 하는, 불가능을 가능케 하고자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내가 주저리주저리 이런저런 이야기를 덧붙여 봤자, 베이비시터나 가사도우미 없이 어마어마한 업무량을 감당한다는 것은 미친 짓이며, 내가 나 자신을 고문하고 있는 셈이라는 것. 물론 힘든 일이라는 것은 알지만, 다른 손을 빌리지 않는 것은 남편과 내가 원해서 한 선택이며, 지난 몇 해 동안 가족들 모두 잘 적응해서 문제없이 지내왔다고 하니, 그럼 청소하는 분이라도 자주 불러야 한다는 이야기를 본인의 경험담을 덧붙여 30분 동안이나 이어가셨다. 나름 이 구렁텅이에서 나가보고자 달리기도 시작하고 친한 지인들과 이야기도 나누며 한창 긍정적인 쪽으로 나를 끌고 가던 참이었는데, 그 한 시간의 대화로 나는 다시 우울의 늪으로 빠져들어 버렸다. 그리고는 곧장 다른 심리상담사를 찾기로 했고, 다행히 주치의의 소개로 영어가 모국어인, 심지어 우리 동네에 살고 있는 사이먼을 만나게 되었다.
헝클어진 머리와 운동복에 가까운 아주 편한 옷을 입고 현관에서 나를 맞이한 사이먼은, 설거지 중이었다며 찬 손으로 악수를 해서 미안하다고 첫인사를 건넸다. 벨기에는 병원이 따로 있기보다, 본인이 사는 주택 안에 진료실을 두고 환자를 맞이하는 의사들이 많은데, 사이먼 또한 본인의 집에서 진료를 보고 있었다.
“자, 그럼 시작해 보죠. 어떤 일로 나를 찾아오게 되었는지 먼저 말하시겠어요, 아니면 나에 대해 궁금한 점을 먼저 물어볼래요?”
나는 속으로 ‘이 사람에 대해 궁금한 점이 없는데’라고 생각하고는, 와다다다 나에 대한 이야기를 주저 없이 꺼내놓기 시작했다. 가족관계는 어떤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언제 번아웃이라는 것을 인지하게 되었는지, 올해 특별한 사건들이 있었는지 등 사이먼은 나를 알아가기 위해 여러 질문을 던졌다. 어찌 보면 꽤나 심각하거나 부정적으로 흐를 수 있는 이야기도, 사이먼은 아주 가벼우면서도 본질을 흐리지 않는 선에서 조목조목 내가 한 이야기들을 본인의 말로 정리하며 꼼꼼히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한 30분 즈음의 대화가 진행되고 나서, 사이먼이 말했다.
“솔루션을 찾아 나서기 전에, 3가지 질문을 던지고 시작해야 할 것 같아요.”
“첫째, 남편은 당신을 사랑하나요? 그리고 지금 당시의 상황에 도움 되어 주고 있나요?” - “네.”
“둘째, 아이들은 어때요? 다들 잘 지내고 있나요?” - “네.”
“셋째, 혹시 번아웃으로 인해 신체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 곳은요?” - “없어요, 아직은 괜찮은 것 같아요.”
“좋아요, 내 환자들 중에 홀로 아이를 키우거나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어, 일을 쉬고 치료를 시작해야 할 정도로 심각해도 그럴 수 없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다행히도 아주 좋은 환경에, 너무 늦지 않게 나를 찾아왔네요. “
찾아보니 팬데믹 이후로 벨기에에는 번아웃 증후군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증가했고, 최근 조사결과에 따르면 5명 중 2명의 직장인이 번아웃의 증후가 보이거나 이미 심각한 번아웃으로 고생하고 있다고 한다. 다른 직무에 비해 업무시간이 길고 업무 성과에 대한 기대치가 높은 편인 컨설팅에서는, 드문드문 번아웃으로 고생하는 동료들의 이야기를 듣곤 한다. 나 또한 함께 일하던 어린 팀원이 입사 후 얼마되지 않아 번아웃으로 고생할 때, 함께 이야기를 하며 다독여주었던 적이 있다. 주말에 장을 봐서 신선한 재료를 준비해 두고는, 한 주가 지나 그대로 쓰레기 통에 버리기를 수없이 반복했었다고. 자신이 보기에 업무 성과도 못 내고 있는 상황에서 자기 자신에게 자투리 시간조차 내어주기 힘들고, 마음 놓고 점심을 먹는 시간조차 아까웠다고. 다 이해한다며 따뜻하게 이야기해주기는 했지만, 사실 그 친구가 어떠한 마음으로 그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는 상상하지 못했다. 얼마나 막막했을까, 얼마나 도망가고 싶었을까. 요즘 내가 느끼고 있는 이 무기력함, 스트레스, 누군가가 내 심장을 꽉 누르는 듯한 이 느낌을 그 어린 친구가 받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괜스레 아무것도 모르고 조언 따위나 해주었던 나 자신이 우습게 느껴졌다.
지난달, 번아웃이 오는 것 같다는 코치의 이야기에 일주일의 휴가를 내어 한숨을 돌리고는, 서둘러 회사로 복귀를 했다. 휴가가 길어지면 다시 일로 돌아오는 게 어려워질 것 같이 내린 결정이었다. 회사에서도 내가 힘들어한다는 것을 알고, 내가 천천히 다시 시작할 수 있게 아주 좋은 팀원들과 내가 즐길 수 있는 주제의 프로젝트를 고르고 골라 나를 도와주었다. 그리고 첫 회의가 있던 날, ‘어, 이게 뭐지. 뭔가 이상해.’라고 느낀 나는 한순간 돌처럼 굳어버렸다. 눈은 움직이는데 아무 글자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얼른 새로운 주제를 공부하고 계획을 세워야 하는데 머리가 돌아가지 않았다. 지난 3년 간, 아니 처음 직장인이 된 그 순간부터 매일 해오던 일인데, 어떻게 이 일을 해야 하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숨이 가쁘게 쉬어지고 ‘나는 실패할 거야.’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운이 좋게도 그날, 지난 피검사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 주치의와의 약속이 잡혀있었다. 진료실에 들어간 나는, 의사에 앉자마자 엉엉 울음을 터뜨렸다.
“이건 번아웃이 맞아요. 우선 병가를 내고 치료를 시작해 보는 게 어때요?”
나는 새로운 프로젝트가 오늘 시작됐고, 회사에서 나를 돕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들여 이 프로젝트를 준비해 주어 지금 당장 이 것을 놓아버릴 수가 없다고 했다.
“회사는 당신이 없다고 주저앉지 않아요. 하지만 당신 자신은 스스로 돌보지 않으면 언제든 무너질 수 있어요. 선택은 당신의 몫이지만, 주치의로서는 일을 쉬라고 할 수밖에 없네요.”
나는 아직도 헷갈린다. 내가 정말 이렇게 정성 들여 ‘쉼’을 찾아야 할 만큼 아픈 상태인 걸까, 아니면 그저 일에 질려버렸거나 더 이상 과도한 업무를 감당해내고 싶지 않아 도망가고 있는 것일까. 나는 원래 게으른 사람이니까, 그냥 일이 하기 싫어진 것은 아닐까. 이 것이 진정 ‘번아웃’이라는 이름표를 붙여 정신과 상담을 받아야 할 정도로 중대한 상황인 것일까. 마크는 저녁 식사 중 눈물을 터뜨린 나를 보고,
“감기가 걸렸다고 생각해. 네가 무엇을 잘못했거나 피할 수 있었던 게 아니야. 그냥 그렇게 소리 없이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질병 중에 하나인 거야. 네가 느끼지 못해도 여러 전문가들이 그런 의견을 줬다면 따르는 게 맞다고 생각해. 급할 거 없으니까, 다른 걱정은 다 접어두고 너한테만 집중해 봐.”
그리고는 나처럼 자는 시간 빼고 일만 하는 사람에게 이런 일이 생긴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닐 거라며, 따끔한 일침도 잊지 않았다.
저녁 식사 후 한참 고민을 한 나는, 상사들과 인사팀에 메일을 보냈다. 나의 상태를 이해해 주고 내게 필요한 기회를 만들어 준 것에 아주 감사하나, 오늘 주치의와의 대화 끝에 병가를 내기로 결정했다고. 팀원들에게는 너무나 미안하지만, 그리고 아직 나 자신도 내가 어떤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이제 내가 정신적으로 힘든 상태라는 것을 인정할 때가 된 것 같다고. 이 것을 스스로 받아들이고 이렇게 회사에 말하는데 까지 시간이 걸렸다고. 그 타이밍이 하필 오늘이라 너무 미안하다고.
사이먼과의 첫 번째 상담이 끝나고 나니, 그래도 ‘사이먼이 어쩌다 벨기에에 오게 되었는지, 왜 이 일을 하는지, 나를 어떻게 도와주고 싶은지’ 조금이라도 물어볼 걸 하는 후회가 들었다. 물론 내가 내담자고 사이먼이 나의 이야기를 들어줘야 하는 입장에 있으니 내 이야기가 주가 되는 것이 당연하기도 하지만, 앞으로 많은 대화가 오고갈텐데 나도 사이먼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알게 된다면 좋지 않을까. 다행히도 나는 사이먼의 행동에서 몇 가지의 MBTI 단서를 찾아낼 수 있었다. 어지러운 책상과 꼬깃꼬깃 쌓여있는 종이 파일들, 그리고 나에게 메일로 보내주기로 한 파일을 찾느라 한참 노트북을 뒤지는 그의 모습에서 강한 P의 향기가 났다. 묘한 동질감과 함께, ‘흠, 나는 꼼꼼하고 체계적인 상담사가 더 좋긴 한데.‘라는 아쉬움이 피어났다. 어찌 됐든 나의 이야기를 아무런 평가 없이 들어주고 이 어두운 여정을 함께 해주겠다는 사람이 생겼다는 사실에, 나는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